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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되어야 할 성구>
1)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1:5)
2)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것이요 (1:7)
3)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9)
4)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2:25)
5)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5:12)
<주일 설교>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오늘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요한1서입니다. 우리는 요한1,2,3서를 합하여, 요한 서신으로 통칭을 합니다. 요한 서신들은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유다서와 더불어 ‘일반 서신 (general letters)’ 으로 분류되며, 이러한 분류는 특정 지교회나 개인을 대상으로 한 바울의 서신들과 달리, 보다 일반적인 대상을 수신자로 하고 있다는 특징에 기인합니다. 그런데 요한이서와 삼서가 특정 교회 혹은 개인들을 대상으로 보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서신들로 분류된 것은, 오랫동안 이 서신들이 요한일서에 부가된 서신들이라고 간주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는 당시 소아시아 (Asia Minor) 지역의 불특정 다수의 교회들 및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서신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일반 서신으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세 편의 요한 서신들은 분명 각각 독립된 편지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 편은 모두 다 바른 신앙 지식의 확립 및 이단에 대한 경계의 두 방면을 포괄한 정통 신앙의 강조와 예수의 제자요 성도로서의 사랑의 실천이라는 두 개념을 기본 공통 주제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세 편지들은 이같은 기본 주제를 각각 다른 양상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본서에서는 이 요한의 세 서신들을 한 단위로 함께 조망합니다.
한편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각 서신이 누구에 의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서신들을 보낼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우선 당시 그는 에베소에서 목회 사역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사 자료에 의하면 요한은 유대 전쟁 (A.D. 66-70년) 발발을 계기로 에베소로 이주하였으며, 약 30년 동안을 에베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신(神)이라 칭하며 숭배를 강요하던 도미티아누스 황제(D omitianus.A.D. 81-96년) 치하의 박해를 제외하면, 요한이 마지막 남은 사도로서 대처해야 했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영지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의 활동이었습니다. 물론 이 영지주의 (Gnosticism) 가 체계화된 것은 A.D. 2세기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A.D.1세기 중엽의 초대 교회 시대부터 소위 ‘전영지주의자들 (pre-Gnos ticism)’ 이 발홍하여 초대 교회의 순수 신앙을 위협하였습니다. 신약 성경 중에서, 제4복음인 요한복음과 바울의 목회 서신들, 그리고 특히 요한1. 2. 3서와 베드로후서, 유다서 등은 이런 영지주의의 도전을 직·간접적인 배경으로 하여 쓰여졌습니다. 즉 1세기 말엽에 이르자, 영지주의적 사상으로 무장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은 점점 더 활발해졌으며,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할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협하는 중대한 세력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영지주의는 ‘지식’ 을 의미하는 헬라어 ‘그노시스’ 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노시스는 물론 일반적 지식을 가리키기도 하였지만, 영지주의에 있어서는 특별히 신적 비의에 해당하는 영적 지식, 곧 허망한 세상일 뿐인 이 육적 세상이 아닌, 참 세상인 영적 세계에 대하여 비의적 계몽에 의하여 얻게 된 지식을 가리켰습니다. 즉 세상은 저급하고 무가치한 물질 세계와 영원하고 완전한 영의 세계로 이분되어 있으며, 인생은 그 영혼이 육체에 갇힌 불완전한 존재인 바, 이제 영혼이 육체로 부터 해방되어, 영적 세계로 복귀함으로 소위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영적 세계에 속한 신적 의지로부터 계시된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이 곧 영지(靈知)이며, 이런 영지를 중심으로 한 이원론적 우주관과 구원관을 가진 사상이 곧 영지주의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영지주의’는 헬라 사상과 동방 종교들의 신비 사상, 그리고 소위 중간기 시대를 무대로 하여 생겨난 유대교 (Judaism)와 기독교의 사상이 혼합된, 일종의 혼합 사상으로, 각 시대와 지방에 따라, 심지어 각 인물에 따라 그 사상과 체계가 달랐습니다. 때문에 영지주의가 어떤것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스스로 ‘영지주의자’ 라고 칭하면서 이원론 사상에 근거하여 물질은 무조건 악하고, 영혼만이 선하며, 인간이 이 악한 물질 세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초월자로부터 계시되는 지식, 곧 영지를 소유해야만 한다는 공통된 사상에 근거를 두는, 일련의 무리들을 총칭하여 ‘영지주의’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의 계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화 체계를 가지고 있는 영지주의의 특징을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비성경적인 이원론( unbiblical dualism)’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이원론은 기독교 교리 및 성도의 윤리적 생활에 있어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오류들을 파생시키게 됩니다.
1)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특별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신비한 ‘영적 지식’ 에 의해 획득된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지식(gnosis)’ 이란, 자신이 본래 신적 존재이며, 영혼의 구원은 물질 및 육체의 감옥을 이탈함으로써 얻어진
다고 하는 지식을 말합니다.
2)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부인됩니다. 즉 그리스도는 단지 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든
지(가현설), 아니면 예수라고 하는 한 뛰어난 인간에게 영적인 그리스도가 세례시에 임하였다가, 십자가 수난 전에 떠났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케린투스파).
3)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가혹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극단적 금욕주의)는 것입니다.
4) 물질계는 원래 악한 것이므로, 기존 세계의 도덕 체계를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전혀 잘
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극단적 방종과 쾌락주의).
이상에서 보듯이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유사한 점도 있는 듯하면서, 근본적으로는 전혀 상반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요한 당시, 이와 같은 영지주의 신화 체계가 완성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2항과 4항의 내용을 요한일서에서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4:1-3:3:4-9) 거짓 교사들의 주장이 이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상당한 정도로 파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도 요한 당시,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의 활동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faith)과 윤리(ethics)의 양 측면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서신들을 기록한 목적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을 경계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요한서신의 첫번째 서신인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듣고, 보고, 만진’ 직접적 목격자로서 성육신의 실재(實在)에 대해 증언하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을 단호히 적그리스도 (anti-Christ) 라고 정죄합니다. 그리고 물질은 본래 악하다고 하며, 육체적 방종을 일삼고, 죄를 짓는 것을 옹호하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반박하며,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파괴하는 것임과 죄를 범하는 자들은 마귀에게 속한 자들임을 경고합니다. 더나아가 성도들은 빛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를 적극 행하며.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받은 자들로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를 요약하자면, 사도 요한은 일서에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달리, 하나님의 참된 자녀임을 테스트할 수 있는,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신학적으로(theologically) 참된 성도는,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윤리적으로(ethically) 참된 성도는 불의를 행치 않고, 빛 가운데서 의를 행 해야 합니다. 셋째, 사회적으로(socially) 참된 성도는 형제에 대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 기준에 비추어 독자는 자신이 진정,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며, 또한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무엇을 힘써야 할 것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 서신의 메시지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1.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실재(實在)
요한일서의 서두에서 사도 요한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한 당시의 거짓 교사들은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비성경적인 이원론 (unbiblical dualism) 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듣고, 보고, 만진’ 직접적 목격자로서, 성육신의 실재에 대해 증언하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을 단호히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정죄합니다. 이처럼 요한일서는 요한복음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자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허구적 신화 체계에 따른 거짓 교사들의 주장을 무력화할 뿐 아니라, 자칫 추상적이고 교리적일 수 있는 신학적 주제에 생생한 감동을 실어 줍니다.
2. 불법을 행치 않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하는 영지주의적 이원론은 육체의 욕구를 지나치게 억압하고 학대하는 극단적 금욕주의와, 그와 정반대로 육체 및 물질은 원래 악하기에 물질 세계의 도덕과 윤리를 어기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극단적 쾌락주의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해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며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신 분이심을 밝힙니다. 그리하여 죄를 범하는 자는 하나님의 법을 파괴하는 자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마귀에게 속한 자들임을 강력히 경고합니다. 이러한 경고를 통해, 요한은 진정 하나님께 속한 자는 죄를 범치 않으며, 혹 죄를 범하였을 경우에라도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적극 순종하는 자여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3. 사랑 실천의 근거로서의 하나님의 참 사랑 인식
요한일서의 주요 메시지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진정한 형제 사랑을 실천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성도들이, 참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근거로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참 사랑을 먼저 인식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입니까?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로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행위를 통해, 참 사랑이란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으며, 또한 그 사랑 때문에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사랑 받는 존재로서의 확인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타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바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하는 중요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4.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온전해지는 하나님 사랑
하나님의 참사랑은 형제 사랑 실천의 근거이면서, 또한 역설적이게도 형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더욱 깊이 깨달아지고 경험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묵상만을 통해서 온전해지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 지식의 탐구만을 통해서도 온전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형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2 : 5 ; 4: 12).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참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경험하는 길은,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자들을 사랑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요한일서는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5. 흔들리지 말아야 할 성도의 믿음의 확신
요한일서의 주요 기록 목적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영생을 가졌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에 있습니다(5:13 ),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 시라는 것에 대해서는 ‘물과 피 (water and blood)' 의 증거, 곧 세례 뿐 아니라,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라는 역사적(歷史的) 증거를 통해서도 뒷받침되며, 또한 성도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내적(內的) 증거를 통해서도 뒷받침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내적 증거는 궁극적으로 자기 아들에 관해 증언하시는 하나님의 증거인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고, 영생을 가진 자가 되었다는 이 확신 가운데 굳게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확신을 흔들려는 세상의 어떤 거짓 교훈도 용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한1서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요한1서는 "진짜 그리스도인과 가짜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기준"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값비싼 것일수록 가짜가 득실거립니다. 교회 안에도 진짜 신자와 가짜 신자가 섞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짜 신자와 가짜 신자를 구별할 수 있을까요? 사도요한이 보낸 요한일서의 편지를 수신했던 교회안에서 일단의 사람이 분리 되어 나갔습니다. 왜 나갔을까요? 왜냐하면 이들은 참 신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본래 참 신자였다가 타락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지역 교회 안에는 있었지만 사실은 참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참신자와 거짓 신자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내가 참 신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요한 일서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는 참된 신자라면, 반드시 다음의 세 가지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신앙고백과 서로사랑과 순종의 삶 입니다. 요한 일서의 구조는 참 성도의 특성인 이러한 세가지 증거를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입니다(1:1~4, 2:18~27, 4:1~6, 5:1~12). 둘째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2:3~11,3:11~24, 4:7~21). 셋째는 상습적으로 죄를 짓지 않으며, 말씀을 순종하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1:5~2:2, 2:28~3:10, 5:13~21).
그러므로 요한일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시켜 주는 참된 증거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참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록 도와 주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5:13). 그렇습니다. 요즘처럼 교인 회원권을 남발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우리에게 요한일서가 제시하는 참 그리스도인상은 큰 충격이 될 것입니다.
결 론
오늘 우리는 요한일서를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을 다시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누리고 있습니까? 나는 참된 신자인가요? 나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인가요? 그렇다면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님께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는 죄에 대해 민감하여 하나님 말씀 순종하기를 즐겨하나요? 우리 가슴깊이 되새기는 오늘 주일 아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 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 두란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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