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몽골 국가연합 구상: 제2화>
어제 내가 한국-몽골 국가연합에 관한 아이디어 차원의 논의를 카페에 올렸는데, 우리 친구들도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 내 보따리(?)를 다 풀어 놓으려 한다.
사실 몽골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선조들과 같은 뿌리라 할 수 있다.
몽골은 과거 실위(室韋, Shihwei)라고도 불리었고, 동쪽 지역에 사는 오랑캐란 의미에서 ‘東胡’라고도 불린 민족이었다. 아주 옛날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앙아시아에 살던 우리 조상들이 일부는 지금 蒙古高原에 정착해 匈奴族이 되었고(흉노족은 한무제 때 큰 타격을 받고 이후 흉노민족이 西遷하여 헝가리(Hungary)로 들어가 정착함. 헝가리의 ‘Hun’이 흉노(匈奴, Hsiung-nu)라는 語源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음.흉노의 ‘奴’는 노예라는 뜻인 것을 보면 漢族들이 얼마나 흉노족을 미워했는지 잘 알 수 있음)
일부는 거란족(키타이: 키타이는 중국을 서양사람들이 말하는 표현임. 캐세이퍼시픽 항공사도 이 말에서 유래)이 되었고, 일부는 만주지방으로 옮겨와 靺鞨(말갈), 濊(예), 肅愼 등이 되었지(이들이 나중에 만주족, 여진족의 조상이 됨). 그리고 일부가 한반도로 들어와 한반도 先住民과의 융합을 통해 우리 조상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몽골족이 우리의 먼 형제가 된다고 볼 수 있지. 그리고 내가 몽골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高句麗와 옛날 말갈, 흉노가 같은 민족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네. 돌궐도 마찬가지고(돌궐이 한무제 때 공격을 받아 西遷해 터어키민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설이 있음. 돌궐의 중국어 발음이 터어키와 거의 같으니까).
그리고 北魏(元魏)를 세운 鮮卑族 출신 拓跋珪(탁발규)가 우리 元氏의 조상일 수도 있으니까(왜냐하면 ‘元魏’는 우리 元氏가 세운 나라니까. 즉 다시 말하면 북위를 세운 탁발규의 후손인 北魏의 孝文帝가 중국에 들어와 漢化정책을 펴면서 중국 姓으로 바꾸어 자기 성씨를 ‘元氏’로 개칭함 ).
그래서 나는 우리 조상일지도 모르는 탁발규를 상당히 좋아한다(한족 입장에서 보면 선비족은 오랑캐지만 중국에 들어와 중국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으니까 중국인들도 ‘北魏’를 중국과는 전혀 상관없다고는 생각하진 않음. 그리고 참고로 옛날 중국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위나라가 여러 개 있었음. 하나는 춘추전국시대의 魏나라, 그다음에 曹操가 세운 魏나라(역사에서는 이 나라를 ‘曹魏’라고 함. 왜냐하면 曹氏가 세운 魏나라니까.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선비족인 우리 원씨가 세운 ‘元魏’임).
그리고 몽골족이 세운 元나라도 우리와는 피를 같이 하는 나라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원나라도 좋아한다. 내가 중국 역사에서 상당히 좋아하는 인물이 元世祖 쿠빌라이거든. 쿠빌라이 시대 몽골과 고려는 사실 거의 한 나라나 마찬가지였지. 北京에선 高麗樣(고려문화 풍습 등: 요즘의 ‘韓流’ 바람과 비슷한 熱風)이 유행했고, 고려에서는 元나라 귀족들과 혼인하는 것이 큰 유행이 되어, 한때는 자기 딸이 원나라로 끌려가면 부모들이 한탄하고, 자결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기 딸을 원나라 후궁이나 귀족의 부인으로 보낼 정도로 몽골과 고려 간에는 피가 섞였지(고려는 충렬왕 이후 원나라 공주들을 부인으로 맞아들였고, 이때 공주를 따라 들어온 西域 사람들이 印氏, 張氏들의 조상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元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順帝의 부인이 우리 고려 여자였고, 그 아들이 원나라의 황태자가 되었으니까. 이런 점에서 나는 몽골과 우리 한민족과는 사실 먼 친척이고, 형제라고 생각한다(못난 사내들 때문에 우리 할머니들이 ‘還鄕女’가 되었던 가슴아픈 점도 있지만, 이로 인해 몽골족과 우리가 더욱 피가 섞였음 ).
왜냐하면 우리 피 속에도 몽골피가 섞이고 몽골족 피 속에도 고려인의 피가 섞였으니까 말이다. 奇皇后의 경우 북경으로 가서 황후가 되고, 그 아들이 皇太子가 되었는데, 만약 그 당시 원나라가 朱元璋에게 패망하지만 않았다면, 우스개(^^) 소리지만 그때 우리가 中原을 사실상 접수할 수 도 있었지(^^). 땀도 안흘리고, 전쟁도 치루지 않고말야. 왜냐? 기황후의 경우 남편을 완전히 로봇으로 만들고, 고려 사람들을 북경 궁성에 엄청나게 들어오게 해 사실상 원나라를 그 당시 고려인들이 거의 장악하였었는데, 그만 元順帝가 백성들을 위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만을 해, 정치가 혼미해져 농민반란으로 원나라는 100년만에 망하고 사막으로 쫒겨갔거든( 사막으로 간 이후의 몽골족 원나라는 ‘北元’이 됨. 중국 역사를 보면 北魏, 北宋, 北元, 南明 등 왕조가 많아).
그리고 충선왕은 원세조의 외손자였으니까 결국 한민족과 몽골족은 피로 연결되었지.
그런 점에서 우리 피 속에도 칭기스칸의 피가 꽤 섞여 있다고 볼 수 있지(다만 조선왕조 들어와, 유교의 영향으로 명나라만을 숭상하면서, 과거 전쟁을 좋아하고 말이나 타고 다니면서, 글도 쓸 줄 모르는 몽골족과 원나라를 매우 야만시해, 이 영향으로 우리 피 속에 약간은 몽골족의 피가 흐르는 데도 불구하고 몽골과 원나라를 매우 멸시하고 폄훼하였음).
오늘은 우리가 몽골족과 결코 남이 아니고, 먼 친척이 된다는 점을 장황하게 이야기 했는데,이에 대해 또 갑론을박해보자. 앞으로 우리가 몽골과 國家合倂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점을 내가 조목조목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차원에서 계속 글을 올리겠다. 지루하더라도 부담감없이 읽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뒤에도 신문기사를 첨부해 놓았으니까 한번 읽어 보시길. 재미있는 이야기니까 말야.
원천식이가.
[기사] 몽골, "韓, 전략적 동맹 1순위국" |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전략적 동맹을 맺을 1순위국으로 꼽혀 |
예전에 국내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계신 몽골 여자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첫째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과 외견상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 둘째 우리나라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더군요
왜 인종학적으로 몽골인들이 우리와 가장 가깝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사람을 보는 기분이 들었고 일본인이나 동남아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때묻지 않은 몽골인들이 순수한 맘으로 우리나라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데 요즘 몽골에 건너간 우리나라 방문객들이 종종 민폐를 끼친다는 소식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곧 방문을 한다는 기사가 실렸길래 관련 기사를 퍼왔습니다. ------------------------------------------------------
몽골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흉노(匈奴)족’, 서양에서는 ‘훈(Hun)’족으로 알려진 민족이 주축이 되어 건설된 유목민 국가로부터 기원됐다고 한다. 인간을 뜻하는 영어 단어 휴먼(Human)이 ‘훈맨(Hun man)'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칭기스칸의 등장으로 몽골은 세계사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다. 칭기스칸의 칸은 영어로는 Khan으로 표기하지만 실제 발음은 ‘한’에 가까우며 ‘왕’이라는 뜻이다. ‘칭기스’는 바다라는 뜻의 ‘팅기스’에서 왔는데 ‘우주 또는 세계를 지배하는 이’라는 의미로 발전했다고 한다. 칭기스칸은 인류문화사적으로 보면 인터넷보다 700년 앞서 국제통신망을 건설하여 동서 간 경제, 문화 교류를 촉진하였다. 워싱턴포스트는 1995년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기스칸을 선정한 바 있다.
몽골인들에게 칭기스칸은 진심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최고의 것에만 칭기스칸을 붙인다. 울란바타르 시내 최고급 호텔 이름도 칭기스칸이고, 몽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최고급 보드카 이름도 칭기스칸이다.
중·러 사이 위치한 가장 큰 내륙국가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북쪽 오랑캐들의 침입을 막았지만, 몽골 유목민들에게 중국인들은 옥토와 평원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상대였다.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한국인이 일본인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중국인을 싫어한다. 하지만 개혁·개방의 물결이 일고 있는 오늘의 몽골에게 주변국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도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에 둘러 쌓여있지만 몽골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바다도 없이 끼어 있다. 육로는 막혀 있고 항로도 사실상 러시아나 중국 영공을 거쳐야 한다. 해로는 아예 없다.
몽골은 자원부국이자 지정학적 요충지
몽골은 세계 10대 자원부국이다. 석탄 생산량은 전 세계 총 생산량에 1%에 달하며 개발 가능 지하자원이 80여 종에 달한다. 캐나다 한 광업회사는 몽골 남부에 위치한 톨고이 광구를 개발해 향후 1만 1,000온스의 금과 다량의 구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또 대규모의 석유 및 천연가스의 매장도 추정되고 있다.
정치는 92년 민주공화제로 전환된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어 가고 있다. 외교는 개방형 외교를 펼치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부시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자리 잡은 몽골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미국도 몽골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몽골 역시 이라크에 파병하는 등 과거 사회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다변화된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전략적 동맹 1순위국
몽골에서 한국은 ‘솔롱고스’라고 불린다. 솔롱고스는 무지개라는 뜻이다. 무지개의 나라 한국이다. 일본이나 미국, 중국 등의 국가명은 몽골어로 대개 뜻없이 원어를 그대로 발음하지만,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은 ‘무지개의 나라’라는 뜻을 붙여 부른다. 대륙의 끝, 바다와 마주한 땅, 무지개가 뜨는 동쪽 방향에 위치한 나라이다. 무지개의 꿈을 좇듯 1991년 수교 후에는 많은 몽골인들이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 땅에 왔다.
몽골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몽골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전략적 동맹으로 삼아야 할 1순위국으로 꼽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몽골과 한국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너무도 많다. 몽골반점이 똑같고, 생김새도 유난히 닮았다. 말도 어순이 같다.
몽골 거리에는 우이동이니 하는 행선지가 붙은 중고 시내버스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조랑말은 ‘저러머리’라는 몽골어에서 왔다. 실제로 몽골에서 보는 말은 모두 제주도 조랑말과 똑같다. 우리에게 조랑말은 작고 초라한 느낌을 주지만 저러머리는 튼튼하고 훌륭한 말을 뜻한다. 두 발로 성큼성큼 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안장 위에서는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상태로 활을 쏠 수 있어서 칭기스칸 정복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다리미는 우리의 인두와 발음이 같다. 혹자는 이것이 원나라 시절 끌려온 고려 아낙네가 가지고 온 인두가 역수입된 것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발음이 유사한 말이 유난히 많다. ‘사등’(사돈), ‘바른죽’(바른쪽), ‘군즈’(공주), ‘밤배’(방패), ‘배차’(배추), '만토‘(만두), ‘아브’(아버지) 등등. 장사치와 같은 말의 ‘치’도 몽골어에서 비슷하게 쓰이며, 양주골 할 때의 ‘골’도 몽골어에서는 강이나 골짜기를 뜻한다.
울란바타르는 대한민국의 소도시
울란바타르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도 많다.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남양주’를 말하면 ‘남양주’라고 반문하면서 ‘남양주의 거리’에 데려다 준다. 몽골인 근로자가 유난히 많은 경기도 남양주시와 결연을 맺고 남양주 거리가 생겨났다.
서울의 거리도 있다. 거리에는 우이동이나 구파발 등 행선지를 그대로 붙인 우리 중고 시내버스들이 수입되어 운행이 되고 있다. 택시나 개인 승용차도 눈짐작으로 보아 반쯤은 한국산이다. 비슷한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과 서울의 지명을 붙이고 다니는 시내버스와 택시들. 한국 어느 소도시에 와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영어보다 한국말 더 통해
한국에 가서 취업하고 있는 몽골인들 수는 2만여 명이 넘는다. 전 인구가 260만 명 정도이니, 100명 중 1명이 한국에 취업차 가 있는 것이다. 지방을 제외하면 실제적으로 도시에서는 한집 건너 식구 중 한 사람 정도는 한국에서 근로하고 있는 것이 된다.
몽골의 제1외국어는 러시아어다. 중국어를 많이 쓸 것 같지만 국민감정상 별로 많지 않고 오히려 요즘 뜨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택시를 타거나 거리에서 길을 물을 때 영어 보다는 오히려 한국말이 좀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에 가서 일하고 돌아 온 사람, 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이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 본국의 개별 가계나 국가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우리도 몽골의 값싼 노동력의 도움을 받고 있는 측면이 많다. 혼혈인이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몽골인 근로자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무지개의 땅, 기회의 땅
매주 월요일 한국 대사관 앞은 비자를 신청하려는 몽골인들이 장사진을 친다. 현재 2만 5,000여 명의 몽골인들이 ‘코리안 드림’의 꿈을 키우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몽골 전체 인구의 1%에 이른다. 직계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현재 한국에 거주하거나 거주한 경험이 있는 경우를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몽골 대졸자의 초임은 월 10만 원 정도. 그나마 일자리도 흔치 않다. 한국에 나가 있는 몽골 근로자들이 어렵게 고생하며 아껴서 송금한 돈은 가족들에게는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주 소득원이며 동시에 국가 전체로는 주요한 외화 획득의 수단이다.
생김새는 물론 마음 씀씀이까지 닮은꼴
한국인들 또한 몽골인들에 대해서 유별난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한국인과 체질 인류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몽골 사람이기 때문일까? 실제로 몽골에 와서 보는 몽골인들은 생김새나 마음 씀씀이가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
이곳 한국 교민사회가 몽골에 갖는 관심도 각별하다.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고아원 등 자선기관이 열 곳이 넘는다. 이 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을 비롯해 모두 5개의 대학이 한국인에 의해 설립됐다. 이 가운데는 이미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한 대학도 있다. 한국인이 설립해 운영하는 현대식 병원과 한방 병원은 의료 기술이나 시설면에서 이 나라 최고 수준이다.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유·무상 지원 외에도 각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도 활발하다. 사회단체나 개인 등 민간차원의 교류나 협력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국인들보다 한국 드라마 더 즐겨본다
몽골인들은 한국인 보다 훨씬 더 많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즐긴다. 1997년 이 나라에 처음 한국 드라마가 소개된 후 지금까지 몽골 내 5개 TV 방송국 가운데 3개 방송국이 거의 매일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방영하고 있다. 멜로드라마, 가족드라마, 액션물 등 장르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몽골인들의 가슴에 바로 와 닿기 때문이다. 또 언어 체계가 비슷해 번역이 쉽고 우수한 통·번역 인력도 많기 때문이다.
이곳 대학에서 한국학이나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2,500명을 헤아린다. 기회의 땅과 인연을 맺기 위해 한국어 학습에 열심인 것이다. 한국산 제품은 이 나라에서 최고의 상품이며 젊은이들 사이에는 한국 배우나 가수 이름을 모르면 '왕따'를 당할 정도. 한국의 유행은 거의 동시에 이곳에 전해진다. 한국 음식의 인기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2004년 '대장금' 방영 이후에 한국 음식점들은 몽골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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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천식이 글을 보니 우리나라가 몽골과 더욱 가까워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
야, 며칠새 이런 글을 계속 쓰고 있는데, 괜찮은 주제인가 보다.^^
원장 선거 나가시랴 정신없을 텐데...원고 쓰는 전문성과 정성으로 밀고나가면 꼭 당선되리라 믿는다.
민형씨, 고맙다. 언제부터인가 내 글도 우리 동문회 카페를 도배하기 시작(^^)ㅋㅋ
ㅎㅎ 장가못간 농촌 총각들이 배우자를 베트남이나 필리핀에서 찾지말고 몽골에서 찾아야겠구먼~~
요즘 베트남 아가씨나 필리핕ㄴ 아가씨가 잘 달아난다. 문단속 잘해야 할듯. 한국 아가씨는 모두 눈이 높아 왠만해선 아들 장가도 못보낸다. 그런데 몽골아가씨는 다소 미색(?)에서 빠짐.
꼭한번 가보고싶은 나라였는데 원천식의글을 읽고는 안가보고는 못견디겠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다음산행때 만나자.
내 얘기의 요점은 한국과 몽골은 조상도 같이 한다는 점이고, 그래서 국가통합도 전혀 엉뚱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이야기. 봉훈씨, 토요일에 오면 또 보자.
한국과 몽골도 중국 때문에 갈라졋고 남한과 북한도 갈라 놓은 장본인이 바로 중국 소행, 조선 500년 동안 대중국 속국이라 떠들지 않나~ 한반도가 일본놈 한테 그리 당해도 조공만 받앗지 대신 싸워준 적도 없고 오히려 청나라가 수모를 당한거 지금도 입에 거품을 물고 씩씩 거리는 꼴이란 참~
청일전쟁 때 일본보다 병력이나 함선이 엄청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초전에 작살났지요. 아산만과 평양에선 청군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천식아.. 민형이가 언급한 원장선거가 뭐냐.. 이런 관심이면 한 번 천식이가 울 동창들 몽고체험여행 조직해도 되겠다..
내 카페( http;//cafe. daum.net/wtowon )에 출사표의 글을 올렸다. 주제 넘은 생각도 들지만 이제 50살이 넘었으니까, 내 인생에 책임을 지고 싶기도 하고, 꿈도 있고^^ㅋㅋ
연재를 계속 기다리고 있음.
강국아. 고맙다. 아무리 바빠도 이 글은 계속 써야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