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물질
허유미
노래를 따라가 보니 물속이었다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요일의 아침 햇살 같은 물빛이었다
엄마는 담배를 물고 불안으로 늙고 있었다
섬에서 늙는다는 건 비밀이 될 수 없다
덜 먹고 덜 기대하고 덜 꿈꾸는 것이 비밀이었다
비밀을 없애기 위해 물에 드는 여인들의 노래는
바다의 상상이었다
여인들의 얼굴은 눈이 부시었다가 흐릿해졌다
명령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낭만도 아니었다
순전히 노래가 가는 방향이 물이었기 때문이다
불안과 비밀을 나눌 곳이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했다
돌고래만 지나는 물길을 잊어도
노래를 잊지 못하는 건 바다의 상상 끝에 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마주한 여인의 표정이 나이고
나는 여럿이고 봄밤이 가라앉고 있었다
노래는 춤인 듯하고 춤은 물의 윤곽인 듯했다
거기서부터 알면 된다는 듯 손금이 늘어났다
서툰 만큼 울어도 되는 곳이었다
열다섯을 지나는 그곳에 나는 있었다
본래
이것은 새와 나 사이의 거리
노트 속에서 새들이 날아오른다
둥글다는
다가오는 말일까
멀어지는 말일까
접시 위에 노른자 무리들이
군무를 펼치고 있다
식탁 위 양념통과 그릇 말라 가는 과일이 숲을 이루고
난반사되는 지저귐 아래서
포크로 노른자를 찌르면
새는 깨진다
은유가 끝가지 다정했던 적이 있었는가
잠시 망설이면 타인이 된다
부리처럼 식은 밥을 쪼아 먹다
고독과 무리 사이
불안한 거리에서
은유는 시작된 건 아닌지 골몰한다
노트 속에 남은 새들의 발자국
무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고독
―허유미, 고주희, 김애리샤, 김효선 합동 시집 『시골시인―J』 (걷는사람/2022)
허유미
제주 출생. 2019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청소년 시집 『우리 어멍은 해녀』 , 합동시집 『시골시인―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