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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국화 옆에서
2013년 12월 송년 파티에서.
5년 전 처음 Mrs.정을 보는 순간 어디서 많이 뵌 분이란 느낌을 받았는데 그로 부터 얼마 후 천경자 화백의
길례언니을 보고 "바로 이 그림에서다" 했다.
그녀(천경자)는 고흥에서 유치원과 고흥보통학교를 다니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또한 그녀는 보통학교 시절 교정에서 열린 박람회장에서 소록도 나병원 간호부로 있던 선배 길례 언니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길례언니는 천경자의 연작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여인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발췌-
정대현은 광주일고를 거처 서울대 공과대학 화공과에 1954년 입학하고
FLI(서울대 영어 강습소), 개인적으로 미군 상사에게 영어 회화를 배웠다.
1954년 정부 고위직 관료와 고급장교의 만찬장(진해)에 통역관으로 착출 되여
열심히 파티장을 누비며 통역을 하는데 어떤 노인이 불려 묻는 말에
자기의 신분, 어떻게 영어를 배웠는가를 대답하였드니 그 노인분이
비서 같은 사람을 부르더니
" 이 학생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을 보내라."
후에 안 사실은 그 노인분은 당시 국회의장 신익희선생님이셨다.
이렇게 그 어러운 시기에 쉽게 1955년 미국 유학을 오르고
펜실바니아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MIT Research associate,
Lawrence Livermore Laboratory,대학교수등을 역임 하고
지금은 나파에서 골프,여행, 作詩하시며 아릿다운 길례언니와 여생을 즐기신다.
일반적으로 첫사랑은 헤여진 후에 다시 만나질 못하는데
이 분은 악연인지 행운인지는 모르겠지만 1986년 방한 당시
형수님의 안내로 호암갤러리 오픈 기념식장에서 천경자화백을
만나 편지를 건낸 학생이 자기임을 밝혔으나 무심도 하시지
전혀 편지건을 기억을 못하시고
" 아~ 그런적이 있었나? "하시며
어린 소년이 세계적인 과학자(영국 캠브리지 국제저명인사센타가 선정한 20세기 과학자 2,000명에 포함)가
되여 자기 앞에 서 있다며 반갑게 대해주셨다.
1993년 사랑하던 첫부인을 사별하시고 만나신 분이 첫사랑 천경자화백이 혼신을 기울린 대표작
길례언니를 닮은 분이시니 이 두분은 늦게 만나셨지만 천생연분이시다.
Always Aceentuate Looking Up.
-정대현-
We sometimes see subtractions when we are ill.
Theyare not just subtractions.
I am not me minus anything;
I am me plus this experience.
Optimism is the courage to look for at
Something and say;
"However bad this is, it isn't bad infinitely."
Accentuate the positive; and
Stay on the bright side of life.
Keep your sunny side up
While embracing life's challenge!
흐르는 곡은 빙 크로스비가 부르는 "True Love"
*정박사가 이 곡을 배경음악으로 부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