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ning - 한 세트만 더!
참고말씀: 마7:26,27; 막2:8; 요1:48; 행5:42; 9:19,20,22; 롬16:5; 고전16:19; 몬1:1,2
읽을말씀: 마16:13-25
주제말씀: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첫째,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바른 믿음(13-17절)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5,16)
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사랴에 이르셨을 때 제자들에게 무엇을 물으셨습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지 입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
왜입니까?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셨기 때문입니까? 예수님 당신의 평판이나 인지도, 인기 등이 어떤 지를 직접 듣고 싶으셨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허면 무엇 때문입니까? 진짜 더 중요한 질문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
사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 따위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제자들을 통해 조사하게 하지 않으셔도 다 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1:48) /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막2:8)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물으신 것입니까? 제자들에게서 중요한 신앙고백을 이끌어내도록 코칭(coaching)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다 치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이 때 베드로의 입술에서 어떤 고백이 나왔습니까?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 고백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왜 이 고백이 그토록 훌륭한 고백입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간단명료하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우리의 구세주(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습니까? 물론 성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거니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 이와 동시에 예수님의 코칭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세례요한도, 엘리야도 아니야, 그렇다고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도 아니냐! 그러면 난 누구겠지? 찬찬히 생각해보렴.’
한 번 묻겠습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있습니까? 우리의 부모나 친구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원컨대 최고의 코치이신 예수님의 코칭이 이 시간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둘째, 교회로 세워지는 우리(18-19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그 위에 무엇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까? ‘내 교회’, 곧 ‘나의 에클레시아’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18절 상)
어째서입니까? 교회는 언제나 이 같은 고백 위에만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교회란 외형적인 건물이 아니라 이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롬16:5 상) /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고전16:19 하) /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몬1:1,2)
사실 우리 교회나 각 기관도 ‘언제’ 든든히 세워질 수 있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교회를 세워질 때, 즉 개개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때 비로소 든든히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5:42) /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히니...사울은 더 힘을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행9:19,20,22)
만일 이런 것이 없으면 무엇이 되고 맙니까? 모래 위에 세운 집, 곧 사상누각(砂上樓閣)입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6,27)
그러니 이번 수련회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교회로 세워졌는지를 점검하고, 혹 그리하지 못하다면 이번 기회에 바른 교회로 세워지도록 서로 기도하면서 도와야 할 것입니다.
한편, 주님의 교회는 무엇이 이기지 못합니까? 음부의 권세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 하) 이는 무슨 말입니까? 교회는 천국열쇠, 곧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권세를 부여 받았기 때문에,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19절) 더 이상 음부(지옥)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데려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할렐루야!
셋째,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따르는 십자가 길(20-25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직후 무엇을 예고하셨습니까? 자신의 고난과 죽음, 부활입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21절)
그런데 이 때 누가 이를 만류하고 나섰습니까?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절) 어째서이었습니까? 예수님의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희생 없이도 얼마든지 사명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무엇에 지나지 않습니까? 사탄적인 생각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23절)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처럼 어떤 길로 가야만 합니까? 십자가의 길이자 자기부인의 길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절) 즉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데까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원컨대 예수님을 누구로 믿고 따르는지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이제라도 바른 믿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예수께서 우리를 교회로 세우셨음을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믿음의 훈련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