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힘(꽃) ●김인강 교수●
(감동)가난과 장애, 차별과 절망, 도저히 평안할 수 없는 환경과 조건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살아온 사람의 위대한 이야기다.
충청도 농사꾼의 6남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으나 너무 가난하여 치료 해야할 시기를 놓쳤고, 그 후유증 때문에 “
앉은뱅이”로 어린 시절을 살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장애를 부끄러워 하며, 술을 마신 날이면 "저런 쓸모 없는 놈 제발 좀 갖다버 리라."고 말하며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눈물로 지새야 했다.
혼자 힘으로 설 수도 앉을 수도 없었기에 기어 다녔다. 비료 포대 위에 엎드려 한 손으 로 땅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론 포대를 잡아끌었 다. 어린 시절 그에게 친구라 고는 병아리들과 강아지, 마당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작은 야생꽃들이 전부였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집에서 1시간 떨어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으나, 학교는 '
장애인이란 이유'로 그의 등교를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들은 그날 교문 밖에서
한없이 울어야 했다.
아들을 등에 업고 오는 길에 슬픈 마음으로 어머니는 아들의 꽁꽁 언 발을 만지며
“아가야 춥지?”라고 따뜻하게 위로했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는 그에게 다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었고
용기를 주었으 며, 세상의 힘든일들이 비수처럼 다가왔을 때 힘을 주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어둠 가운데 생명과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같았다.
그 날 이후 아들 은 평안해졌고, 어떤 절망 속 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 다.
11세에 집을 떠나 재활원에 들어갔고 굳은다리를 펴서 보조기를 끼우고 목발을 짚으며
걷는 방법을 배우는데 2년이 걸렸다.
그런 그가 공부 에서는 늘 1등을 했고 선생님의 추천 덕분에 대전 중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에서 만점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충남고에 배정받았다.
TV가 크게 틀어 져 있는 방 한구 석에서 밥상을 놓고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여 서울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했고
미국 버클리 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카이스트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고등과학원 (KIAS) 교수로 재임 중이다. 2007년엔 40세 이하의 과학자
에게 주는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그가 누구일까 ?
장애를 딛고 세상에서 온갖 냉대와 차별속에서도 “인생을 기쁨공식으로 풀어낸”
김인강 교수다. 그는 '3차원 다양체의위상수학'과 '기하학 분야'의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이 높다. 가난과 장애를 극복하고 차별과 냉대를 사랑으로 승화 시킨 김인강 교수의 삶은
장애인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에게도 귀감이 되는 위대한 인간 승리다. - 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