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가 영영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다음날(22일) 서울에는 종일 궂은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어두운 비다. 처마 밑에 울고 서 있던 아이가 세상을 뜬 것을 하늘도 알고 우는 듯하다.
이날 서울 종로구 학림에서 故 김민기의 여조카이자 2009년부터 학전 팀장을 맡고 있다는 김성민 씨가 취재진과 이런저런 고인의 뒷얘기와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전해진다. 김성민 팀장은 "지난해 가을 위암 진단을 받고 집에서 요양하다 19일 금요일부터 안 좋아졌고 20일 토요일 오전에 경기도 일산의 한 병원 응급실을 갔다"며 "응급실에 실려 가는 순간부터 좋지 않았고 다음날 오후 8시 26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김 팀장은 이어 "미리 작별 인사를 많이 나눴다. 작은 어머니와 동생들, 보고 싶은 가족들이 다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모두 만나고 가셨다"며 유언에 대해선 "재산적인 부분은 당장 공개할순 없고 3~4개월 전부터 '그저 고맙고 우린 할 만큼 다했다. 남은 이들이 걱정'이라고 말씀하셨다. 남겨진 가족들이 학전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남은 운영을 맡게 된 저를 많이 걱정해 주셨다"고 돌아봤다.
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민기는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한 1970년 친구 김영세와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아침이슬’을 담은 솔로 1집을 발표했다. 같은 해 가수 양희은도 ‘아침이슬’을 불러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아침이슬’이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많은 이들의 입으로 전해지자 유신 정권은 금지곡으로 지정했고, 그에 대한 탄압도 자행했다. 김민기는 군대에 다녀온 뒤 노동 현장에 들어가 ‘상록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었다.
김민기는 1991년 3월 15일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과 극단 학전을 세웠다. 이곳에서 김광석이 1000회 공연을 했다. 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장기 공연을 하면서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 많은 배우들을 길러냈다. 그러면서도 김민기는 늘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뒷것'으로 남고자 했다. 하지만 연극 출연진과 제작진에 대한 처우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점을 안타깝게 여겨 최초로 극단과 출연료 계약을 맺고 다른 극단에 견줘 파격적인 대우를 아끼지 않아 대학로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 때문에 재정난이 깊어지고 김민기의 건강 문제까지 겹치면서 똑 창립 33주년이 되는 올해 3월 15일 학전은 문을 닫고 말았다. 많은 가수와 배우들이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펼치며 돕겠다고 했지만 고인은 끝내 이를 뿌리쳤다.
지난 3월 SBS 특집 다큐멘터리 '뒷것'을 보면 생전의 본인이 만든 노래를 몹시 부끄럽게 여기고 특히 민주화 운동의 연료로 쓰인 것을 몸둘 바 몰라 했다. 특히 황정민 등 후배들이 직접 노래를 불러 달라고 간청해도 끝끝내 사양했다고 전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인생관, 음악관을 가장 함축한 작품은 '봉우리'라고 생각하는데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메시지의넓이와 울림은 인생 전체로 넓혀진다고 생각한다.
빈소는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2·3호실)에 차려졌다.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유족은 전했다. 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