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의자는 맨발을 싫어한다. 특히 식탁 의자는 좀 더 심하다. 주인을 닮았다. 맨살끼리 닿는 것을 경원한다. 딱딱하고도 매끄럽게 와 닿는 바닥 촉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시장에 가게 되면 의자 버선 네 켤레를 사오려고 한다. 네 켤레면 4(의자 수) 곱하기 4(의자 다리) 16짝이다. 옅은 베이지 색이나 겨자색이 어울릴 것이다. 버선을 신기기 전에 헌 살빛 스타킹을 버선 속에 구겨 넣어 좀더 폭신한 버선을 만들어 신겨야겠다 마음 먹는다.
요새는 중랑천 둑길에도 나가지 못하고 양수리도 가지 못했다. 갈 수 없었다. 술집만 돌아다녔다. 그래서 팍팍해졌다. 그림은 그리지 않기로 했다. 술에도 색에도 질렸다.
하루종일 나무 밑에 앉아 나무가지 꼭대기나 올려다 보고 싶다. 수수럭수수럭, 나무는 제가 먼저 뭐라 뭐라 얘길 한 다음 '네 차례야.'하며 조용히 귀를 기울이곤 한다. 수수럭수수럭, 그런 목소리로 얘기를 하고 싶지만 안된다. 수수럭수수럭, 한참을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목소리다. 가끔만이라도 수수럭수수럭, 소리로 얘기를 건넬 줄 아는 괜찮은 남정네 어디 없을까.
의자 버선 얘기하다가 상관도 없는 남정네 얘기로 또 샜다. 내 책임이 아니다. 이야기가 가지를 친 것이다. 나뭇가지처럼. 호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