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불교
권오민 저
원문 출처 http://www.sejon.or.kr/
4장 깨달음의 세계
5. 지혜와 선정
(3) 선정(禪定)
1) 4정려(靜慮)
색계의 선정을 왜 정려(dhyana)라고 하는가? 여기서 심리상태는 고요함과 헤아림, 선정(혹은 止)과 지혜(혹은 觀)가 균등하기 때문으로, 그래서 색계의 선정을 현법낙주(現法樂住), 그것에 의해 일어난 도(道)를 낙통행(樂通行)이라고 하며, 8정도의 정정(正定)은 바로 이를 가르킨다.
이에 반해 욕계에서의 선정(이를 未至定이라 한다, 뒤에 설함)은 자세히 헤아리기는 하지만 고요함이 없으며, 무색계에서의 선정은 고요함은 있으나 자세히 헤아리는 일이 없기 때문에 다만 등지(等至(, 혹은 定)라고만 할 뿐 정려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곧 정려는 비록 심일경성을 본질로 하지만 이와 더불어 헤아림의 내용을 갖는데(이를 靜慮支라고 한다), 그 내용에 따라 네 단계로 나누어진다. 이를테면 초정려는 심尋·사伺·희喜·낙樂의 갈래를 갖추고 있으며, 제2정려에는 이 가운데 '심'과 '사'가, 제3정려에는 '희'가, 제4정려에는 '낙'이 제외되기 때문에 정려에 네 종류가 있는 것이다. 이를 좀도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초정려 : 심尋·사伺·희喜·낙樂·심일경성心一境性(즉 삼마지)
제2정려 : 내등정內等淨·희·낙·심일경성
제3정려 : 행사行捨·정념正念·정혜正慧·수락受樂·심일경성
제4정려 : 행사청정行捨淸淨·염청정念淸淨·비고락수非苦樂受·심일경성
이상은 선정에 수반되는 심리적 현상이기 때문에 간단히 설명 될 수 있는 성질의 내용이 아닐뿐더러 여러 다양한 이설이 전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단지 그 뜻만을 간략히 설명하기로 한다. 그리기 위해 먼저 ≪아함경전≫상에서 설해지고 있는 일련의 수행과정을 인용해 본다.
먼저 거룩한 제자들은 집을 떠나기를 생각한다.-다시 거룩한 제자들은 수염과 머리를 깍고 가사를 걸치고서 지극한 믿음으로 일정한 거처 없이 도를 배운다.-다시 거룩한 제자들은 욕탐을 떠나고 악과 불선의 법을 떠나면, 각(覺, 즉 尋)·관(觀, 즉 伺)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통해 욕탐과 악을 떠남으로써 낳아지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에서 초선(初禪, 즉 초정려)을 획득한다.-다시 거룩한 제자들은 각·관이 사라지고 내적으로 청정한 한 마음이 되면, 각·관은 존재하지 않지만 선정에 의해 낳아지는 기쁨과 즐거움에서 제2선(정려)을 획득한다.-다시 거룩한 제자들은 기쁨에 대한 바램을 떠나 아무 것도 구하는 것이 없는 절대평정[捨]에 노닐며 정념(正念)과 정지(正智)만을 지닌 채 몸으로 즐거움을 느끼면, 이른바 성자들이 말한 捨와 정념과 낙주(樂住)와 공(空, 즉 慧)의 제3선(정려)을 획득한다.-다시 거룩한 제자들은 즐거움마저 소멸하고 나면, 괴로움도 소멸하였고 기쁨과 근심은 이미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捨)와 염(念)이 청정한 제4선(정려)을 획득한다.-다시 거룩한 제자들은 모든 번뇌가 다하고, 마음으로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여 바로 즉시 스스로 알고 깨달으며 스스로 작증한다. 즉 생이 이미 다하였고, 범행이 이미 확립되었으며, 해야할 일 이미 다하여 더 이상 받지 않음을 참답게 안다.(팔자초역)
수행자가 어떤 하나의 대상에 전념할 때 점차 욕계의 탐욕에서 벗어나고 불선의 마음에서 떠남으로써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단계의 선정을 초정려 혹은 이생희락(離生喜樂)의 경지라고 한다. 그러나 이 때의 기쁨은 뭔가를 추고하려는 의식작용인 '심'과 '사'에 의한 것이며, 즐거움 역시 수(受)를 본질로 하는 낙수(樂受)가 아니라 마음이 경쾌 안적하게 되는 상태인 경안(輕安)의 즐거움이다.
즉 초정려와 다음에 설할 제2정려 중에는 5식(識)이 부재하기 때문에 신수락(身受樂, 몸으로 느끼는 즐거움)이 없으며, 이미 희수가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일 찰나 마음 중에 두 가지의 '수'가 함께 작용할 수 없으므로 심수락(心受樂, 마음으로 느끼는 즐거움)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때의 즐거움은 다만 욕탐을 떠남으로써 획득되는 경안락일 뿐이다. 그래서 초정려에는 심·사·희·낙·삼마지라는 다섯 가지 심리작용이 수반된다고 한 것이다.
수행자가 더욱 전념하여 마음을 동요시키는 '심'과 '사'마저 떠나게 되면, 마음은 더욱 순일해져 이제 더 이상 외적대상에 조건 받지 않고 그 자체로서 전후 동등하게 상속하는 청정한 믿음(이를 內等淨이라고 한다)과 더불어 역시 기쁨과 즐거움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단계의 선정을 제2정려 혹은 정생희락(定生喜樂)의 경지라고 한다.
즉 이 때의 기쁨과 즐거움은 성정에 의해, 다시 말해 '심'과 '사'를 떠남으로써 낳아지는 것으로, 여기서 즐거움 역시 경안락이다. 그래서 제2정려에는 내등정과 희·낙·삼마지라는 네 가지 심리작용이 수반된다고 한 것이다.
나아가 제2정려에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마저 버릴 때 마음은 완전한 평정의 상태가 되고, 이 때 정념(正念)과 정지(正智)가 나타나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단계의 선정을 제3정려 혹은 이희묘(락離喜妙樂)의 경지라고 한다. 그래서 제3정려에는 행사(行捨)·정념·정혜·수락(受樂)·삼마지라는 다섯 가지 심리작용이 수반된다고 한 것이다.
즉 이 때의 행사는 사수(捨受, 즉 비고비락수)의 '사'가 아니라 행온에 포섭되는 사(捨) 심소를 말하며, 수락은 더 이상 경안락이 아닌 바로 수온에 포섭되는 낙수로서, 이 같은 선정의 지극한 즐거움을 말한다.
그렇다면 희수와 낙수에 어떠한 차이가 있길래 제3정려에는 오로지 낙수만이 존재하는 것인가? 앞의 두 정려에서의 기쁨은 마치 바다가 파도에 일렁이는 것처럼 선정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만 제3정려 중의 즐거움은 가라앉아 고요하게 일어난다. 그리셔 여기서는 그 같은 기쁨을 떠났기 때문에 행온에 포섭되는 사(捨)가 존재하는 것이며, 다음에 설할 제4정려 중에서는 다시 이 같은 즐거움마저 버렸기 때문에 '청정한 사'가 존재한다고 설하는 것이다.
곧 제3정려에서의 평정심(행사)마저 버리고서도 여전히 마음이 평등하게 상속하여 부동(不動)의 상태가 되고, 괴로움은 물론이거니와 즐거움을 떠나 마음이 명경지수처럼 맑아져 일체의 대상을 반추하게 될 때를 제4정려 혹은 염사청정(念捨淸淨)의 경지라고 한다. 그래서 제4정려에는 행사청정·염청정·비고락수·삼마지라는 심리작용이 수반된다고 한 것이다.
이는 곧 유정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심尋·사伺·우憂·고苦·희喜·낙樂·출식出息·입식入息이라는 이른바 8동법(動法, 혹은 8災患)을 모두 떠난 경지의 선정으로, 초정려에서는 고수(苦受)와 우수(憂受)를 떠났을 뿐이며, 제2정려는 여기에 '심'과 '사'를, 제3정려는 다시 '희'와 '낙'을 떠난 것일 뿐이었다.
따라서 제4정려는 어떠한 동요도 없는 경지로서, 모든 관법(灌法)의 대상은 궁극적으로 여기서 증득되며, 불타의 모든 공덕 또한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일설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숙명지·사생지·누진지의 3명(明)을 얻어 깨달음을 성취하였다고도 하며, 이로부터 출정한 후에 반열반을 성취하였다고도 한다.
제4정려는 모든 선정이 두루 지향하는 바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일체의 선정은 궁극적으로 여기에 이르러 완성되기 때문에 이보다 더 뛰어난 것이 없는 '궁극의 선정'이라는 뜻에서 이를 변제정(邊際定)이라고도 한다.
이를테면 이 정려를 닦을 때에는 먼저 초정려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제2정려에 들고, 이로부터 출정하여 다시 제3, 제4정려에 들며, 출정과 입정을 되풀이하며 무색정인 비상비비상처정에 이르게 되면 이제 반대로 비상비비상처정으로부터 입정과 출정을 되풀이하면서 초정려에 이른다. 그리고 다시 초정려로부터 점차로 무소유처정에 이르고, 이렇게 줄여가며 입정과 출정을 되풀이하여 마침내 제4정려에 이른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먼저 하하품을 일으키고 하중·하상품을 일으키며, 나아가 마침내 상상품의 그것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를 '변제(prantakotika, 無趣極)'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