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 윤 대통령 퇴진 시국선언... 국민 분노 폭발한 지점 [전강수의 경세제민]
전강수입력 2023. 4. 21. 05:09
[일본 극우 주장 수용한 '제3자 변제안'①] 엉터리 논리로 대법원 판결 뒤집어
[전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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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신도들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친일매국 검찰독재정권 퇴진과 주권회복을 위한 월요시국기도회에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2023.4.10 |
ⓒ 유성호 |
지난 3월 6일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해법으로 '제3자 변제' 방침을 밝힌 이후, 4월 11일까지 이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무려 41건이나 발표됐다. 이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3월 20일 전주에서 '검찰독재 타도와 매판매국 독재정권 퇴진 촉구' 미사를 개최한 후, 전국을 순회하며 같은 내용의 시국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정권의 뿌리가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를 맞은 셈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제3자 변제 방안 자체도 문제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 중에 보인 행보와 한일 정상회담 후 일본 언론의 보도가 대한민국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3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양차 세계대전에서 서로 적으로 맞섰던 독일과 프랑스가 화해한 것을 사례로 들며 한일관계 개선의 당위성을 역설했지만,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얼어붙어 있던 한일관계를 회복하여 양국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는 틀렸다고 단정할 수 없음에도, 국민들은 왜 이리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윤 대통령의 말대로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의 선동에 넘어간 탓일까. 그리 보기에는 윤 정부의 행태가 너무 허술한 반면, 시국선언과 시국미사의 내용은 매우 정확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왜 분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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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 외교부 장관이 2023년 3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2023.3.6 |
ⓒ 공동취재사진 |
국민 분노의 뿌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방일에서 내줄 건 다 내주고 하나도 얻어오지 못하는 무능한 외교를 펼쳤다는 점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예로부터 우리 국민의 정서는 지도자의 무능함을 목도할 때 바로 퇴진하라고 하기보다는 다음번에는 잘하라고 격려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정권 퇴진의 목소리가 이처럼 드높을까. 한마디로 윤 대통령이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전면 부정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 핵심 원인이다.
한국인 노동자 강제동원(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극우세력이 앵무새처럼 뇌까려온 주장은 두 가지다(2012년 이후 극우세력에 의해 장악된 일본 정부도 비슷한 주장을 반복해왔다). 하나는 식민지기에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사 강제동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1965년 일본과 한국이 맺은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한국인 강제동원 노동자가 일본 전범 기업에 손실보상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모든 권리가 소멸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식민지기의 강제동원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제3자(사실상 한국 기업)에게 변제 책임을 지우면서 1965년 한국 정부가 국민의 개인 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했다고 밝힌 것은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향후 일본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과연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동원은 없었을까. 또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 노동자가 손실보상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모두 소멸했을까. 만일 이 두 가지가 사실이라면, 현재 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일관계 개선 정책은 절대적 정당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지금 많은 국민이 표출하고 있는 분노는 국수주의적 선동과 가짜 뉴스에 속아서 나온 어리석은 감정 표현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필자는 두 가지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먼저, 이 글에서는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동원 여부에 대해 팩트체크를 하고자 한다.
한국인 노동자 강제동원이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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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대통령인지 외국 대통령인지" 21일 오전 광주시청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규탄' 기자회견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발언하고 있다. 양 할머니는 "나는 솔직히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인지 외국 대통령인지 감을 못 잡겠다"고 말했다. 2023.3.21 |
ⓒ 연합뉴스 |
이번 한일 정상회담 이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강제동원 문제를 굳이 '구(舊)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고 표현했다. 이는 2015년 아베 전 총리가 강제동원을 부정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던 표현을 기시다 총리가 반복한 것으로, 제3자 변제안이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동원이 없었다는 뜻을 담고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이다.
강제동원은 노동자를 일본 기업에 데려간 방법 외에도 노동 과정에서의 폭력 행사 여부와 임금 지불 여부와도 관련이 있는 개념이다. 2023년 4월 4일 방영된 MBC 'PD수첩'은 미쓰비시 중공업에 강제동원됐던 양금덕 할머니와 김성주 할머니의 생생한 증언을 담았다.
"도망가려야 갈 수도 없고 배는 고프고, 보고 싶고 그러니까 안 울 수가 없지요. 앉아서 울면 … 왜 우냐고 때리니까", "(월급 통장이나 월급 명세서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습니다. 없어요."(양금덕 할머니)
"(작두에 손가락이 잘려서) 손가락이 세 번을 폴딱폴딱 뛰더라고. 그런데 일본 사람이 그 손가락을 주워서 공중에 던지면서 오재미 놀이라면서 …"(김성주 할머니)
두 할머니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일본제철 오사카 제철소에 강제동원됐던 고 여운택 할아버지와 고 신천수 할아버지의 녹취록이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이하 진술은 모두 <일본제철 강제동원 소송기록 1>에서 인용했다).
고 여운택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보니 창에는 어딜 봐도 도망 방지용으로 보이는 각목을 창살로 달아놔서 이것을 본 순간 저는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일 먹는 식사에는 현미밥과 배추 절인 것이 나왔습니다. … 양이 적고 다 먹어도 3분의 1밖에 배가 차지 않아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 조선인 노동자 중에는 주방에 몰래 들어가 밥을 꺼내먹은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발견돼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신봉이라 불리는 봉으로 죽을 만큼 맞았습니다."
"일본에 왔을 때부터 한 달에 몇 번이고 타이쇼(大正) 경찰서의 경찰관이 와서 '너희들의 본적은 회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어. 조선에 돌아가도 잡아낼 거야. 도망치면 2시간 안에 잡을 수 있어' 등등, 저희들에게 겁을 주었기 때문에 …"
"급료는 기숙사 사감이 전부 모아 받았기 때문에 저의 손에 받아볼 수 없었습니다. 회사가 품행이 방정한 사람에게는 부탁하면 용돈 정도로 2, 3엔을 건네주었지만 나머지는 강제로 저금 당했습니다."
고 신천수 할아버지
"저희들의 이동에는 출발 전에 훈련시켜 주었던 일본인이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기숙사 부지의 문에는 망을 보는 사람이 있었고, 밤에는 자물쇠가 채워졌고 기숙사 안에도 사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기숙사에 들어와서 곧 맘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나오는 식사는 이러한 중노동을 버텨낼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양이 적고 먹고 난 후에 바로 배가 고파, 허리띠를 졸라매고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점점 양이 줄어들어 갔습니다."
"5. 6명이 단체로 나가면 … 돈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공장 앞에서 팔고 있던 죽을 사서 먹고, 동네를 조금 걷다가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밖에 나갔다가 그대로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사감으로부터 도망가도 붙잡힐 것이라고 협박받았고, 공장에도 타이쇼 경찰에서 경찰관이 와 있었기 때문에 금세 붙잡힐 것이라고 생각해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첫 월급을 받을 때 강제로 우편저금에 가입하게 하고, 월급 전부를 강제로 예금하게 하고, 통장과 도장은 사감이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네 분의 증언을 통해 강제동원 노동자들이 감시와 감독 아래 노동했고,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었으며, 월급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노동자 동원과정의 강제성 여부인데, 일본 극우세력과 한국 뉴라이트 세력은 1944년 명실상부한 강제동원인 징용이 실시되기 전에 모집과 관(官) 알선이라는 방식이 활용되었음에 주목한다. 이 방식은 일제 당국의 강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자유 응모가 원칙이었고 모집 경쟁률도 높아서 강제동원이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분야를 연구하는 다수의 학자들은 그것 또한 강제동원의 한 방식으로 본다. 왜냐하면 모집과 관 알선은 일본 기업이 어느 작업장에 조선인 노동자가 몇 명 필요하다고 일본 정부에 신청하면 일본 정부는 이를 조선총독부에 전달하고, 총독부는 도에, 도는 군에, 군은 읍·면·동에 동원 숫자를 하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할당된 동원 숫자를 채우기 위해 해당 지역 관청이나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물론이다. 식민지 권력을 배경으로 했던 이런 동원 방식을 자유 모집이라 부를 수는 없다.
여운택, 신천수 두 할아버지의 증언에서 드러나듯이, 응모 단계에 노동자의 자유 의사가 일부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모집 후의 상황은 감시와 폭력, 착취에 시달리는 비참한 처지였다. 공장에 경찰이 수시로 방문해 도망가지 못하도록 협박했다는 증언은 중세 유럽의 장원에서 농노에게 가해졌던 경제외적 강제, 즉 토지 긴박 규정을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일본 극우세력과 한국 뉴라이트 세력이 자유 모집이라고 주장하는 동원 방식의 본질은 자유 취업이 아니라 취업 사기라고 해야 한다.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이미 1990년대에 강제동원을 납치나 폭력적인 연행뿐만 아니라 법적 강제력, 사회적·정치적 압력, 황민화 교육에 의한 정신적 속박이 작용하는 가운데 이뤄진 동원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용어를 아주 좁은 개념으로 정의한 다음, 거기에 딱 맞는 증거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유를 내세워 경제 수탈과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수법은 일본 극우세력과 한국 뉴라이트가 자주 활용해 온 논법이다. 한국인 노동자 강제동원이 없었다는 주장은 그와 같은 논법의 대표적 적용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제3자에게 가해자의 책임 떠넘기려는 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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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23.3.16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은 제3자 변제안을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의 합의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동시에 충족하는 절충안으로 규정했다. 윤 대통령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의 합의란 강제동원 노동자들이 청구할 수 있는 모든 권리가 소멸했다는 내용일 터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사실 여부를 따져보겠지만, 제3자 변제안이 대법원 판결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여기서 진위를 따져봐야 한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보자.
"갑 등(한국인 강제동원 노동자: 인용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의 조선인 노동자 동원이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였음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일본 기업은 강제동원 노동자에게 각 1억 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던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을 최종 확정했다. 가해자와 불법행위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판결이다.
제3자 변제안이 대법원 판결을 충족시키려면 해당 불법 행위와 무관한 제3자에게 가해자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법률적으로 가능해야 할 텐데, 과연 그런가. 상식을 가진 법률가라면 그런 법리는 있을 수 없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니 윤석열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을 충족시키기는커녕 그것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엉뚱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민족 정서를 침해하는 행보를 보였다는 점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엉터리 논리로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있다는 점이다. 헌정 질서를 뒤흔든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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