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씨 부인의 홍콩쇼핑
- 어느날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서울의 H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의 아내가 캐세이퍼시픽 항공편으로 언제 홍콩에 가는데 그곳에서 쇼핑을 좀 도와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물론 내 대답은 OK였다.
-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수출관계로 적어도 1년에 한번은 해외출장을 하는 그에 반해 그의 아내는 아무리 같이 한번 외국바람을 쏘이고 싶어도 그게 되지 않았다. 당시 불필요한 해외여행은 철저히 금지였었으며 더구나 가정주부의 해외여행은 외교관이나 주재상사 직원의 배우자 이외에는 원천적으로 불가한 시점이었다.
- 그래서 그 부인은 언젠가 서울에 갔던 필자의 집사람을 보고 “ 나는 당신이 제일 부러워 “ 라고 하더란다. 집사람이 “ 저의 뭐가 부러워요? “ 하니 “ 아! 왜 그거 홍콩에 살면서 세계에서 제일 좋다는 물건 맘껒 살 수 있다는게 그렇게 부럽단 말이지. “ “ 저희는 그런걸 살 돈도 없어 아이쇼핑( 눈도장 ) 만 하는데 이젠 그것도 별로예요 “ “ 글쎄….. 그래도 나는 꼭 홍콩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 “
- 그런 그의 부인이 홍콩에 온다기에 어떻게 여권을 만들었냐는 나의 물음에 그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모 종교단체 주관 지도자 성지순례단 일원으로 여권을 받았고 그래서 반드시 인도에서 일주일 일정을 마쳐야 하며 그 후 홍콩에 와서 해산하는 단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부인이 그 종교를 믿는다는 자체가 금시초문이었다.
- 여권 부로커 ( 당시에는 그런 직업도 있었다 ) 에게 돈을 주고 여권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 거친 인도 대륙을 일주일간 여행하며 전혀 입에 맞지않는 음식을 삼키고 고된 잠자리를 참아가며 오로지 홍콩에서의 쇼핑 만을 고대했던 그 부인에게 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 도착 당일 공항에 나간 필자가 엄청 큰 이민빽 하나를 끌고 나오는 H 씨 부인을 택시 승강장으로 안내해 가방을 택시에 싣는데 의외로 가방이 가벼웠다. 호텔에 도착후 가방을 정리 하는데 큰 가방 안에서 그보다 작은 가방이 나오고 그 가방 안에서 그보다 더 작은 가방이 나와 가방이 모두 3개 인데 물론 모두 빈 가방 이었다.
- 마침 토요일 오후여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늘은 홍콩시내 관광이나 하자는 필자의 제안에 관광은 무슨 관광이냐고 펄쩍 뛴다. 쇼핑하러 왔지 관광 온게 아니란다. 점심은 비행기 안에서 먹었으니 오늘 1차 쇼핑후 저녁이나 먹잔다. 쇼핑리스트를 보자니까 리스트도 없고 잘못 사면 가짜를 살수도 있다고 하자 자기는 척 보면 가짜, 진짜를 구별 하니까 빨리 명품으로 유명한 백화점에 안내나 해 달라고 했다.
- 우선 한인이 운영하는 작은 백화점 ( 말은 한인 백화점 이었으나 사실은 잡화점이 맞다 ) 으로 안내해서 그곳에 있는 물건부터 챙기도록 했다. 1차 매입이 끝난후 호텔로 배달을 요청하고 우리는 명품이 즐비한 침사츄이구의 페닌슐라 호텔로 갔다. 주로 유명 보석상과 여성용품매장이 연달아 있는곳 이었다. 구찌, 샤넬, 셀린느, 입생로랑, 루이뷔통, 크리스챤 디오르 등등등…..
- H씨 부인은 부인은 대만족이었다. 닥치는대로 챙기고 또 챙겨 그곳 종업원들이 다 놀랄지경이었다. 아마 당시 필리핀의 대통령 부인 이멜다 여사가 홍콩에 오기만 하면 그곳에서 쇼핑을 했다는데 그 이멜다 만은 못해도 하여튼 대단했다. 너무 짐이 많으니 그곳 종업원이 짐꾼을 시켜 호텔까지 딜리버리 서비스를 해주었다.
- 일단 호텔에서 짐을 받아 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저녁을 먹으며 아직 돈이 좀 남았으니 내일은 아까 보아뒀던 보석상에서 롤렉스 시계나 사야겠다고 했다. 필자는 다음날 오후 12시 반 서울행 비행기 시간을 상기시켜주고 짐 정리나 하라고 하며 헤어졌다.
- 이튿날 9시에 만나 어제의 호텔로 갔으나 매장은 10시 오픈으로 커피나 한잔 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거절하고 그저 이곳 저곳 여러 매장의 쇼윈도우만 들여다 보며 즐거워 하면서 시간을 소비했다. 매장이 문을 열자 1착으로 들어간 우리가 롤렉스 시계를 보고 싶다고 하자 필자가 익히 보아 오던 은색 여자용 시계를 내보인다.
- 이것 말고 콤비를 보여 달라고 하자 금색과 은색이 잘 조화된 롤렉스 여자용시계를 은쟁반에 담아 보여주는데 필자는 그렇게 멋진 롤렉스는 처음 보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필자는 남자용도 하나 보자고 해서 팔목에 차 보았는데 너무 고급스러워 필자에게는 부담이 될듯했다. 그저 할리우드 스타나 재벌 회장님들에게나 어울릴것 같았다. 그 시계가 마음에 들었던지 가격을 물어본 후 필자보고도 하나 사라고 권했다. 이거 서울 가지고 들어가면 당장 2배를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가격이 너무 비싸니 깍아달라고 한다. 주인은 디스카운트 ( 할인 ) 가 없는게 우리 폴리시 ( 회사방침 ) 다. 아니 이렇게 많은 돈을 내는데 한푼도 안 깍아 주는게 말이되냐 ? 한참을 승강이 하다 결국 다른 손님이
들어오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 11시 였다. 바로 짐을 챙겨 택시를 잡아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데 빽 3개가 모두 꽉 찼다. 소심한 필자가 택시 안에서 어렵게 부탁을 한다. 만일… 만일에 김포 공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물건들을 사는데 KAL 지점의 아무개가 안내 했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아달라고. H씨 부인은 웃으며 내가 어린애인줄 아냐며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 그 말을 들으니 아주 어렸을 때, 병아리를 손으로 잡았을 때 그 병아리 가슴 처럼 팔짝팔짝 뛰던 필자의 새가슴 (?) 이 조금은 진정 되는듯 했다. 항공사 카운타에서 짐을 맡기고 보니 바로 출국수속 시간이었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려는그녀를 잡고 이 새가슴이 다시 한번 부탁한다. “ 집에 도착 즉시 저에게 전화부터 해 주세요. “ 그리고 그날 저녁 7시경 H씨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부인은 아무 문제 없이 김포공항을 거쳐 집에 잘 도착 하였노라고. 휴우우우….
< 추신 >
- 한참의 세월이 흐른후 필자가 서울을 방문했다. H씨 부부가 필자를 초청해 롯데호텔 일식부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맛있게 음식을 잘 먹었다. 그런데 그 때 홍콩 쇼핑과 관련해서 그 부인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45년이 흐른 지금에도 뇌리에 생생하다.
- 홍콩에서 쇼핑 해온 빽 3개중 하나를 풀어 그 물건들을 팔았더니 왕복 비행기 값이 떨어지더란다. 두번째 빽을 풀어 팔았더니 홍콩에서의 쇼핑 대금이 나오고 그래서 세번째 빽에 든 물품은 온전히 공짜로 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였다.
-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강남의 복부인들은 명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새가슴의 필자는 하릴없이 당시 H씨부인의 홍콩 쇼핑에 대한 집념과 이를 과감히 실천에 옮기는 용기가 너무 놀라웠다고 말 해주었다.
첫댓글 그쪽 업계에서는 일상같은 일 일수도 있는 추억거리지만
부끄러운 일이네요. 조금은 화도...
일반인들의 해외 여행이 안 될때 역사를 찾는다고
한번 나가려면 안기부 교육에, 금지에 방송사에서도
아직은 아니니 나가려면 사표내라고...
종교단체와 여행사에 부탁해 종교행사 취재원으로 가장,
비행기 바꿔 타기...
당시 도와주시던 한 어른과의 약속이 나라망신 시키는 일 절대 금지
쇼핑 자제였지요.
그래서 그분처럼 비상용 작은 카매라 하나와 손수건, 소금, 물 정도 였지요.
공항 세관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몰래 취재하다 그 나라 공안이나 경찰에게
쫒길때는 달아나기 쉽고...
여행이 풀리며 방송사에서 부대사업으로 해외 여행 상품이 인기였는데
의외로 비싼 코스들이 품절일 정도...언론사 여행객들이라고 믿고 감시를
덜 한다는 소문까지 돌아 위와 같은 손님들이 몰린 덕(?)...
지도층의 부인들이 쇼핑을 위해 나가고, 지나치게 쇼핑한 물건을 옆 사람에게
나눠 가지고 입국하는 일들이 생기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다 보니 소문이 나서
많이 애도 먹고 언론사 간부 가족들 자제요청도...
종교단체들까지 금지된 적도 있어, "빈손 여행"을 외치기도...
지금도 이런 류의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좌파들이 부자를 싸잡아 싫어하고, 트집잡는 이유중의 하나 일듯...
대학원때 옆의 팀들이 어느 시내버스 관리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회장댁에 갔는데 궁전같던데 그들이 타고 간
그 시내버스의 안내양들을 오돌오돌 떨며 일하더라고,
지도 교수님께 그 일 안하면 안 되냐고들...
큰 딸 낳고 대만에 갔을때 대만 측 분들이 애엄마 선물 하나는
사가라고, 내국민 가격으로 귀걸이 목걸이 세트를 사주었는데
밖에서 제게 건네는 것을 보고 쫒아와 대만 측 분들에게
"매국노들" 이라고 대놓고 욕을 합디다.
오국인 가격의 차액을 내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매국노들을 확인한 걸로 됬다고 욕하더랍니다.
선진국으로 가려면 부자나 공인들뿐만 아니라 국민 각자가
상식과 품격을 지켜야 할 것이라 생각해서 댓글 예의를
벗어날 수 있는 글을 달았으니 양해 하시길...
그 시절은 사진을 찍으려 해도 영혼을 빼앗겨서 안된다고
욕을 하고 쫒아 내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같은 얘기로...
- 중동 근로자들이 입고 들어가던 "쎄무 잠바" 까지 시비를 걸던 공항 세관이 특권, 부유층에게는 엄청 관대했지요.
- 그래서 김포 세관에 근무 하는 사람은 1년만 잘 하면 집 한 채를 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 코로나-19 나기 직전 한국을 방문 했는데 그 때 세관원들의 태도를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 제가 볼 때 공항세관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다른 부분은 아직도 많이 정화될 부분이 있습니다만......
국내적으로도 문제지만
외국세관원들이 한국인들을 깔보고
결국은 국격의 문제가 되지요.
후진국에 가면 못들어 갈 곳도 뒷돈만 쥐어주면
가능하지만 돌아서서 역시 너희가 그렇지 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국개 나리들남의나라 공항에서 VIP 대접 안 해준다고 깽판치고는
시찰 갈 시간에 골프나 술집에...
요즘 언론에도 몇사람 오르,내리더군요.
현장에 계신 분들이 단호하게 해야 다시는 그런 짓 못하는데
가이드나 모시는 하급 공직자들이 알아서 기는 관례가
마치 군대의 불법 얼차려 처럼 통용되어 일상처럼들 시도를 하더군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말단 공무원들이 박대통령 주변 사람들에게도
잘못하면 제재를 할 정도 였는데
지난 정권은 고위직들이 죄는 다 짓고 수사 안 받으려고
검수완박이 검찰 개혁이라니...
캐나다 사시면서 한국 검찰의 형태나 검경 기소 수사불리의 원칙을 잘 못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옛날 기술이 부족해 공급이 항상 부족한 시절 그 부족한 재원을 나누는 방법으로 피 터지게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로 나뉘어 서로 제거하고 살상하고, 한반도 그 최전선에서 수많은 피를 흘렸지요.
눈부신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이 넘치니 그런 이념적 문제는 옅어지고, 페루와 콜롬비아 아프리카에도 공산 좌파 이런 게릴라 전쟁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 이념 충돌의 끝자락 우크라이나가 희생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의 최강 일본이 80넘은 노정객이 세상이 바뀐지도 모르고 권력을 꼭 쥐고 일본을 좌지우지 하니 일본이 망조에 들었습니다. 디지털 강국 한국 중국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노정객들 물러나야 합니다.
세상이 바뀐지 모르고 신파곡조 좌파 우파 논리를 듣는게 이젠 식상도 합니다.
기술로 인한 양극화 또 눈부신 기술로 자원의 오용으로 인한 환경문제 등 새로운 이슈가 이 시대의 큰 문제입니다. 한국의 당면 최대 과제인 저출산 문제가 (일본 1.34 한국 0.8) 이번 선거에 이슈가 못되고 아직도 좌우논쟁 서글펐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신파조 좌파 논쟁은 그만 두심이 어떠실지!
좌파들이 발전하는 한국을 망치려 하지만 않는다면야
아까운 시간과 열정을 그런데 허비할 이유도 없겠죠.
좌파가 아니라면 변종 주사파던가?
검수완박이 진정으로 검찰 개혁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캐나다 교민들에게 권고하실 수준은 아니신듯 합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선진국이지
검수완박으로 불의와 불공정을 덮으려는 것은
독재를 바라는 위장 개혁 쇼로 밖에는 안 보는 것이 저희들이니
저희들 보다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할 대한민국의 성장가도에
빗장 걸고 기생충들 처럼 빨대꼽아 고꾸라지게 막는 이적, 역적질인줄도
모르는 이웃들 부터 걱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미 망해서 사라진 공산주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줄도 모르고 거수기 짓 하는 이들을 걱정하는 것일 뿐입니다.
건강하세요.
본질을 논하기 전에 상대를 단정짓는 이분법적 해석에 뭐라 말씀을 드려야될지 대책이 서지 않습니다. 저가 말하려는 논지를 잘 못 해석하시는 것 같습니다. 새는 두 날개로 훨씬 높게 멀리 날 수 있습니다. 독일처럼 서로 타협하고 존중하는 성숙함이 있다면, 목표가 같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