진도의 예술
가 세 현
겨울 날씨답지 않게 온화하더니 갑자기 추워지며 비까지 내린다. 먼 길에 걱정이 앞섰으나 진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진도에서는 그림, 노래, 글씨 이 세 가지를 자랑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림은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의 그림을 말함이요. 노래는 진도 아리랑타령, 글씨는 서예 소전체의 대가 손재형 선생과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자산을 들여 건립한 서예박물관인 장전미술관을 건립한 하남호 선생이 있기 때문이리라. 물론 ‘진돗개’와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것도 큰 자랑거리이다.
첨찰산 아래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다고 하여 운림산방이라 했다는 이곳을 찾아오는데 십수년이 걸렸다. 소치 허련은 초의선사에게 학문을 익히고 추사문하에서 서화(書畫)를 배워 일세를 풍미(風靡)하는 남종화의 대가가 되었다. 한 분의 큰 스승을 모시기도 힘든데 두 분이나 모셨으니 복도 많은 분이다.
운림산방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가 직계 5대의 화맥이 200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대화백(大畫伯)의 산실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연못 한가운데 소치 선생이 심었다는 배롱나무와 아치형 돌다리가 정겹게 나를 맞이한다. 소치의 화실은 초가집으로 지금도 일필휘지의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듯, 한 폭의 수묵화다. 18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나도 스승으로 모시고 서예와 그림을 배우는 착각 속에 빠져든다.
초의선사의 도움으로 바로 이웃인 해남의 윤선도의 고택 녹우당(綠雨堂)에서 공재 윤두서의 작품집 ‘공재화첩’을 빌려 수개월을 베끼며 그림 공부를 했다고 한다, 소치가 그림을 그리고 서예를 하고 자서전을 썼던 이곳을 이 십여 년 전부터 찾고 싶었으나 마음뿐이었다.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와서 보니 감개무량하다.
소치라는 호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중국 원나라에 황공망이란 문인화가가 있었는데 그의 호가 ‘큰 바보’라는 뜻의 대치(大癡)였다. 추사는 그의 화풍을 좋아해 사랑하는 제자에게 조선의 황공망이 되라며 ‘소치(小癡)’란 호를 지어줬다. 허련은 누구도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마른 붓질을 하는 갈필 기법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붓 대신 손가락 끝이나 손톱을 사용하는 지두화(地頭畵)에 탁월했다고 한다. 추사는 소치의 그림을 보고 “압록강 동쪽에는 이와 비교할 그림이 없다”라고 높이 칭찬 하였다.
허련은 허균의 후손이다. 계축옥사 때 허균은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다. 이로 인해 양천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멸족 위기에 처했다. 멸족을 당하게 되자 진도로 피신하였는바 그의 후손이 바로 허련이다. 소치는 스승 추사를 극진히 모셨다. 정치적 모함을 받고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자 해남까지 따라가 배웅했고, 제주에서 구 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할 때도 세 번씩이나 제주도를 찾아 스승을 뵙고, 일 년 이상 추사를 모시기도 했다.
그동안 온화했던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눈이 앞을 가리니 화실 앞마당은 걷기조차 힘이 든다. 그래도 나를 성대히 축복으로 반겨주는 것이라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소허암에 도착하니 눈구름 사이로 잠시 햇볕이 들어 인사를 하는 듯하다. 한 바퀴 둘러보고 전시실1을 향했다. 소치의 작품만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등 참으로 신이 빚어낸 걸작품이다. 하얀 종이에 먹(墨)만으로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과연 묵신(墨神)이라 불릴만 하다, 제2전시실에는 아들 미산 허형, 손자 남농 허건, 그리고 허련이 종고조부가 되는 의제 허백련 작품과 4대, 5대손들의 작품이 저마다의 특색으로 전시되고 있다.
정문 옆 길가에 남도 미술관이 보인다. 들어 가보니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 작가 소개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소치의 영향으로 예향의 고향이라 불리우는 이곳, 참으로 뜻깊은 곳이다. 장전 미술관을 찾으니 안타깝게도 폐관이 되어 있었다. 미술관 옆의 장전선생의 생가는 문은 열려 있었으나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하며 버려진 기와 두 장을 기념 삼아 배낭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소전 미술관을 찾았다. 대통령의 서예 스승이셨던 당당한 모습과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라 하는데 우리나라는 서예(書藝)라 최초로 칭하고, 소전체를 창출한 위대한 서예인의 작품을 접하니 나의 현재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시 나를 강한 열정을 갖게 한다. ‘소전체’ 라는 개인 서체를 갖기위해서 그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하였을까! 감히 나도 용기를 내어보리라 다짐을 해 본다.
수묵화(水墨畵)를 배운지 겨우 4년이 되었다. 10년은 배워야 조금은 알 것 같은 예술의 세계,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번의 연습과 실패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훌륭한 작품을 많이 보고 내면의 세계까지 배워 익혀야 한다고 한다. 오늘 이곳을 찾은 것은 단순히 작품만을 보기 위함이 아니다. 작가의 실제 작품을 보고 정신세계까지 배우고, 깨닫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앞으로 십 년은 배워야 할 것을 오늘 하루에 다 배운 듯해서 마음이 뿌듯하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온몸으로 피곤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보람된 하루였음에 정신은 맑아 잠이 오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