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가 그 행복을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돌아가셨답니다. 생활능력이 없는 소녀의 어머니는 어떤 낯선 사람과 재혼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금발에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였답니다. 그 아이는 또 굉장히 착했는데 소녀는 그 아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답니다.
소녀는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러나 소녀의 엄마는 그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새 아빠가 없을 때면 아이를 구박하곤 했거든요.
새 아빠는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아이를 더 심하게 괴롭혔답니다. 마치 하인을 부리듯 아이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며 걸핏하면 때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괴롭히는 어머니의 행동은 소녀에게도 같은 행동을 강요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에 소녀는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아이에게는 신데렐라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의 소녀란 뜻이지요.
소녀는 차갑게 신데렐라라는 이름을 불러야했고 자신을 친구가 아닌 주인님으로 생각하는 시선을 느껴야 했고 자신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모습을 봐야했습니다. 소녀의 엄마가 신데렐라를 때릴때에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신데렐라’라는 말 대신 다정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언제나 웃기를, 더 이상 매 맞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현실은 달랐지만, 그녀는 그것에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하나 둘씩 상처를 입어가며 그렇게 상황에 순응했습니다. 다만 조용히.... 조용히 울뿐이었습니다.
어느날이었습니다.
왕자님께서 신부를 맞이하는 파티를 연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소녀와 엄마는 파티에 갈 준비를 서둘렀답니다.
최고급 새틴 드레스를 입고 진주 목걸이를 하고 다이아 반지와 백금 귀걸이를 하였습니다.
물론 신데렐라에게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았지요.
파티장을 향해 출발을 한 후지만 방 청소나 하고 있으라고 명령하던 엄마의 말에 슬픈 표정을 짓던 신데렐라의 모습이 어쩐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파티는 매우 화려하게 열리고 있었습니다. 행운인지 소녀에게는 왕자님과 춤춰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흰색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왕자님은 아주 아름다운 분이었어요. 소녀는 그만 왕자님께 반해버렸습니다. 이후 내내 왕자님과 춤추던 순간을 기억하면서 얼굴을 불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파티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돌아보니 적자색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미녀가 파티장에 들어오고 있었어요. 신데렐라였습니다. 멀리서 봐서인지 이목구비도 뚜렷하지 않았고 어디서 그런 드레스를 구한건지도 알수 없었지만 그 화려하다 못해 찬란하기까지한 금발만은 그녀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행복하게 웃고 있겠지요.
소녀는 파티장 구석에서 신데렐라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금실로 수놓아진 흰 옷을 입고있는 남자가 그녀에게 춤을 신청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왕자님입니다. 소녀는 가슴 한구석이 막히는 듯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신데렐라는 행복해야만 했습니다. 소녀가 지금까지 그녀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았기에.
음악이 끝난 후에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니 왕자님은 이미 신데렐라를 신부로 맞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한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녀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왜인지 파티장으로 나올 때 보았던 신데렐라의 표정과 같이 아주 슬퍼보였습니다.
파티장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않은 채 조용히 와인을 마시고 있었지요. 그때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하나 둘씩 울렸습니다. 갑자기 왕자님과 함께 있던 신데렐라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12번째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그녀는 달아나 버렸습니다. 파티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소녀는 신데렐라를 쫓아 밖으로 나갔습니다.
신데렐라는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유리신 하나가 계단 위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소녀는 그것을 왕자님에게 가져갔습니다.
.....왕자님과 신데렐라의 결혼식 날, 그 둘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에선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이 떨어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