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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 니파타 [바라문의 삶에 대한 경] 총정리
바라문의 삶에 대한 경은 서론의 지문, 32개의 본론 게송,
결론의 지문으로 서론, 본론, 결론이 잘 갖추어진 제법 긴
경전이며 지문의 결론 부분에 세 가지 소중한 것[삼보]에
대한 귀의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도 이 경전의 특징
이라면 특징이다.
인도라는 나라를 어느정도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계층간의 보이지 않은 거리이며 현재 법적으로는
그러한 계급이 없고 평등하다고 명문화 되어있으나 그들의
실제적인 삶 속에서는 여전하게 묵직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사성계급제도이다.
1. 바라문 계급 : 제사장으로 베다를 외워 전승하는
종교의 최고계급
2. 크샤트리아 계급 : 왕족, 장군, 무사, 지배자,
권력자등의 왕과 대신들
3. 바이샤 계급 : 평민으로 하급공무원, 농업, 상업, 공업등
주로 생산직에 해당하는 사람들
4. 수드라 계급 : 노예로 평민의 일을 주로 도우며 무사
계급의 하급으로 노역하는 사람들
그 다음은 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접촉하면 안되는 천한
사람들[불가촉천민]이 있으니 이 사람들은 사람이면서
짐승처럼 대접을 받고 노예나 평민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똥을 치우는 사람, 쓰레기를 처리하는 사람, 무당, 주술사,
시체 태우는 사람등으로 대부분 아주 저급의 일을 도맡아
하며 아무런 권리 주장도 하지 못하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 경전에 등장하는 부유한 나이 많으신 바라문들은 최고
계급으로 요즘말로 명망과 재산이 있고 그래도 지역의
유지나 코방귀 정도 뀌는 사람들이며 고따마 존자라고
불리는 석가 세존은 두 번째의 계급에 해당 되었으니
두 계급은 요즘으로 말하면 지배 계급에 해당되므로 서로
윈윈하는 사이였으니 교류도 빈번하고 통혼이 가능한
계급이었으니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이 두계급이 평민이나 노예계급과의 혼인은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범죄였으나 높은 계급의 남자인 경우는
그 계급의 권위를 버리면 낮은 계급으로 강등되어 결혼을
하고 살 수는 있었으나 여성의 경우는 그것이 허용이 되지
않았으며 여성 자체는 참정권이 없었던 것도 인도에서
여성의 지위와 권리가 얼마나 열악한지 단편적으로 보아도
충분하게 알 수 있으며 노예나 여인의 경우 매매가 가능하니
어쩌면 거의 모습만 인간이지 동물과 같은 취급을 받은
기록도 볼 수 있으며 여성은 재산권을 물려 받을 수 없으므로
이 부분도 여성이 전혀 기를 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사유해본다.
이러한 계급의 차별이 심한 시대에 석가 세존은 그러한
계급의 불합리한 관계와 계급의 불평등을 거대한 승가
조직내에서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셨으니 이발사, 똥 지는
사람등의 불가촉천민이나 노예도 출가를 시키고 왕족
계급의 왕자나 바라문 계급의 사람이 출가를 늦게하면
먼저 출가한 노예나 평민, 혹은 불가촉천민 출신에게 절
세번을 시키는 예법을 시행하였으니 그 당시의 계급간의
불평등으로 본다면 그것은 혁명이며 다른 사람 눈에는
거의 반란의 행위로 보였을 것이다.
석가 족의 멸망으로 사분오열이 왕족 중 석가족의 여인
들은 석가 세존을 길러준 이모와 출가전의 부인등이 모두
출가의 길을 선택하여 비구니 승가를 이루니 당시 여성의
출가는 종교계를 뒤집는 큰 사건이니 전혀 지위나 위상이
없는 여인이 정식 성직자로 그것도 내노라는 단체의 종교인
으로 인정 받는것은 기준의 보수적인 종교의 지도자나
단체는 용납하기 어려운 큰 사건이었으나 당시 큰 나라에
해당했던 나라들이 석가 세존과 승가를 지지했을 뿐 아니라
신흥 부자 세력들은 진보적인 사문들을 지지했기 때문에
이들의 지지와 그것보다 석가 세존의 진리에 바탕한 심사
숙고가 당시의 시대와 상황이 반대한 일을 분명하게 결정
하고 최초의 비구니 승가를 형성하게 되는데 학자들이
연구에 의하면 이미 비구 승가에 석가족 출신의 왕자들이
일곱명이나 출가해 있었고 그 이외에도 고관 대작이나 그의
자식들까지 상당한 수가 출가해서 있었기 때문에 석가족
여인들의 출가에 여론을 형성했다고 하지만 그 결정적인
역할은 석가 세존의 수석 비서이며 미남자 스님의 대표인
아난 스님의 간곡한 여러번의 권유와 결정적인 질문으로
석가세존을 설득하는데 여인도 아라한이 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여인도 성불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초기
불교도와 대승불교도의 입장적인 견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석가 세존은 여론에 밀리거나 누구의 권유로
여인의 출가를 허락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입각해서
여성이 가지는 진리에 부합하는 깨침으로 보셨으며
진정으로 마음을 바로 알고 보면 남녀의 차별은 문제가
없다는 분명한 입장이나 그것이 생활이라는 측면에서 여성
수행자와 남성 수행자가 섞이고 교류하게 되면 부수적으로
생길 여러가지의 문제를 심사숙고하시며 고려하셨을 것이며
최종으로 진리의 측면에 입각해서 여성도 아라한이 될 수
있고 깨침을 얻어 바르게 보고 아는 해탈 열반의 삶을 체득
하고 구현할 수 있다는데 동의를 하셨다는 것이므로 가장
지위와 권위가 약한 여성을 단 한번으로 가장 높은 종교인의
지위로 끌어올려 위상을 높인 분은 아마도 세계의 역사상
종교의 역사상 석가 세존께서 처음으로 실천에 옮기신것
이라고 생각된다.
이 경전의 주요 내용은 옛 바라문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시대를 따라 어떻게 변했으며 현재의 바라문을 어떠한 가를
석가 세존의 가장 윗 조상 즉 석가족의 감로왕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바라문 계급이 존재 했으나
사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완전하게 정립이 된 상태가 아닌
발전의 과정으로 진언을 만들어서 제사를 권유한다는 대목은
진언의 완성과정과 제사를 시행하는 시점으로 볼 수도 있으니
바라문의 역사는 인도의 역사와 함께하기 때문에 종족과
계급의 문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있어서도 전환점이
되어가는 시기로 보여지며 결국에는 외래의 종족이 지배
계급이 되고 그들의 우두머리 계급이 바라문이 되고 계급
제도를 통해 바라문과 크샤트리아가 지배계급으로 바이샤와
수드라계급이 피지배 계급으로 분류되어 통치를 하였고
사상적으로는 바라문이 중심이 되어 리더를 해왔으나
시간이 지나며 바라문이 부패하게 되고 이러한 시점에서
진보적인 사상계와 종교계에서 사문이라는 자유 사상가
종교인들이 등장하면서 신흥부자와 상인들이 이들을 지지
하고 전쟁을 통해 정복 군주가 된 연합국의 덩치가 큰 왕
들이 석가 세존이나 사문의 집단을 지지하면서 사상과 종교
정치와 문화 계급과 종족 사이에 수 많은 교류와 혼재 현상이
있었을 것이니 이러한 중심에 석가 세존은 진보적인 세력의
중심에서 가장 명망을 얻고 세력이 강한 모임이었으므로
사상계나 종교계 정치계나 경제계까지 그 영향력이 대단
했으니 석가 세존의 결정은 마치 태풍의 눈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부자인 바라문들의 방문은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다신적인 신화에서 인도의 최고신이 석가 세존께 가르침을
청하는 대목이나 다른 민간신앙의 주류를 이루는 신들이
석가 세존께 귀의하는 이야기나 바라문의 귀의 다른 사문들
중 작은 단체의 귀의나 당시 아주 큰 단체에 해당하는 세사람
의 가섭 형제의 귀의는 참으로 큰 사건 중 큰 사건이었으니
이 경전의 주제가 되고 있는 바라문의 생활과 역사 사상과
종교행위등이 석가 세존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하나 드러
나고 증명이 되는 부분이니 바라문이나 다른 종교의 리더
까지 석가 세존께 귀의하는 현실에서 본다면 부자 바라문
들의 귀의는 그래도 엘리트 지배 집단으로 누릴 것 다 누리던
사람들이 일말의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진리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사람들이 나름의 권위와 자존심을 버리고 석가
세존께 가르침을 청하고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 삼보에
귀의하며 정식으로 재가 불자가 되는것이니 어쩌면 이러한
부분은 종교개혁의 제법 익숙해진 때가 아니었을가 한다.
또 하나 바라문들의 기본교육 과정과 생활을 연결하여
사유해 본다면 만약 기본교육과정을 잘 이수한 바라문은
그렇게 막무가내의 행동을 하기에는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
되며 바라문의 일생을 다음의 과정과 함께 생각해보자.
1. 스승에게 베다를 학습하는 청년기의 청정한 삶[범행기]
2. 집에 돌아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사는 세속적인 삶[가주기]
3. 세속을 떠나서 숲 속에 수행하며 사는 삶[임서기]
4. 여러 곳을 떠 돌며 수행하는 삶[유행기]
이러한 범행기-가주기-임서기-유행기의 네 과정은 세간과
출세간 그리고 마지막의 수행과 유행을 통한 편력은 바라문의
가장 이상적인 교육이며 삶의 패턴인데 이대로만 잘 산다면
존경과 존중을 받고 한 평생을 보내게 되니 종교인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계급으로서 그다지 빠지는 모양새는 없었을
것인데 제사를 통한 욕망과 쾌락 재산의 축척은 바라문들의
삶이 부패한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고 그것이 큰 흐름이
되어 자기자신들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피의 제사와 함께
무도하고 욕먹으며 양심없고 무자비한 바라문으로 되어
갔을 듯하다.
당시 바라문들의 제사의 내용을 보면 여기에서는 주로
소만 이야기하나 양, 돼지, 말, 소등 수백, 수만마리를
한꺼번에 제사를 지내는데 그러한 대형 행사는 나라에서
주관하여 제물을 준비하고 제사의 집전은 바라문이 한
것이므로 결국은 귀족과 바라문의 잔치이며 제사이기 때문에
일반 백성으로 본다면 굿보고 떡 얻어먹는 격이지 진정한
종교의 가르침이나 법문이 있었을것이라고는 보기어려우니
우리는 비가 오지 않으면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내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낸 제사장을 처벌
하는 경우도 있으니 왕권이 강하고 제사장이 약한 경우
제사장이 처벌이 되지만 인도의 경우 바라문이 강하기
때문에 처벌은 불가능한 것이므로 당시의 제사를 두고
본다면 권력자와 종교인의 잔치라고 보아도 될것이다.
그러나 석가 세존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비판을 한다.
그것도 추측성이 아니 역사와 고증의 팩트로 말씀을
하시며 바라문과 권력자들이 제사인 피의 향연을 잘못된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 경전은 그러한 석가 세존의 교화와 진리에
바탕을 둔 양심의 소리이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에서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석가 세존의 훌륭하신 태도도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자세한 부분은 해설을 참고하기 바라며 아래에 전재성 역주
숫타니파타 게송의 후반부를 옮기며 글을 마무리 할까한다.
310
칼로 소들이 베어지자 신들과 조상의 신령과 제석천,
아수라, 나찰들은 ‘불법적인 일이다.’ 고 소리쳤습니다.
311
예전에는 탐욕과 굶주림과 늙음의 세 가지 병밖에는 없었소.
그런데 많은 가축들을 살해한 까닭에 아흔여덟 가지나 되는
병이 생긴 것입니다.
312
이와 같은 불의의 폭력으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것을
죽인다는 것은 그 옛날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제사지내는 자들은 정의를 파괴하였던 것입니다.
313
이와 같이 옛날부터 내려온 풍습은 지혜로운 님의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볼 때마다 제사지내는 자를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314
이렇게 해서 법이 무너질 때, 노예와 평민이 나누어지고,
여러 갈래로 왕족들이 분열하고, 아내는 지아비를 경멸하게
되었습니다.
315
왕족들이나 하느님의 친족들 또는 종족에 의해 수호되고
있던 다른 자들도 태생에 대한 윤리를 버리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사로잡히고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드리자, 그들 대부호인 바라문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바라문들]
“존자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이, 눈을 갖춘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이,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
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2568. 6. 21 법주도서관 & 자주선림
교수사 자림 심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