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에쿠니 가오리, 도쿄타워-
기다림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말을 남긴 분은 우리 나라에서는 '냉정과 열정사이' 란 소설로 잘 알려진 일본의 여성문인인 에쿠니 가오리이군요.
기다리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다림'이란 행위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기다리든, 시작하는 어느 시간을 기다리든, 어느 기회를 기다리든...
참으로 우리들의 삶에선 기달려야 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다림'이란 것에는 바로 기다리는 그 순간부터 기다린 그 대상을 만나는 순간까지 흐르는 시간이 존재함을 의미하며, 또한 기다리는 그 시간 속에는 마음의 공간도 함께 존재하게 됩니다.
시간은 똑딱 똑딱 소리내며 지나가는 자명종처럼 빠름도 느림도 없이 일정하게 지나가지만, 내 마음의 속도는 하염없이 느리다가도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며, 평안하게 가라앉아 있다가도 높게 파도치듯 격정적으로 변화하기도 합니다.
만약 자신의 기다림을 하나의 장면(Scene)으로 만든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어느 누구는 바닷가에서 배떠난 남편의 귀향을 염원하는 장면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염없는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는 그런 장면말입니다. 간장이 녹아들 듯 애가 타는 그때의 마음의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한 청년이 있습니다.
짝사랑하는 어느 소녀가 나타나길 기대하고 아침부터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언젠가 그때쯤 그곳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기에 혹시나 하면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죠.
그날에 그녀를 못 보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 시간때쯤 그곳에서 기다려봅니다. 또 다음 날도 말입니다. 설령 그녀를 어느 날 보았더라도 말한마디 못 붙이었기에 그는 또 다음 날 그 시간에 그녀를 기다립니다.
이것을 하나의 장면으로 만든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그 마음의 장면들을 말입니다.
유난히 사람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면 마음 속에는 짜증이 넘어 폭발하려는 그 무엇을 느끼며, 겉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합니다.
일종의 기다림에 대한 트라우마이지요.
청년과 같이 한없이 기다렸던 그 시간들, 처음의 기다림의 시간은 설레임이었지만 그 이후는 점차 뭔가 상실감이 느껴집니다. 기약도 없이 기다려야 하는 그 대상. 그렇게 기다려도 결코 자신에게 오지 않으리라는 불안 속의 상실감, 그 대상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자신의 초라한 그 모습에서 자신의 존재 속의 상실감도 느껴집니다.
상실감은 자신에 대한 또는 상대에 대한 분노감으로 넘어갑니다. 또한 이 모든 감정들은 어린 시절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을 때 느꼈던, 세상에 나 혼자 버려졌다는 비참함이란 감정으로 넘어가 그 마음은 절망감으로 사무치고 꺼이꺼이 소리없이 울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성인이 되었지만, 약속을 하고 남을 기다려야 하는 순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이 가빠지는 듯하고 불안이 섞인 짜증이 몰려옵니다. 기다려야 하는 그때이면 어김없이 그 내면에는 고무줄이 당겨져 소녀를 기다렸던, 엄마를 기다렸던 그 비참했던 순간으로 넘어가는 것이죠.
기다림 속에서 행복감을 느꼈노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 속에서 비참함과 절망감을 느껴보지 않았던 것을 반증하고 그러하기에 내 마음의 작동법이 고장나거나 왜곡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오명철 (100세시대좋은가족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