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수 좋은날 패러디 (한번 웃자고 쓴글입니다. 전에 매니아 에서 본적이 있는데
도저히 못찾아서 다시 직접 패러디 했습니다. )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득점 욕이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클러치를 실패하고 울음을 한 때문이다. 그때도 웨스트브룩이 오래간만에 패스를 얻어서 수비 없는 오픈 샷을 만들어 주었는데, 웨스트 브룩의 말에 의하면, 오라질 난민 이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손을 올려대 슛을 냅다 질르더만 타점이 제대로 잡히지도 않은 것을 림에 던지더니 그만 에어볼이 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 하고 눈을 홉뜨고 지랄을 하였다. 그때 웨스트브룩은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 난민, 클러치 복은 할 수가 없어, 패스 못받아 병, 패스 받아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웨스트브룩 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환자가 그러고도 우는데 말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3점 찬스 패스를 받고 싶다고 포인트 가드를 졸랐다.
"이런 오라질 난민! 클러치 패스도 못 받아먹는 난민이 3점 찬스 기회는 또 실패하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패스 못 하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3점 찬스 패스를 해 줄 수도 있다. 앓는 난민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이바카(콩고 난민)에게 앨리웁 패스를 해줄 수도 있다. ---5점 을 손에 쥔 웨스트 브룩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유니폼으로 닦으며, 그 코트 중앙을 돌아설 때였다. 뒤에서 "거북이!"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같은 팀원인 줄 웨스트 브룩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팀원은 다짜고짜로,
"이거 패스 해주면 풀업 점퍼 넣을 수 있지?"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벤치에 있는 이로 출장을 이용하여 어시스트 적립 하려 함이로다. 오늘 어시스트 하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공은 안오고 발은 무겁고 해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웨스트 브룩을 보고 뛰어 오고 있음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왜 운동화를 채 신지 못해서 질질 끌고, 비록 '고꾸라' 유니폼 일망정 땀을 흘리며 웨스트 브룩을 뒤쫓아 나왔으랴.
"풀업 점퍼 말씀입니까?"
하고, 웨스트 브룩은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에 앞에 선수도 없이 그 먼곳에서 슛을 하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동료 난민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옆집 카멜로님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월의 샘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다 애걸하는 빛을 띄우며,
"오늘은 슛 30개 하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어시에 집중하고 있어요. 내가 이렇게 득점왕이 위험한데……."
하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며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래도 웨스트브룩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난민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어시만 하고 앉았으면 누가 파이널까지 올려 즐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난민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슛하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빠르게 슛하고 벤치로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림 앞 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난민의 얼굴이 웨스트 브룩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풀업 점퍼 언제 할거냔 말이요?"
하고 레지 잭슨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상대 포가 열한 시 위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열걸음 뒤에 파포이던가."
라고 중얼거린다.
" 삼초 내로 패스만 줍쇼."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웨스트 브룩 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재빠른 시간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이런 시간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득점할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안으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득점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득점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삼초 는 너무 빠른데............"
이런 말을 하며 레지 잭슨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뒤에 선수가 빨리 쫒아 옵니다. 또 이런 접전인 날에는 좀더 빨리 주셔야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포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빨리 슛 해요."
관대한 어린 레지 잭슨은 그런 말을 남기고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그 레지 잭슨의 패스를 받은 웨스트 브룩의 다리는 이상하게 가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보다 거의 나는 듯하였다. 운동화도 어떻게 닫는지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군다느니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가는 듯하였다. 새 코트에 왁스칠도 하여 미끄럽기도 하였다.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림에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슛하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득점을 못하는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이 자기를 노려보는 듯하였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이바카의 곡성도 들은 듯싶다. 딸국딸국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왜 이러우? 풀업 점퍼 놓치겠구먼."
하고, 레지 잭슨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려왔다. 언뜻 깨달으니 웨스트 브룩은 공을 쥔 채 코트 한복판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
하고 웨스트 브룩은 또다시 달음질하였다. 벤치가 차차 멀어갈수록 웨스트 브룩의 걸음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다리를 재겨 놀려야만 쉴새없이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3점 라인 까지 끌어 주고 그 깜짝 놀란 공을 손에 쥔 것이 거저 얻은 듯이 고마웠다. 득점왕 이나 된 듯이 기뻤다.
제 백업 뻘밖에 안 되는 어린 레지 잭슨 에게 몇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벤치에 들어가십시요."
라고, 깎듯이 재우쳤다.
그러나 빈 백코트를 털털거리며 이 중에 돌아갈 일이 꿈 밖이었다. 슛팅으로 하여 흐른 땀이 식어지자 굶주린 창자에서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비롯하매 2점이란 득점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인 줄 절실히 느끼었다. 림에서 떠나는 그의 발길은 힘 하나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맞을 것! 이 땀을 흘리며 빈 백코트에 돌아를간담. 이런 빌어먹을, 제 할미를 붙을 땀이 왜 남의 상판을 딱딱 흘러!"
그는 몹시 홧증을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이 게걸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돌며 공 오기를 기다리면 또 득점을 하게 될는지도 몰라.'란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대방 포가의 등살이 무서워 림 앞에 섰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는 이전에도 여러 번 해본 일이라 바로 림 에서 조금 떨어져서 사람 다니는 루트과 림 틈에 서 있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하였다. 얼마만에 공은 왔고 수 명이나 되는 선수들이 이 림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스틸을 물색하던 웨스트 브룩의 눈에 대머리에 뒤축 높은 농구화를 신고 밴드까지 두른 노안인 듯, 짐승인 듯한 대머리 선수의 모양이 띄었다. 그는 슬근슬근 그 짐승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여보슈, 공 좀 드리블 하시지 않으시라우?"
그 짐승인지 뭔지가 한참은 매우 때깔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웨스트 브룩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웨스트 브룩은 구경하는 거지나 무엇같이 연해연방 그의 기색을 살피며,
"짐승, 우리 팀 애들보담 아주 편하게 수비 해 드리겠습니다. 림이 어디신가요?"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짐승의 들고 있는 미국식 밴드 헤어에 제 손을 대었다.
"왜 이래? 남 귀찮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웨스트 브룩은 어랍시요 하고 물러섰다.
공이 왔다. 김첨지는 원망스럽게 전차 타는 이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림에 빡빡하게 사람이 붐비고 있을때 남은 선수 하나가 있었다. 굉장하게 큰 아랫 잎술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붐비는 림 앞에서 입술이 크다 하여 코치 에게 밀려 내려온 눈치였다. 웨스트 브룩은 대어 섰다.
"드리블 하시랍시요."
한동안 값으로 실랑이를 하다가 육 초 후에 스틸까지 해주기로 하였다. 농구화가 무거워지매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 그리고 또 농구화가 가벼워져서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는데,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온다. 벤치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어 이젠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이나 무엇만 같고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해 꾸짖으며 갈팡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거북이가이 저렇게 술이 취해 가지고 이 기름진 코트에 어찌 가노 하고, 옆에서 스크린 서주는 사람이 걱정을 하리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하였다. 기름지고 미끄러운 코트 바닥은 어둠침침한 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하다. 코트 중앙 앞까지 다다라서야 그는 턱에 닿는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추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벤치에 가까워올수록 그의 마음은 괴상하게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 누그러짐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이 박두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이 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득점을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살피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 벤치, 곧 불행을 향하고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다고, 구해다고 하는 듯하였다.
그럴 즈음에 마침 벤치에서 친구 세폴로샤가 나온다. 그의 우글우글 살진 얼굴은 주홍이 오른 듯, 온 턱과 뺨을 시커멓게 구레나룻이 덮이고, 노르탱탱한 얼굴이 바짝 말라서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수염도 있대야 턱밑에만, 마치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웨스트 브룩의 풍채하고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거북이, 자네 상대편 코트 안에 들어갔다 오는 모양일세 그려, 득점 많이 했을테니 하이파이브 한번 하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는 말맡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짓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하였다. 웨스트 브룩은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기를 살려준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자네는 벌써 하이파이브 한번 한 모양일세 그려. 자네도 재미가 좋아 보이."
하고 웨스트 브룩은 얼굴을 펴서 웃었다.
"압다. 재미 안 좋다고 하이파이브 못 할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왼몸이 어째 물독에 빠진 새앙쥐 같은가? 어서 이리 들어와 말리게."
벤치 앞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레드불을 놓은 병에 , 마실 수록 힘이 아는 학식스 까지, 박카스에 , 게토레이 까지…….이 너저분하게 늘어 놓은 에너지 음료 박스 위에 웨스트 브룩은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에너지 음료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우선 분량 많은 레드불 두 개를 쪼이기로 하였다. 주린 창자는 레드불 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레드불에 박카쓰 까지 그냥 물같이 들이키고 말았다. 첫째 병을 받아들었을 제 데우던 박카스 두 잔이 더 왔다. 세폴로샤와 같이 마시자 원원이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빼기 한 병을 또 마셨다.
웨스트 브룩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벤치 앞에 놓인 게토레이 까지 부어라 하였다.
세폴로샤는 의아한 듯이 웨스트 브룩을 보며,
"여보게 또 마시다니, 벌써 우리가 4 병씩 먹었네. 득점으론 30점 치일세."
"아따 이놈아, 득점 30점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득점을 막 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몇 득점을 벌었단 말인가?"
"45득 점을 했어, 45득점을! 이런 젠장맞을, 레드불을 왜 안 부어……괜찮다, 괜찮아.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득점을 산더미같이 했는데."
"어, 이사람 레드불 약빨이 왔군, 그만두세."
"이놈아, 이걸 먹고 심장 박동이 빨라질 내냐? 어서 더 마셔."
하고는 세폴로샤의 귀를 잡아치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다섯 살 됨직한 중대가리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놈, 왜 레드불을 주지 않아."
라고 야단을 쳤다. 퍼킨스는 희희 웃고 세폴로샤를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하였다. 거북이가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내며,
"에미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득점을 못한 줄 알고?"
하자마자 허리춤을 훔척훔척하더니 그날 리더 보드 한장을 꺼내어 중대가리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공이 떨어져 나갔다
"여보게 공 떨어졌네, 왜 공을 막 던지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공을 줍는다. 웨스트 브룩은 흥분한 중에도 공의 거처를 살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득점을 못했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 놓을 놈들 같으니."
하고 세폴로샤 주워주는 공을 받아,
"이 원수엣 공 ! 이 육시를 할 공!"
하면서 팔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공은 다시 레드불 담긴 병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하고 울었다.
곱빼기 레드불 두 병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가고 말았다. 웨스트 브룩은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병 먹고 나서 웨스트 브룩은 세폴로샤의 어깨를 치며 문득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벤치에 있는 이의 눈이 모두 웨스트 브룩에게로 몰리었다. 웃는 이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세폴로샤,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공을 가지고 림에까지 가지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됐데 그려, 그래 림 앞에서 어름어름하며 스틸 하나를 할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짐승이신지 대머리이신지, 요새야 어디 짐승과 대머리를 구별할 수가 있던가. 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드리블을 하시랍시요 하고 스틸을 할려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핵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그 소리야말로 짐승 소리지, 허허!"
웨스트 브룩는 교묘하게도 정말 짐승 같은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은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짐승,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굴어!' 어이구 소리가 체신도 없지, 허허"
웃음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런 그 웃음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웨스트브룩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세폴로샤는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무슨 일인가?"
웨스트 브룩은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
"우리 난민이 득점왕에서 탈락했다네."
"뭐, 난민이 득점왕에서 탈락했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예끼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탈락했어…… 참말로. 난민을 벤치 중앙에 뻐들쳐 놓고 내가 레드불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하고 웨스트 브룩은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세폴로샤는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사람아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저 벤치 중앙으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세폴로샤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웨스트 브룩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득점왕 탈락하기는 누가 탈락해."
하고 득의 양양.
"탈락 하기는 왜 탈락해, 생떼같이 득점왕 욕심만 있단다. 그 오라질 난민이 득점 을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난민네가 득점왕이 위험하단 말은 들었었는데."
하고 세폴로샤도 어떤 불안을 느끼는 듯이 웨스트브룩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탈락했어, 안 탈락했대도 그래."
웨스트 브룩은 홧증을 내며 확신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탈락 할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한 병 레드불 채워서 곱빼기를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기름진 코트는 의연히 추적추적 미끌린다.
웨스트 브룩는 흥분한 중에도 패스를 해주려고 벤치에 다다랐다. 벤치이라 해도 물론 의자 뿐이요, 또 벤치 전체를 앉는게 아니라 관중석과 뚝 떨어진 의자 몇개를 빌어든 것인데 앉는 것만으로도 한 달에 몇백 달러씩 내는 터이다. 만일 웨스트부룩이 레드불 흥분을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벤치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난민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거리 그윽한 소리, 이바카의 블락 연습하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소리는 허공질 할 따름이요, 꿀떡꿀떡하고 슛하는 소리가 없으니, 빈 공을 블락하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웨스트 브룩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벤치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난민, 포인트 가드가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 난민."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웨스트 브룩은 수건을 왈칵 들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 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지저귀에서 나는 땀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섞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웨스트 브룩의 코를 찔렀다.
방안에 들어서며 공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흥분한 거북이는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 오라질 난민, 주야장천(晝夜長川)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포인트 가드가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난민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소리가 윙윙 소리로 바뀌었다. 이바카가 블락을 연습하다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어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울음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포인트 가드는 난민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껴들어 흔들며,
"이 난민아, 슛을 해, 슛을! 손이 붙었어, 이 오라질 난민!"
"……"
"으응, 이것 봐, 아무 슛도안하네."
"……"
"이 난민아, 득점왕에서 탈락 했단 말이냐, 왜 슛이 없어?"
"……"
"으응, 또 슛이 없네, 정말 탈락 했나 보이."
이러다가 누운 난민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루 보지 못하고 천정만 바라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거북이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득점왕 탈락한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웨스트 브룩은 미친 듯이 제 얼굴을 득점왕 탈락 한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왜 패스를 해주려고 공을 가지고 왔는데 왜 슛팅을 하지를 못하니, 왜 슛팅 하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득점운이 좋더니만…
첫댓글 벤치에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ㅋㅋㅋ
대단하시네요...
와~~~ 짝짝짝~~^^
아 저도 뻥 터졌습니다 막 웃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창과 이신가요?ㅎㅎ 재밌게 읽었습니다
매니아에선 은전 한 닢 패러디를 본거 같은데 운수좋은날도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