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2일째) 수요일
어제 수면 부족으로 늦게까지 잘 줄 알았는데 새벽 다섯시도 안 돼 눈이 떠져 꼼지락 거리다가 아침 산책을 하러 나섰다.
어젯밤 그렇게 사람들로 북적대던 골목길은 사람 하나 보기 힘들어, 예쁘고 고풍스런 골목길을 우리가 독차지하고 사진 찍기 놀이를 하며 즐겼다.
가끔 골목길 청소를 하는 청소부와 숙소를 빠져나가는 여행객들이 보일 뿐이다.
새벽의 이 고요함과 적막감이 좋다.
리장은 동양의 베네치아란 별칭이 말하듯 수로가 아름다운 도시다.
산에서 마을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을 나시족은 세 갈래로 나누어 가장 위 줄기는 마시는 물로,중간은 밥하는 물로,가장 아래에 흐르는 물은 빨랫물로 사용한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상형문자라는 나씨족의 동파문자가 그려진 벽 앞에서 사진도 찍었는데 리장은 거의 대부분의 상호에 한자와 영어, 동파문자를 병기한다.
한자가 상당히 추상화되어 있다면 동파 문자는 글자 모양이 나타내고자 하는 사물의 본 모습에 가깝게 그려내고 있어 그림문자에 가까운 특징을 보여 주며 나시족의 종교경전이자 백과사전인 동파경에 쓰인다.
이른 아침의 리장 골목을 한껏 즐긴 후에 숙소로 돌아와 운치 있는 정원에서 어제 사둔 장미꽃빵과 요구르트로 아침을 먹었다.
효율적인 시간 운영을 위해 짐을 빼서 숙소에 맡겨 두고 완고루로 향했다.
완고루에 오르면 리장의 장관인 기와집들이 눈앞에 펼쳐지므로 리장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이다.
리장이 처음인 분들은 60위안의 입장료를 내고 완고루에 입장하고 3년 전 가봤던 나는 입구 그늘 구석에 자리를 깔고 앉아 음악을 듣다 글을 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행 오기 전, 너무 무리하게 몸을 부려 먹은 데다 새벽에 일어났더니 졸음이 밀려와 벽에 기대 졸기 시작한다.
졸다가 단체로 몰려든 중국 관광객들의 떠드는 소리에 정신을 수습하고 기와지붕이 장관인 마을을 내려다본다.
구름의 남쪽 운남이란 지명답게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완고루에서 나온 일행들은 목부로 가고 또 기다리는 게 지겨워진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골목길을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블라우스와 몸빼 바지를 75위안에 샀다.
3년 전 리장 여행시에는 500년간 리장을 지배했다는 목씨 가문의 저택인 목부를 거금 60위안을 주고 들어 갔는데, 그건 조선 왕조 500년과 맞먹는 목씨 가문이 과연 어떤 집인지 하는 궁금함이 커서였다. 목씨 가문은 자식 교육을 최고로 우선시 했다는데 그 힘이 500년의 저력으로 나타난 것이니,교육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날 비송님과 미경샘은 이번 여행 최고의 사진을 찍었는데, 오작가로 불리운 지영샘의 사진 촬영 솜씨와 두 분의 멋진 포즈가 만난 걸작이라 생각된다.
숙소 리셉션에서 일행을 기다려 점심을 먹으러 한국인들 사이에 유명한 한식집 사쿠라킴으로 갔다.
사방가와 멋진 정경을 보여주는 전망 좋은 2층에서 된장찌개, 김치찌개, 파전 등을 시켜 점심을 먹었는데 파전은 별로였으나 된장찌개는 먹을 만 했고, 김치찌개는 아주 맛이 있었다.
가게 인테리어가 멋질 뿐 아니라 2층에서 바라보는 리장의 전망이 아주 좋은 사쿠라킴은 한국인 아내와 중국인 남편이 일본의 사쿠라 필 무렵에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가게를 차려 사쿠라킴이라 이름을 붙였다는데 들리는 말로는 이혼을 하고 아내는 다른 지역에서 사쿠라킴이란 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1층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누가 나를 불러 돌아보니 고등학교 교사인 초등 동기 친구이다. 윈난 여행을 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리장의 한국식당에서 만나다니! 일행을 살펴보니 친구의 대학동기로 역시 고교 교사인 안선생님도 보인다.
서로 즐거운 여행을 기원해 주며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리장고성의 상징인 물레방아가 있는 광장으로 걸어갔다.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는데 이곳에서 리장 고성이 시작되며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흑룡단 공원에 도착한다.
그런데 사람의 인연이 참 신기하다.
흑룡단 공원을 걸어가다 한국말이 들려서 돌아보니 2년 연속 실크로드와 몽골, 러시아 여행을 함께 했던 정의주님이 우리 뒤에 걸어 오시는게 아닌가!
한국에서도 뵙기 힘든 분을 이렇게 먼 이국 땅에서, 그것도 1년만에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흑룡단 공원은 호수와 설산과 구름이 아름다운 곳으로 리장고성 입장권이 있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데, 우리는 리장고성 입장권을 샀으므로 쉽게 들어갈 줄 알았으나 미경샘이 입장권을 숙소 가방에 넣어 두고 오는 통에 잠시 옥신각신 했지만 마음씨 좋은 관리실 아저씨 덕분에 요금 10위안을 내지 않고 들어 갈 수 있었다.
흑룡단 공원은 호수에 설산과 숲과 정자가 비치는 아름다운 곳으로, 평지를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 부담 없이 돌아 볼 수 있다.
공원을 둘러보고 난 뒤 다시 물레방아 광장을 거쳐 사방가로 향해 걷는데 왠 남자가 갑자기 우리를 강력하게 제지한다. 순간 깜짝 놀라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고성 입장권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괜찮은데 저 뒤에 걸어오고 있는 미경샘이 또 걱정이다.
그런데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미경샘은 입장권 없이 유유자적하게 걸어오고 있었으니, 외국인이라 봐 준 건지 아니면 미경샘의 미모가 윈난에서 통한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방가에서 우리는 잠시 오화석이 깔린 길바닥에 앉아 사진을 찍었는데 리장고성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이 리장 골목에 길게 늘어 선 기와 지붕의 선과 오화석 덕분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하여 성문 밖 빵차까지 우리의 배낭을 옮겨 줄 운송 수단을 섭외했는데 도착한 날 무거운 배낭 메고 숙소까지 걸어오느라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좀 있으니 짐 옮겨주는 사람이 와서 자전거에 리어카를 연결하여 거기에 우리 6인의 짐을 다 실었는데, 이십위안이란 돈을 내기에 미안할 정도로 짐이 많다.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그 많은 짐을 싣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나도 모르게 공사 중이라 끌고 가기 힘든 곳을 만나면 용이 쓰인다.
결국 내 마음 편하려고 일행 몰래 10위안을 더 드렸는데, 그건 내가 팁을 남발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20위안으로 계산하기에 우리 6인의 짐이 지나치게 많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남문 밖에 서 있으니 멋진 차 한 대가 와서 탔는데 엄청나게 좋은 차라 일행의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우리는 그 멋진 차에 내려 그와 정반대의 허름한 차에 몸을 싣게 된다.
빵차를 타고 샹그릴라로 가는데 비가 쏟아진다.
숙소에 문의해서 빵차를 섭외해 보니 성수기라고 샹그릴라 까지 가는데 1,300위안을 불러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으나 샹그릴라에 먼저 도착해 있던 케이씨님이 발 벗고 나서서 전화로 연결해주신 덕분에 600위안에 가게 되는데, 그 값을 한다고 세 번의 빵차를 갈아 탄 후에 샹그릴라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비 오다 햇살 나다를 반복.
타르초가 나타나는걸 보니 샹그릴라에 가까와 짐을 알겠다.
경치 좋은 곳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는데, 고도가 높아지니 기온이 뚝 떨어져 운전기사는 가죽점퍼를 꺼내 입으며 우리보고도 추우니 옷을 입으라 한다.
우리나라 늦가을이 연상되는 쌀쌀한 날씨다.
지금 부산은 찜통 더위라는데 여긴 추위를 걱정해야한다
3년 전에 왔던 샹그릴라 고성 근처에 오니 저쪽에 케이씨님이 서 있다.
1년 만에 만나 우리는 반가운 재회의 악수를 나누었다.
우리가 이틀 동안 묵을 숙소는 한팅 호텔인데 예전 중국 여행 때도 한팅 호텔에 묵은 적이 있는 걸 보면 체인 호텔인 것 같다.
3년 전 왔을 때는 고성 안의 전통 객잔에서 묵었지만 우리 떠나고 바로 샹그릴라 고성에 불이 나서 이젠 어쩔 수 없이 고성 밖 현대식 숙소에서 잠을 자야 한다.
호텔은 깨끗하고 좋았으나 예전의 그 허름한 객잔이 그리웠다.
7시에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 로비로 가서 4년 연속 여름 여행 때 마다 만나는 캡틴박님과 반가운 재회의 인사를 나누고, 숙소 근처의 식당에 가서 이번 여행을 같이 할 분들과 저녁을 먹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몇 분은 내일 도착하여 케이씨 포함 총 16인이 여행을 함께 하게 된다.
숙소에 도착하니 촌장님의 아내이신 문보살님이 질 좋은 보이차를 마시라며 방으로 부르신다.
우리는 여행 내내 두 분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었는데, 보살님이란 별칭답게 자비심과 배려가 몸에 베인 분이라 나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이날 밤 춥고 피곤해서 한국에서 구입해서 가지고 간 독일제 유담포에 뜨거운 물을 넣어 안고서야 잠이 들었다.
첫댓글 배경만 있는 것은 인터넷의 사진과 다를 게 없고, 사람이 들어 간 사진에 더 풍부한 감정이 실리는 것 같아 인물이 들어 간 사진을 넣었는데, 초상권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가능한 본인의 사진을 넣었습니다.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무릅쓰고...
ㅋㅋㅋㅋㅋ부끄럽고 민망해 하지 않으셔도 되요 ㅋ 후기와 잘 어울리는 사진들이에요
새롭네요. 모델도 괸찮고...ㅎㅎㅎ
흐! 정의주님 반갑네요. 여행객들은 어디서도 만날 수 있다는 진리? ㅎㅎ 모델들이 너무 멋져요!
리장 고성은 아침 일찍 가면 관광객이 적더라구요
더군다나 8시전에는 보호기금 80위앤도 안내도 되구요ㅎㅎ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동파 문자와 세 여자...잘 어울리는 조합같아요.
사막별님은 사진발이 좋아 어떤 사진이라도 다 잘 나올 겁니다..
여행 스타일이 비슷한 사람들은 또 다른 여행지에서도 우연히 마추칠 때가 많죠.
이 번의 사막별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