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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종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규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라(고후2:14-17절)-2016.7.10.
모든 만물에는 그것을 상징할만한 고유한 냄새가 있습니다. 사람이나 사물, 동물이나 만물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사람에게도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냄새가 다 다릅니다. 남녀노소의 냄새가 다르고, 인종과 종족의 냄새가 다릅니다. 생활습관이나 전통과 문화에 따라 냄새가 다릅니다. 언행심사에 따라 냄새가 다릅니다. 물론 냄새는 좋은 냄새도 있고, 좋지 않는 냄새도 있습니다. 좋은 냄새는 사람과 분위기를 상쾌하게 하지만, 좋지 않는 냄새는 사람이나 분위기를 불쾌하게 합니다.
보통 우리가 좋은 냄새는 향기라고 부르고, 좋지 않는 냄새는 악취, 혹은 그냥 냄새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종교에 따라 다른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아마도 종교적인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성도 간에도 냄새가 모두 다릅니다.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전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미안하지만 교회는 다녀도 썩은 시궁창보다 더러운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냄새는 굳이 인간의 후각으로 맡아내는 냄새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나는 진정한 향기는 인격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격은 사람의 됨됨이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에게서 나는 향기는 신앙의 인격에서 나옵니다. 신앙의 인격을 보면, 그 사람의 냄새가 구별됩니다. 물론 인격은 한 가지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인격은 언행심사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5장13-16절까지를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녕 우리는 썩어져가는 세상의 소금이 되고, 어두워진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착한 행실입니다. 그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든 행실이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향기’라는 단어가 대강 70여회 나옵니다. 그런데 레위기에서만 무려 18회 정도가 나옵니다. 어찌 보면 레위기서는 향기로 시작하여 향기로 마치는 책일 정도입니다.
1장에서부터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1:9, 13, 17절). 그런데 이 향기가 모두 제사(번제, 소제, 화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제물 되는 동물의 고기를 태워서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을 향기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최고 향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의 향기는 성도입니다. 구약은 동물이 제물이요, 신약은 성도가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제물의 향기를 열납하시는 분이십니다.
솔직히 고기를 태우는 냄새가 어떻게 향기롭겠습니까? 식당에서 삼겹살 태우는 냄새가 향기롭던가요?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왜 고기 태우는 냄새를 여호와의 향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물의 희생과 헌신과 충성과 사명을 다하는 마음이 아름답고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향기는 성도의 옳은 행실, 즉 희생과 헌신과 충성, 그리고 모든 순종과 봉사, 예배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물론 솔로몬 성전의 주요 재료였던 레바논의 백향목도 향기였고(호14:6),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오던 동방박사들의 세 가지 예물 가운데 유향과 몰약 역시 향기를 나타내는 향품이었습니다.
또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의 발 아래 옥합 향유를 깨뜨리던 한 여인의 행실 또한 최고의 향기로운 행실이었습니다(마26:6-13). 이처럼 향기는 냄새를 맡는 후각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의 행실과 자세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성도를 향기(고후2:15)라고 말씀하며, 헌금(빌4:18), 기도(계5:8)를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향기를 각 나라와 족속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향기를 좋아하십니다. 먼저 우리를 당신의 향기로 삼으셨습니다(겔16:19).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향기로 받으시기 원하십니다(겔20:41).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속은 시커멓게 지저분하고 더러운 인간이 제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불란서 고급향수를 바르고 다닌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신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속사람은 거듭나지도 아니하고 예수를 닮지도 않았는데 종교적인 고상한 언어를 구사하고 거룩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우리는 그를 성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만이 참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감추려해도 냄새는 감출 수 없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도둑은 도둑 냄새가 나고, 노름꾼은 노름꾼의 냄새가 나며, 술꾼은 술 냄새가 납니다. 골초는 담배냄새가 나며 춤꾼은 춤 냄새가 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나는 향기도 금방 드러납니다. 진짜는 진짜 냄새가 나고 가짜는 가짜냄새가 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마음의 향기요, 말의 향기며, 행실의 향기입니다. 예수님의 향기는 하나님의 향기요, 생명의 향기며, 승리의 향기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향기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의 향기는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항상, 14절상)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는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항상 나타나는 향기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24시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그분을 따르며 그분과 함께 동거 동락한다는 뜻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추울 때나 더울 때나 항상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세상적인 방정식이 아닙니다. 고통은 피하고 영광만 취하는 기회주의적인 방식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입니다.
우리끼리 자주 쓰는 말 중에 ‘썬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매우 비참한 단어입니다. 6일 동안 내 멋대로 살다가 주일 하루만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말입니까? 정말 하나님께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말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보다 더 나쁜 크리스천들도 많습니다. 이른바 part time Christion입니다. 제가 그냥 붙여본 이름입니다만 타임제 크리스천입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십시오. 원 타임 크리스천, 투타임 크리스천, 올 타임 크리스천이 있지 않을까요? 과연 당신은 어떤 크리스천이십니까?
올 타임 크리스천은 항상 예수님을 내 심령의 주인으로 모시고, 왕으로 모시고 주님의 마음되어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입니다. 다시 말해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주님의 성전으로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오직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라는 말입니다. 솔직히 썬데이 크리스천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얼마나 나겠습니까? 썬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 자체가 주일만 간신히 신자노릇을 하고 나머지 요일은 자기 멋대로 살아간다는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원 타임 크리스천들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기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아예 일 년에 한두 번 교회에 출석해주는 이른바 이벤트 크리스천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가나안 성도’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습니다. 전에 직장을 다닐 때 회사에서 담배 피우던 사람들이 많다보니 옷에 담배냄새가 찌들어 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하다못해 PC방에만 들어갔다 나와도 담배연기가 옷에 배어 얼른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이 수없이 많은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커녕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혀 풍겨주지 못하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불과 몇 시간 갈비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와도 우리는 한참동안 옷에 묻은 고기냄새로 인하여 언짢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산다면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정상이 아닙니까? 말에나 행동에나 인격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기분이 좋을 때, 혹은 영적으로 컨디션이 좋을 때만 잠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은 아니었는지요?
진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항상 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전천후 크리스천들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가끔 ‘지금은 그리스도의 계절’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계절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야 정상이 아닐까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의 향기는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각처에서, 14절중)
예수 믿는 성도는 가는 곳마다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나 ‘각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 된 사람들은 때와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아니합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면, 금방 김치냄새와 된장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르는데 그들은 금방 알아냅니다. 어디로 가든지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냄새는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장롱속의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만 보면 분명히 목사요 장로, 권사, 집사,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봐줄까요? 제가 가끔씩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스님들은 어디로 가든지 스님이라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목사는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 된 성도들은 어디로 가든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말과 행실과 인격을 통해서 가정이나 이웃, 직장이나 회사 어디서든지 말입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어머, 저분도 교회 다니시나요? 혹은 아니 저분이 교회 집사님이세요?’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된 우리 모두는 어디서든지 말로만 떠들지 말고 인격과 행동을 통하여 진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향기를 코로만 맡는 것은 아닙니다. 눈으로도 맡고, 마음으로도 맡습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냄새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성도들이 자기들이 머물고 있는 처소에서 입으로만 향기를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격의 향기가 없으면 악취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일제 말기 어떤 믿음 좋은 장로님에게 일본 순사들이 신사참배를 줄기차게 강요하더랍니다. 끝까지 거절하는 장로님을 찾아가서 회유하고 강요하는 데 참다못한 장로님이 탄식하기를 ‘내가 얼마나 믿음이 없고 썩어 보였으면 이렇게 많은 똥파리들이 악착같이 달라붙느냐’고 통곡을 하더랍니다. 역시 위대한 장로님이 아니십니까? 과연 우리 안에도 이런 마음이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짜 향기는 내 안에 있는 인격을 통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면 성령의 향기가 나오고, 악한 영에 지배를 당하면 더럽고 추하고 역겨운 악취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논리입니다. 악한 영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데 예수 향기가 나올 리 만무하고, 성령님이 내주하시는데 악한 것이 나올 리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려면 당연히 내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성 프란시스가 제자들과 함께 길거리 전도를 나갔습니다. 제자들은 큰 소리를 외치며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 프란시스는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힘겨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의 짐을 대신 져주고, 땀 흘려 밭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김을 같이 매어주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더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도 이상하여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프란시스가 대답하기를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우리 인격의 향기를 통해 그들이 예수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진짜 그리스도의 향기 된 자의 삶입니다.
이처럼 진짜 향기는 나의 삶을 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인격을 통해서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디로 가든지 예수님의 향기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소아시아 지방을 순회하면서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었습니다. 광장이나 시장, 거리나 가정, 장소에 상관없이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내며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감옥 속에서까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며 살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향기였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의 향기는 사람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모든이들에게, 16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 복음에는 복음의 향기가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향기 말입니다(16절).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향기가 복음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의 향기를 맡기만 하면 생명을 얻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향기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때문에 이 향기를 맡은 자들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향기는 인종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오대양 육대주에 거하는 모든 인류가 이 향기를 마시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 향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생명을 없을 수 없었고, 세상을 이기는 능력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생명을 얻고 승리하기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복음의 향기를 맡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말입니다. 이 복음의 향기가 지금까지 오대양 육대주를 순회하며 다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이 복음의 향기가 가는 곳마다 세상을 진동시켰습니다. 생명 얻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소아시아지방으로, 중앙아시아로, 터키, 빌립보, 아덴, 고린도, 에베소, 로마, 유럽으로, 독일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한국으로, 중국으로, 계속 순회를 거듭하며 생명과 승리를 선포하고 다녔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 향기로운 복음은 쉬지 않고 땅 끝까지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기를 희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향기를 선물해주고 다닙니다. 이 향기가 들어가는 곳마다 악취가 추방됩니다. 때로 어떤 곳에서는 더럽고 추한 악취를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훼방했지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악취를 몰아내고 승리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사람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수납하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었지만,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망을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한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나 한사람으로 인하여 생명을 얻을 영혼이 있고, 사망을 얻을 영혼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5절과 16절을 읽어보십시다. 어찌보면 나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말씀은 아닐까요? 물론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날지라도 각 사람에 따라서 다른 반응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어떤 이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생명의 향기로 받아드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이는 마치 썩은 시체에서 나는 사망의 냄새로 받아드리는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 결정은 각 사람들이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어떤 책임이 없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완전히 자유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17절을 읽어보십시오. 전도자의 책임도 어떤 식으로든지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만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향기 된 자라 할지라도 한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함으로 받지 않고, 혼잡케 할 수 있는 개연성이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전도자의 역할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도자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순전하게 나타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전도자가 먼저 그리스도의 순전한 향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할 말을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아서 할 수 있는 한 정직하게 말하고 전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냄새를 풍겨낼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내는 자들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유통시키는 심부름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구원 얻는 자들에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모두가 필요합니다(15절). 단지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몫이요, 수납과 거절은 각 개인의 몫이며, 우리의 몫은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의 순전한 향기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십시다. 순전한 향기 말입니다. 진짜 좋은 향기가 되십시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이 향기를 전파하십시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사람에게든지 제한을 두지 마십시다. 내가 먼저 그리스도의 순전한 향기가 되어 그 향기를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전파하는 샤론의 향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