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 세계관의 자살(3)
루이스(C.S. Lewis)에 따르면, 마음이 두뇌의 생화학적 작용, 원자들의 무의미한 흐름에만 의존한다면, 나무들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 것처럼 인간의 사유도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무신론으로 향하는 논증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무신론자 혹은 유물론자는 이와 같은 자살골을 어떻게 피해 가는가? 자신들의 이론을 "암묵적 예외"로 취급 함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물질이라면, 이 주장 자체도 물질, 무의미한 파동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인간의 모든 사상이 진리로서의 가치가 아닌 생존가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면, 이 주장 자체도 생존가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되어 버린다. 다윈은 우주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마음과 비슷한 지성을 가진 제일원인인 창조로 만들어졌다는 "공포스러운 의심"(horrid doubt)을 가졌으나, 이 의심을 "하등동물로부터 발달한 마음이 그림 장엄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을 의심할 때만 적용하고, 그런 장엄한 결론을 끌어내는 인간의 마음이 하등동물로부터 발달하여 나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공포스러운 의심은 외면했다.
무신론 과학자들도 합리성에 따라 과학 활동을 한다. 그러나 그는 합리성의 토대 - 지성적인 존재로서의 창조주 -를 상실했다. 결국 현대인은 과학에 위기를 가져왔다. 오직 성경적 세계관만 이 과학에 적합한 인식론을 제시한다. 1) 합리적인 하나님이 지성적 구조를 가진 세계를 창조하셨다. 2)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인간을 지으셨다. 따라서 인간은 세계의 지성적 구조를 해독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특정한 사회적 집단을 절대화한다. 특정한 사회적 집단은 언어를 통하여 자신을 표현한다. 각 공동체는 그 공 동체에서만 통용되는 언어규칙을 가지고 있다. 이 언어규칙을 작은 설화(little narrative)라고 한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작은 설화들은 인정하지만, 보편적 설화-형이상 설화-는 부인한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주장에 따르면 보편적 설화가 없다는 주장 그 자체가 작은 설화의 관점에 지나지 않으므로 보편적 진리가 아닐 수밖에 없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실행적 모순" (performative contradiction)을 벗어날 수 없다. 실행적 모순이란 행동을 하면 그 자체가 바로 모순이 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예컨대 "나는 한국어를 못한다"고 한 국어로 말하는 경우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상원,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변증》, p.2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