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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에 찜질방에서 나와 일단 피씨방에 가서 하얼빈 관련정보를 조금 더 알아본 후 나는 안가봤던 조린지애를 가보기로 했다. 전날 과과리지애와 정우지애가 너무 좋았기에 나는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조린지애는 내 생각과 달리 너무 작고 볼것이 없는 거리였다.(나중에 알고보니 조린지애는 꽤 긴 길이어서 그곳을 지나서 걸아가야 제대로 된 거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걷다가 그냥 버스를 타고 전날처럼 시내를 총괄해서 보기로 했다.
차를 다고 가다보니 우연인듯 우연이 아닌듯 내가 원하던 관광지들이 저절로 내앞에 나타난다.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했던 곳으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어본 곳이다. 안타까운것은 이곳에 안중근을기리는어떤푯말도없었다는것인데여기에그를기리는기념물을세운다면한국사람들이더많이올수있다는생각이다.
하얼빈역에서 기차시간을 알아보니 낮이든 밤이든 원하는 날 떠날 수 있다고 판단되어서 여유가 좀 생겼다.
작은 도시들은 하루에 한번밖에 떠나는 기차가 없는데 여기는 큰 도시라 하루에도 여러 번 출발하는 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어떤 루트를 통해서 돌아갈지를 정하지 않았다.
원래 생각은 장춘을 거쳐서 길림, 돈화로 해서 연길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인터넷을 보니 장춘에서 길림시로 가는 철도가 웅장한 만주벌판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해서 그 모습을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시간상 들르지 못한 자무시를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도시들은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다.
그러나 변방의 구석도시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 올 수 없을지 모른다. 목단강의 위쪽에 있는 자무시는 내게 이상한 호감을 주는 도시였다.
러시아풍의 도시이며 변방느낌이 있는 도시라는데 나로서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고 기회가 된다면 그 위쪽으로도 탐험을 해보고 싶었다. 더 추워지면 그 위쪽으로는 갈 수 없을 것이다.
일단 오늘 당장은 어디를 갈지 결정하지 않고 그냥 도시 자체를 만끽하기로 했다.
하얼빈은 이것저것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그 규모에서 다른 도시들을 압도하지만 하얼빈의 이국적인 면은 그에 못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서울이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엄청난 오랜시간이 지난 도시의 연륜이 배어있는 하얼빈의 거리들은 그에 필적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다.
하얼빈이 이정도로 성장한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스터리다. 중국내륙의, 별로 뚜렷한 성장구조가 없는 도시로서 어떻게 이런 규모와 발전을 이루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정말 중국 자체적으로 이정도 도시를 발전시킬 역량이 벌써 있었단 말이다.
주변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발전한 심천, 광주, 상하이, 동북삼성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발전해서 이정도로 성장했단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미래는 정말 엄청날 수 밖에 없다.
하얼빈역에서 출발시간만 체크한 후에 나는 다시 역앞에 있는 시내버스를 탔다. 시내버스는 마침 또 내가 가보길 원하던 흑룡강대 앞으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어느 도시나 대학가는 발전하기 마련이다. 하얼빈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엄청난 인파로 발디딜틈 없을 정도였다.
이곳을 여기저기 지나가보니 아무래도 대학가로 젊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고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학교앞 거리에서 판매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여기서 일단 1원짜리 볼펜을 하나 사고 늘 필요로 하던 열쇠고리형 손톱깍기를 하나 샀다.(값은 5위안) 그리고 조금 걷다보니 전자사전을 파는 상가가 나타났다.
나는 혹여나 하고 누리안 사전이 있는지 보려고 상가를 올라가서 보다보니 처음 문을 들어서자마자 내가 원하던 누리안이 눈에 띄었다.
나는 너무 기뻤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넌지시 가격을 물어보았다.
가격은 한국에서 판매하는 것보다는 10%정도 비싼 가격이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홀로 하는 여행에 사전에 꼭 필요한 상황이었으므로 누리안을 살 생각으로 가격을 최대한 깍은 다음 여기서 돈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나는 교통은행에서 만든 현금카드를 갖고 있었는데 여기 있는 공상은행에서는 어떨때는 되고 어떨때는 안되는 상황인데 내가 마침 찾으려고 할때는 돈을 찾아지지 않앗다. (왜 어떨때는 되고 어떨때는 안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돈을 찾기 어렵다보니 내일 살 수 밖에 없어서 일단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돌아서서 가다보니 여기서 사는것보다 어차피 한번은 한국에 들어가게 되니 그때 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는 것을 보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올 때 어쩌면 정춘을 들렀다 올지 모르므로 장춘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내일 한번 와보고 그때와서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흑룡강대 앞에는 엄청난 번화가여서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구숫자로만 따지면 여기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거리를 보다가 버스를 타고 시내있는 쪽으로 나가기로 하였다. 버스를 타고 지도를 보면서 가니 내가 어느 거리를 다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어 그게 참 좋았다.
서울의 경우는 너무 커서 지도만 보고서는 거리를 한눈에 볼 수 없는데 중국의 소도시는 지도를 들고 버스를 타면서 다니면 거리곳곳이 금방 눈에 들어오게 되고 지역 파악이 쉽게 된다.
여기서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지역이 좁다보니 아무런 버스를 타고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아무 버스나 탔는데도 결국 내가 원하는 하얼빈 공대까지 왔으니 말이다. 하얼빈 공대가 마침 나타나서 나는 내려서 전자상가가 발달했다는 하얼빈공대앞 전자상가에 가보았다. 흑룡강대 앞에서 팔던 누리안이 여기서는 더 쌀까 해서 였다.
그러나 누리안이 여기서는 보이지 않았고 아마도 흑룡강대 앞에서 팔던 것은 거기서 공부하는 수많은 한국 학생들을 겨냥해서 마련해 놓은 것 같았다. 인터넷상에서 보면 중국대리점으로 하얼빈은 없었으니 말이다.
저녁식사때가 되어 나는 포트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그곳가는 버스를 탔다.
내가 어떻게 버스 노선을 알까마는 그냥 버스를 타고 포트만 레스토랑이 있는 길로는 가기 때문에 그냥 아무거나 탄 것이다. 조금 아래에 있는 곳에서 내려서 포트만 레스토랑까지 가서 거기서 프랑스 요리를 시켜먹었다. 여기 중국에 와서 프랑스요리를 먹다니 세계는 과연 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 식사후에 어제와 같은 짜릿한 경험을 기대하며 거리를 나섰다.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거닐다가 멋진 성당을 발견했다.
‘어제 분명히 소피아성당을 봤는데…’
이곳은 어제본 소피아 성당보다 더 크고 더 성당다워서 나는 어제 다른곳을 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하얼빈 예술기념관으로 소피아성당보다 더 크고 더 웅장하게 지어졌다.
이 거리는 조린지애로 인터넷상에서 가볼만하다던 그 거리였다.
나는 어제 조린지애의 첫 부분만 보고서 그냥 별것 없다고 생각해서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고 말았는데 조린지애의 참맛은 이런 곳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린지애의 중심가는 다른 곳들보다 더 큰 쇼핑센터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중심에는 큰 광장과 예술기념관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린지애에서 중앙대가까지는 지도상으로 별로 멀어 보이지 않아서 나는 걸어서 중앙대가까지 가기로 했다. 중앙대가에 있는 피씨방에 가서 조금 더 하얼빈 정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 네이버에는 하얼빈리 라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에는 정말 하얼빈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어서 나로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희한한 것이 여러 번 갔던 그 피씨방이 오늘 찾아보니 정말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데 분명히 어제 있던 곳이었는데 도무지 나타나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나는 찾다 찾다 못 찾아서 그냥 그 앞의 사우나에 가서 쉬기로 했다. 다행히 사우나는 그 앞에 그대로 있었다.
찜질방에서 참 좋았던 것이 여기서 밥도 주고 잠도 자고 피씨방까지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한 가지 더 좋은데 세탁서비스까지 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돈을 조금 줘야 하지만 여행에 찌든 내 옷가지를 전부 빨아 주는 데에는 그 30위안이 아깝지 않았다.
15일 아침 9시에 일어나서 밥도못먹고버스를 타고 이곳 저곳가다 하얼빈공대앞에 가서 카메라를 충전해달라고 하였다.
혹시나 해서 해본 것인데 의외로 흔쾌히 소니 카메라의 배터리를 충전해준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안 되는 것도 없었다.
나는 여기에 카메라를 충전시켜 놓고 어제 사려다 못한 누리안을 보러 다시 흑룡강대 앞에 가보았다. 흑대 앞에 있는 그 누리안은 정말 내가 꼭 원하던 것이었는데 결정적으로 보조배터리를 주지 않는다고 하여 나는 그냥 한국에서 사거나 장춘에서 사기로 하고 발걸음을 되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다시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았다.
센터를 너무 많이 비워놓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조금 할일도 생기고 해서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얼빈에서는 의외로 대부분 기차를 이용해서 타 도시로 이동을 한다. 다른 곳에서는 버스도 많이 타는데 여기는 버스보다는 기차가 발달된 것 같다.
나는 인터넷에서 봤던 대로 하얼빈에서 길림으로 가는 기차를 타보기로 했다. 그 기차를 타면 광활한 만주벌판을 볼 수 있다던데 그 만주를 꼭 보고 싶었다.
거기서 서정주의 시 ‘만주에서’를 다시본다면 그 시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연변과 연길, 길림을 굉장히 혼동하곤 한다.
나도 많이 혼동했던 것인데 길림성이 가장 큰 것이고 그 길림성 앞에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고 그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수도가 연길인 것이다.
길림시는 길림성 안에 있는 도시이름이다. 길림시는 그러므로 길림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혼동해서는 안 된다.
길림시는 길림성에서 장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인데 인구는 약 50만정도 된다고 한다. 길림은 별로 볼 것이 없는 도시라는 생각에 나는 바로 이동을 해서 연길로 오려고 했는데 저녁시간이라 차도 없고 해서 그냥 그날 밤을 길림에서 자기로 마음먹었다.
역 앞의 신문판매대에서 ‘찜질방’을 찾으니 지도상에 어디어디를 길게 죽 그어준다.
나는 찜질방을 찾았던 것인데 이 아저씨가 잘못 이해했는 줄 알고 그냥 돌아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가 죽 그어준 그 도로 전체가 찜질방과 사우나로 가득 차 있었다.
숙박에는 사우나가 가장 싸다는 것을 깨우친 나는 이번에도 사우나에서 잠을 자기로 하고 일단 역 앞에서 먹을 만한 곳을 찾았다.
일본식당이 있었는데 조금 색다른 걸 먹어보고 싶었던 나는 일본식당에서 라면과 버섯꼬치를 먹고 그날은 쉬기로 하였다. 하룻밤 28원에 사우나에서 취침을 하였다.
16일 아침 나는 거리를 나서서 어젯밤 식사를 했던 일본식당으로 다시 갔다.
너무 만족스러웠으며 국물을 먹을 수 있었기에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 따뜻한 라면을 먹고 만두를 먹으니 속이 든든했다. 역 앞에 가서 연길 가는 차를 찾으니 의외로 연길 가는 차는 많지가 않았다.
기차로 연길 가는 것은 몇 개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줄을 서 있어서 그들을 모두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버스를 타기로 하고 역 앞에 있는 장거리 버스들에 가보았다.
그런데 한곳에서는 100위안에 준다고 타라고 하는데 버스가 아닌 승용차로 간다고 하여 조금 위험할 것 같아서 타지 않고 정식 버스터미널로 가서 거기서 버스를 타고자 마음먹었다.
근데 그게 오히려 더 실수였다.
버스정류장 매표소 앞에서도 불법적인 암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사려고 하니 오늘 저녁때 출발하는 차만 있다고 하며 자기의 차를 타면 4시30분이면 연길에 도착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차가 버스인지를 확인하고 버스이면 탄다고 하였더니 나를 데리고 조금 떨어진 어느 곳으로 버스를 타러 가야한단다.
나는 빨리 가려는 마음에 그냥 그 남자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사람은 버스가 오자 거기서 나에게 185위안을 내라는 것이다. 아까는 분명히 85위안이고 다른 요금은 없다고 하였는데 이제 와서 185위안이라니… 내가 강력히 항의해보았지만 일단 출발해서 연길로 빨리 가고픈 마음에 그냥 양보를 하고 말았다.
타고서는 조금 찝찝한 기분이었다.
버스는 꽤 훌룡했다. 연길로 가는 고속버스로 넓찍 했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우등고속쯤 될 것 같았다.
오는 도중에 보이는 만주벌판은 보고보고 또 보아도 가슴이 뭉클했다. 이렇게 큰 땅덩어리에 우리들의 선조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이 만주를 잊고 있지만 여기에는 우리의 흔적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있어서 그냥 잊고 지나치기엔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번 만주여행은 내게 큰 시야를 가져다주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도시에서 도시로 비행기를 타고 관광지만 보는 여행이었는데 이번 만주여행은 내가 직접 시내버스와 고속버스로 중국서민과 동일하게 먹고 자고 하면서 천천히 걸어왔던 것으로, 다른 여행들보다 훨씬 더 중국을 잘 파악할 수 있었으며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우리 센터에서 리더십 프로그램을 할 때 내가 왔던 그 코스로 만주여행을 한다면 분명히 감동적인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다음에 시간이 있다면 단동과 대련으로 하는 요녕성지역을 한번 더 가보고 내년 여름에는 이번에 가보지 못했던 동경성과 경박호, 자무시와 그 위쪽 시베리아를 가보고 싶다. 그곳에는 태곳적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보아왔던 그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