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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장부엉이 원문보기 글쓴이: 기즈모 붱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귀족의 직원? 노예? 노동자?정도였다
부의 소유자들로부터 생계를 위한 비용을 받고, 또는 지원을 받고 음악을 연주하고 음악활동을 하며 살아왔다
시대가 지나면서 부의구조는 바뀌고, 음악가들도 하나의 직업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시대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각각의 방식으로 수입활동을한다
연주가로, 선생으로, 프리렌서로 등등
어느정도의 수준과 수입활동을 하기까지
음악을 배우는 과정과 방식은 나라마다, 경제적여건마다 다양하고 엄청난 차이가 있다
유럽의 교육시스템과 복지시스템이 보장된국가에서는 음악도 하나의 교육의 일환으로
누구나 배우고 음악가가될수 있기도하고,
교육시장이 사교육으로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여건이 해당하는 사람들만의 기회가 존재할것이다.
음악이란 한면이 아닌 여러면이 존재한다
형식적으로는 기술자이면서 정신적으로는 인류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강력한 길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마음속의 세계를 움직이는 영혼의 소리라는 말로 표현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명한 독재자들, 독재국가들의 우민화나 국민의 힘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쓰이기도 했다.
물질이 지배하고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권력은 정치적인 권력에 의한 수단으로 음악이 쓰여온 예는 허다하다.
나라마나 시대마다 더 큰 궁전이나 운하, 건축물등을 지어서 과시하고, 예술품이나 음악, 신기한것들을 수집하거나 치장하여 과시도 한다.
그중에서 음악의 면만 살펴바도 대표적인 독재자들과 임금의 시대에 주로 그런일들이 허다했다.
유럽의 고전음악인 클래식에서, 우리가 서양음악을 음악시간에 배우고, 시대별로 나오는 대표적인음악가들
다수가 그 시대의 부를 가진이들, 왕과 귀족들, 또는 권력화된 종교, 부유한 종교를 위해 그에 맞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해왔다. 바하. 헨델, 베토벤. 모짜르트...
현대로 넘어오는 음악가들의 삶은 어떠한가
한국의 경우에 서양음악을 접한것이 일제시대의 홍난파선생이 익히 알려진음악가다.
많은 작곡가들과 음악가들이 일제시대동안에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음악을 접했다.
부유한집안에서는 일본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해방전후에 음악가들의 삶은 그리 넉넉치 않았다. 독학을 하기도하고,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를 통해 배운학생들이 스승이 되기도 하고,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경제적인 격차나 폭이 심하지 않은 사회였다. 극소수의 엄청난재산을 가진 친일파들과 권력을 가진자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식지 않은 교육열, 예부터 교육에 대한 열성이 높았던 한국사회, 평범한 국민들의 삶이 녹록치 않았기에 교육을 통한 다음세대를 위한 열정으로 후대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랬을것이다.
50, 60년대로 넘어오면서 종교계는 이미 선교사들의 자리를 한국인들이 자리잡고, 선교사들이 남긴 학교, 교회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해방전후의 계몽운동을 지나, 교육수준이 차츰 상승하고, 의식의 욕구도 커지고, 예술도 일반국민들의
수요가 자녀를 위한 교육으로 늘어나기 시작할 때였다.
50년대 전후, 60년대까지도 음악을 접한 일반인들은 주로 교회나 성당을 통한것이 대부분이고, 교육시스템안에서 음악을 접하는 사람은 극소수였을 것이다. 선교사를 통해 피아노를 배운 이들이 첫세대라면, 교회를 통해 음악을 접한이들은 그 다음세대라 할수 있다. 음악이 좀더 일반화되는데, 성당이나 교회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부모가 어느정도 경제적인 수입이 높은 가정의 교육에서 예술에 대한 자녀교육이 늘어나고, 점차 일반가정에까지 확장되기까지 음악이라는 영역은 어떤 것이였을까?
경제적인 부분이 절대적이었다. 현대는 더욱 심하게 격차가 난다. 앞으로 교육정책과 사회안전망, 복지정책이 발전하는 수준에 따라 격차가 해소되는 문제는 따라갈것이다.
음악을 처음접하는 방법이 어떻든 진로를 음악가로 정하려는 사람에게는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결정적이다.
자신을 후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한국에서는 매우 어렵다. 부모만의 지지로 충분하다면 매우 행운인것이다.
정명훈은 한국나이로 60세다. 이미 음악계에서 은퇴의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피아노로 시작해서 지휘로 바꾸고 활동한 음악가로, 국외음악가들과 비교할때 중하나 중간정도의 수준으로 활동해왔다고 볼수있다.
주무대는 프랑스였고, 유럽을 간간히 오가며 활동을 해왔다. 한국이 올림픽이나 큰행사가 있을때 초청할만한 인사라고는
단지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이름에 가치를 부여하고, 한국에서도 활동을 했다.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고 평가할 것이냐의 문제는 정명훈 개인의 삶에만 포커스를 맞출것이냐, 국내외를 포괄한
음악계전반에 포커스를 맞출것이냐이다.
정명훈개인에만 한정하는 극성열렬지지자나 팬이라면 객관적인 판단기준에서 흐려질것이고,
일반적인 그의 삶에 대해 그 자체만으로 그가 목표한 것은 어느정도 성취하고 중간정도의 수준으로 활동한것으로도
음악가라는 자체로의 삶이다. 음악은 음악가 자체로의 각각의 색깔이지 색깔이 다르다고 틀렸다 옳다의 문제도 아니고,
이색깔이 더 우수하다, 저색깔이 더 모자라다의 문제도 아니다. 콩쿨에서의 우승이나 순위조차 궁극의 목적에 도달한 음악가들에게는 의미가 없는것이다. 콩쿨이라는 자체도 어디서 자신의 가치를 더 인정받을수 있는 수단으로, 명성을 이용할수 있는 하나의 수단인것일 뿐이다.
일반적인 국외의 시각에서 볼때 정명훈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전공은 피아노로 시작해 차이코프스키 콩쿨입상한것은 22세라고한다.
현재의 유능한 음악도들은 그보다 나이대가 점점낮아져, 십대후반에서 십대 초반까지 콩쿨을 휩쓰는것이 이미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한국교육스타일은 거의 성공에 집착하는 시기를 넘어서, 개인적인 성취를 앞당기기 위한 맹목적인 교육이라 할만큼 50,60년대의 부모들의 열정은 비교가 안될정도로 정교하게 변화되었다.
음악도들의 급격한 성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지도자들의 세계도, 높은 수준에 있다.
특히 피아노부분은 한국의 대중적인 클래식에 기반을 이룰정도로 가장 일반적인 음악이 되었고, 수준도 상당히 높다.
부모들의 지지가 충분한 이들이 일찌기 음악적, 경제적 여건이 조화되어 어린나이에 해외나 국내의 최고의 스승들을 접하는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장영주, 장한나등의 현악기연주가들과, 이름도 다 나열할수 없는 피아니스트들
한국전반의 클래식음악계는 수준면에서는 상당히 높은 상태라고 볼수있다.
이미 교육시장은 포화상태를 넘어섰고, 유학만 다녀오면 대학으로 직장을 잡기가 어렵지 않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여러분야가 비슷한 현상이지만, 특히 클래식음악이 극심한분야로 진행중인것은, 사회적인 구조가 가진 특성이 클래식이 전해진 이후로 거의 60년이상의 긴 시간동안 현실에 맞추어 어떤 대안이 제시되고 마련되는 시도조차 없었고, 그 상태가 계속된다면 더욱 심화될것이라 본다. 방송에 나오거나 유학을 다녀온 유능한 음악가들이 서울에서 활동하기에도 별어려움이 없던 것은 옛날이야기다. 지방의 대학들에도 외국음악가들뿐만아니라 수도권에서 활동하던 한국음악가들이
교수와 강사로 넘친다.
현실적인 대안이 어떻게 제시될것이냐의 문제도 심각하게 고민되어야할 것이다. 대학이 전공자들만의 음악교육이라면,
일반인과 클래식을 처음접하는 이들이 접하는 음악교육의 형태도, 학원, 개인, 초등학교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교수의 임금이 연봉평균이 얼마일까? 초봉이 있으니 시간을 감안해도, 20년 근속에 7000만원정도라고 예상해도 최고 1억을 넘기 힘들다고 본다.
공식적인 연봉으로 인센티브를 줄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대한으로 책정해도 그럴것이라 본다.
강사들의 연봉은 시간당으로 많이 한다해도 교수들의 3분의 일을 넘기 힘들거라 본다.
(관련정보가 있으시다면 알려주시면 덧붙이겠습니다.)
음악가로서 연주가로 활동할경우에 수요의 민감한부분은 수익과 직결될것이다.
기획사도 관련담당자도 손익에 대해 회사의 투자가 결정되는 것은
수익이 보장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일반회사들의 투자와 수익구조는 맹목적인 후원자가 없는 이상 이루어질수 없는것이다.
음반활동과 연주회, 여러가지 초청음악활동, 순회연주활동등의 스케쥴관리부터, 홍보등등의 문제까지
기본적인 조건이 갖추어진다해도 이런 여러조건들이 잘 맞아떨어지는 수요가 충족되어야 한는 것이다.
많은 음악가들이 교육분야중에 특히 대학으로 몰리는 이유도 안정적인 수익에 대한 문제때문이다.
여러방식의 연주회활동이 일시적으로 수익을 낼수 있지만 장기적인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분야별의 특성상이나 월등히 돗보이는 연주 능력, 개인의 성향이나 유명도, 활동영역등에 따라 연주활동이 더 적합한 음악가들도 많다. 대중의 호응이 높을수록 더 많은 음악가들이 무대에 설 기회가 늘어날수도 있을것이다.
여러면을 다 살펴볼수 없겠지만. 이런 사회전반적인 것을 짚어보면서
학교나 일반사교육시장, 연주활동영역, 그리고 사기업의 연주단, 공적인 영역의 연주단등등을 볼수 있다.
학교나 일반사교육시장은 한정된 수요와 한정된 수익이 발생한다. 어느정도의 수준에서 예상할수 있는 소득수준이다.
사기업의 연주단은 기업의 후원과 계획된 예산으로 운영된다. 기업의 목적에 따라 예산과 활동이 이루어질것이다.
공적인 영역의 연주단은 공적인 수준에서 예산과 기준이 정해진 한도에서 운영이 되는것이 기본이다.
한국의 사회구조에서 일반의 사적인 영영과 공적인구분은 철저하다고 보기에는 공적인 리더에따라 달라진다.
공공의 경계를 지키는 가치를 시민들의 세금을 투명하게 쓸것이냐, 리더의 개인적인 가치나 용도에 더 중점을 둘것이냐에 따라, 그 경계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국의 선거에서 자주 볼수 있는 현상은 개인적인 관계나 이익에 더 중점을 두느냐, 함께 잘사는데 중점을 두느냐에 문제에 부딪힐때, 이념이나 합리적인 가치판단은 뒤로 밀려나기도한다.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개인적인관계나 이익에 앞장서서 극열하게 동의하는 다수가 보수보다 더 앞으로 나가서
이익의 편에 서는 놀라운 장면도 종종 볼수 있다.
이번 서울시향의 지휘자 선정문제가 뉴스로 보도되면서 이슈로 떠오르기 전에, 시정질의에서 한나라당의원과 서울시향쪽에서 정명훈을 대변하는 말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산검증의 과정을 프라이버시로 정의하고, 시민들의 알권리를 행사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음악가들의 삶은 어느정도 예상가능한 분야이고, 한국의 구조적인 현재의 모습이 앞으로 바람직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그 대상을 교육이나 교육계로만 한정되는것을 넘어 일반시민들이 참여할수 있는 장을 열고, 적극적으로 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때가 된것이 아닌가 한다.
이 시점에서 서울시향의 모습은 참으로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가는 구조적인 모순과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공공의 영역을 무너뜨리고, 사적인영역을 주장하고 있는것이다.
시정질의에서 예산의 검증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기도 전에 시향과 정명훈이 취한 것은 모르쇠였다.
재임계약이 끝난 직후의 인터뷰에서 정명훈은 나는 음악밖에 모른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뉴스에 보도된 것들이 과연 거짓말도 아닐것인데 7년간그가 해온 일들은 누가 했다는 말인가?
또다른 정명훈이 한명더 있다는 말인지 자신의 의견을 분신처럼 대행하는 또다른 누가 있다는 말인지 전혀 해명조차 하지 않았다.
정명훈의 현재의 모습과 결정은 기존의 음악계와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음악도들, 음악을 접하게 될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논란과 문제제기를 낳게 될듯하다.
그가 원한것은 음악이었다고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것은 공공의영역에서조차 시민들의 정당한 검증을 거절하고,
음악보다 더 많은수준정도가 아니라 절대적권한이라는것을 보여준다.
세계의 어느 음악가도 가져보지 못한 수준의 개념을 훌쩍 뛰어넘는 절대적인 것을 가지고 있고 또 더 가져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영역인 공공세금을 가져가는 것을 어떤 생각이나 고민조차 해보지도 않고 , 할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7년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만들어놓은 것으로도 권한과 권력을 이어가는데 대응하지 않고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걸 알고 있었고, 그렇게 했다는걸 보여줬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덮어주려는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부패라는것을 알았을것이다. 문제가 제기될때 스스로 모든것을 오픈하고 시민들에게 해명하는것이 공공성에 대한 기본이다.
강호동이 은퇴를 선언하고, 방송활동을 중단한지 시간이 어느정도 지났다. 왜 그가 은퇴했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부동산관련해 강원도에 땅을샀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그부분에 대한 사과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법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그의 은퇴는 그 자체로 사과이고 책임있는 모습이라 본다. 공인으로서라기 보다 국민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엄청난 수익을 얻는 사람으로서의 50%의 공공의 책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인면에서 방송사가 공영방송인지, 일부분공영지분의 방송인지 모르겠으나, 방송사 직원신분이 아닌, 프리렌서로 소속사는 사적인 영역의 회사에서 수입활동으로 구분될경우 강호동은 수익에 대해 공금횡령죄부분은 아니게 된다. 땅투기에 대한 부분은 부동산투기관련법일수도 있다.
전문분야의 구분을 넘어, 또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구분에 대해서도
기본을 생각하고 공직을 수행하느냐의 문제이다. 그 자리가 계약직이던 임시직이던, 정규직이던간에..
정명훈과 이명박시장이 계약할때 정명훈이 원하는것을 모두 적고, 서울시는 싸인만하는형식이었다는 보도에서
그때의 방식이 또다시 이어지는것이 과연 옳은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시민의 세금에 대한 고민도 없는것이다.
상식적인 선에서 시민의 편에 서느냐, 원하는것을 모조리 요구한 정명훈의 음악계의 대단한 정치력으로 정치적인 횡포에 가까운 백지계약을 옹호하느냐의 문제에서 정명훈이 요구했던 백지계약의 입장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시민들의 예산검증의 정당성을 프라이버시로 막았다.
서울시향이 정명훈과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프라이버시시스템으로 인해, 반론은 시민이 제기하고, 대답은 정명훈이 해야하는 상황에 정명훈이 묵묵부담 침묵한것이다. 조중동도 문제제기는커녕 정명훈편을 든다.
정명훈, 조중동, 정명훈프라이버시 서울시향이 일심동체가 된것이다.
음악계가 이렇게 부패했다고 느껴본적이 없다.
공공의 영역에 이런 백지계약식의 횡포를 행한 음악가도 지금까지 본적이 없다.
어느 음악가도 어느나라에도 백지계약으로 무한한권한을 요구하는 음악가는 본적이 없다.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음악계의 평론가들과 비평이 이번이슈에 올라왔다. 좋은 제안들을 볼수 있어 전반적인 음악가들의 세계에
희망은 볼수 있었지만, 과도한 권한을 가지고 검증은 거절하면서, 자신을 음악만 아는사람이라고 포장하는것이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눈을 볼것이 아니라 시민의 눈을 맞추고 그런말을 할수 있겠나?
이명박시장과의 계약서를 기자들이 언론과 일간지 일면에 보도한후에 그런말을 할수 있겠나?
연봉2억4천넘게 깔고, 회당 4250만원 이면 5회면 20억이 넘는다. 10회면 50억이 넘을것이다.
거기다 홍보비의 30%, 그외에 활동비 판공비등 40억내외에서 80억까지도 고무줄처럼 늘어날수 있다는것이다
3년간 120억에서 240억까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명훈을 인정한다는 사람들과, 그의 팬들의 입장에서 그가 가져가는 시민세금이 많지 않은 돈으로 보일것이다.
그부분은 공감할수 있다.
그러나 그전에 시민세금이라는 공공의 영역과 성격에 대해, 소수의 경제적능력이 되는 클래식애호가들외에
다수의 시민들에 대해 미안한마음을 가져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그가 가져가는 돈은 연봉 1000만원도 겨우되는 사람이나 고소득까지 모든 시민의 세금이고, 기저기값, 분유값, 한겨울에 연료비를 아낀 세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여유있는사람들보다, 다수의 아껴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기본 예의인것이다.
정명훈과 한나라당의원이 프라이버시라고 주장하며, 질문도 하지말라며 질문하는것을 예의가 아니다라고 하고, 비공개로 하겠다는 문제는
다수의 시민들에 대한 기본권을 빼앗는것일수도 있다.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를 거치지 않겠다는것이다.
시민들이 알게되는것도, 질문을하는것도 문제제기를 하는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명박시장이 정명훈과 비공개로 한 계약을 그대로 똑같은 방식으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7년간의 비공개계약, 시민들모르게 시장과 정명훈둘간의 비밀계약으로 시민예산을 운용해온것이
7년이 지나서야 시정질의에서 공개된 마당에
정명훈스스로 침묵으로 일관하며 재계약을 하고야 말았다.
정명훈이 의도한 것인지 알수 없는일이지만
그 행위자체만으로도 시민들의 입과 눈을 막고 귀까지 막은것이다
보고도 듣고도 읽고도 모른척하라는 것이다
나는 음악밖에 모른다 며 말이다.
김일성도 죽고 김정일도 돌아갔다고 한다.
정명훈스스로 음악가로서 침묵으로 문제를 덮기보다, 7년간의 백지계약내용에 대해, 운영과 예산전반, 단원선정이나 자신이 해온 모든 권한과 일들에 대해 오픈하고 검증을 받고, 정당성을 얻기 바란다. 자신이 당당하게 문제제기에 대해 시민들에게 화답하고, 소통하고
인간으로서 사후에도 음악에 대한 좋은 예를 만들기를 바란다. 그게 아니고 이대로 간다면
한국의 음악계가 음악밖에 모른다며 침묵하는 정명훈같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공공의영역을 분명히 지키고, 투명한 예산공개는 기본으로, 시민들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갈수 있는 예산운영을 위해
고민하고, 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열정을 쏟는 음악가들이 사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음악만 있고, 그외에 어떤것도 보이지 않는 불쾌한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로 갈때
미래의 음악가들이 더 아름다운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회를 만들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가들의 역할은 소수를 위한 음악보다, 소외된 사각지대의 어려운 곳을 돌아볼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을때
따뜻한 감동으로 음악이 연주될수 있는것이다.
음악이 있고 사람이 있는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고 음악이 있는것이다.
음악만 뛰어나다고 감동이 있는것이 아니라
감동이 있는 사람이어야 음악이 감동이 있는것이다.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없는사람이 아무리 기교가 뛰어난음악을 한다해도 뛰어난 음악가일뿐 따뜻한 음악가는 아닌것이다. 소리만의 느낌이냐 따뜻한 마음이 살아있는 음악이냐
3년의 수백억이 될지 모르는 예산 요구하는 재임계약, 검증을 거치지 않고, 예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지휘횟수를 줄인다고 한다.
작년 35번을 지휘했고 한다. 한달에 평균3번이 안된다. 지휘를 줄이고 정명훈이 원하는 예산에 맞추어주면서 까지 정명훈만을 붙들어야만 서울시향의 수준이 유지되는것인가? 대안을 제시하는 음악가들과 음악평론가들의 의견이 현실에 불가능한 것인지, 공개공모를 할수 없는것인지, 연봉을 2억수준으로 월급2천만원 가량의 돈으로 유럽이나 한국의 훌륭한 음악가들을 선정할수 없는것인지,, ... 이런 시도를 거친후에, 침묵하는 정명훈과 정명훈만 고집하는 것은 그사람들만의 욕심이 아닌지 논의되어야한다고 본다.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된자리에서 검증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정명훈자신을 위하여, 음악이 다수의 시민들에게도 사랑받을수 있는 음악이 될수 있도록 말이다.
한국의 음악계와 음악인들의 건강한 발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