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을 보고
'암살'이 아니고 '척살'이였다.
휴가를 이용하여 그간 영화 한편 제대로 못보았던 내자신에게 보상코자 영화 두편, '암살'과 '미션 임파서블'을 내리 보았다.
누구와 손잡고 팝콘과 콜라를 나누며 볼 팔자는 아니지만, 혼자보는 영화에 익숙해져야할 나이이기에 그 영화관, 그 좌석에서 시간만을 달리하여 감상하였다.
'미션 임파서블'이야 생각이 필요한 영화가 아니기에 평을 남긴다는 것이 좀 그렇고, '암살'에 대해 생각을 나눕니다.
영화 '암살'은 제목부터가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다.
힘의 절대적 열세 속에, 능욕당한 역사을 바로 세우기 위해,
민족과 나라에 헌신한 숭고한 영혼들이 적에게 가장 치명적인 줄수 있는 행위가 "암살'이다.
하지만, 그 후손인 우리가 '암살'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처단'이라고 불러야하지 않을까 하는게 내 불편함의 시작이다.
의열단의 일원으로 이제 다시 돌아 올수 없는 길일 수도 있기에, 사진을 찍어 자신의 존재를 남기는 모습!
그 처절함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게 100년도 안된 우리역사임을 알고나 있을까!
팔레스틴 땅에서 몸에 폭탄을 두르고 이스라엘 정부나 군대를 향해 몸을 날리는 모습은, 1933년 우리 민족의 모습과는 얼마나 다를까!
침략 강국의 입장에서보면 적국의 테러리스트나 암살자에 불과 할지 모르지만,
후손의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를 되집어 보는데, 꼭 '암살'이란 표현을 써야만 할까?
아무리 영화적 표현이라할지라도, 그 단어 하나가 역사마저 까맣게 잊고, 또 잊을 것을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적절한표현일까!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전개는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거사 전날 클럽에서의 춤은 그 긴장된 상황에서도,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작은 행복으로 만들어 보여주어,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긴장을 이완시켜주는듯 하였다.
좌절된 반민특위의 활동은 결국 친일이 반공과 친미로 바뀌어,
외향적으로는 보수의 탈을 썻지만, 그 본질은 친일로 축척된 자본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 이 영화가 들려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안옥윤'의 모티브는 여자 독립운동의 어머니인 남자현 여사라고 하니, 그 시대 이중으로 억압된 사회구조속에도 이땅의 여성들은 참으로 억세게 한계를 넘어 독립투쟁에 동참한 자랑스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33년, 어둠이 빛을 지배했고, 일본이 한민족 오천년 역사를 지워 버렸던 그 비참한 세월속에도 민족의 한줄기 빛의 역할을 담당했던 '신흥무관학교'등 만주의 독립운동 인재양성 기관에서 배출된 많은 의로운 분들!
그들의 희생속에 한민족의 희망이 살아 있었음을 안옥윤의 대사를 통해 가슴을 후벼왔다.
"그들 둘을 죽인다고 독립이되냐"
"모르지"
"그치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그 숭고했던 희망이 해방 후 이념에따라 남북으로 갈리면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그들이 담당 해야만 했던, 해방 후의 조국건설의 몫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민족과 겨레에 등을 졌던 친일파에게 내어주어 오늘의 통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의 권력과 자본은 친일파의 후예들에게 완전히 접수되어, 이제는 자랑스럽게 그때의 일본의 역할을 칭송하고 있으니, 독립군이 더 이상 독립군일수 없는, 그리하여 "암살"자 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두번째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영화속에서는 "밀정이면 죽이라"는 김구 선생의 마지막 명령을 수행할 안옥윤이 있어 그들의 변신을 단죄 할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법과 정치, 언론 그리고 자본을 장악한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자발적 복종으로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 내야 하는 내 자신이 세번째 불편함이다.
자본에 접수당한,
무기력에 접수당한 오늘 현실의 우리에게 안옥윤이 주는 메시지가 바로 나를 향하고 있음이 마음 아프다.
"모르지"
"그치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첫댓글 잘 읽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