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 최고 결정을 했다. ‘둘이서 하나 됨.’ 혼인을 맺어 평생 사랑하고, 사랑의 열매를 맺고, 그 사랑의 증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느님과 온 세상 모두의 축복을 받고 싶다.
그런데 현실은? ‘내가 평소 다니던 성당에서 해야 할까?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유명 성당이 있다던데? 식사는 뷔페로 해야겠지? 신자가 아닌 하객들은 불편할 텐데 그냥 호텔 예식장을 선택할까?’ 예비부부들은 단 한 번뿐인 혼인성사와 예식에 앞서 수십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부산가정성당’에선 이런 고민들을 싹 접어도 될 듯하다. 이곳은 한국교회에서 처음 지어진 ‘혼인미사 특화성당’이다. 성당은 8월 19일 전임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9월 8일부터 혼인미사 예식을 진행할 예정이지만, 이미 몇 달 전부터 가톨릭신자 예비부부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8월 19일 전임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 주례로 거행된 ‘부산가정성당’ 봉헌식. 제대 뒤 돔 창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별과 혼인성사를 표현하는 반지, 예수의 무한한 사랑을 뜻하는 성체, 부산교구가 일제 강점기에 첫 성당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었으나 결국 하느님께서 승리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팔마가지 등을 넣어 꾸몄다.
■ 혼인미사만을 위한 성당
“주일에도 혼인미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성당에선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말이다. 부산가정성당에선 주일미사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혼인을 할 수 있다. 신자들과 관할 구역을 두고 사목하는 일반 본당과는 달리 혼인과 가정복음화를 위해 별도로 지어 운영하는 성당이기 때문이다. 현재 예약 가능한 혼인미사 시간은 토·일·공휴일 오전 11시, 오후 1·3·5시. 원하는 예비부부가 있다면 평일 및 저녁 예식 등도 가능하다.
바다를 끼고 있는 해변휴양도시이자 국제산업도시인 부산에서도 교통이 편리하기로 유명한 초량 지역에 자리 잡은 부산가정성당. 성당은 도로와 바로 접하고 있어 앞 계단 몇 개만 밟고 올라가면 2층 성당 내부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전통 고딕식으로 지어 올려 내부 천장은 시원하게 위로 뻗어 있다. 정면 제대 뒤를 비롯해 모든 창은 갖가지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 중후함과 밝은 수채화 느낌의 따뜻함을 동시에 풍긴다. 김영자 수녀(안셀모·인보성체수도회 성미술연구소 소장)가 카나의 혼인잔치(요한 2,5)의 내용 등을 형상화해 창작한 작품들이다.
일반성당에선 볼 수 없는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벽조명도 눈길을 끈다. 단순히 사진이 잘 나오도록 꾸민 수준을 넘어 가톨릭 전례에 최적화된 아름다운 공간이다.
성가대석에는 작지만 최고의 음색을 자랑하는 파이프오르간도 설치해 전례 음악적으로 수준 높은 연주가 펼쳐지도록 했다.
단아하게 꾸민 폐백실과 신부 전용 화장실, 메이크업 공간을 갖춘 신부대기실도 일반 성당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시설이다.
성당 1층 ‘다목적 강당’은 사용자 수에 따라 문을 열고 닫아 공간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부산지하철 초량역 3번 출구로 나오면 곧바로 성당과 마주할 수 있는 편리함도, 거품을 걷어낸 예식비용도 부산가정성당이 제공하는 장점이다.
특히 이 성당은 ‘가정사목 지원센터’ 역할도 겸하고 있어 혼인미사가 없는 평일 등에는 혼인강좌와 ME 관련 프로그램, 성요셉아버지학교, 성모어머니학교, 성가정축복미사 등을 제공한다.
■ 가장 오래된 성당터가 새 인생의 출발터로 탈바꿈
‘부산가정성당’ 첫 혼인미사의 주인공은 박하연(알비나·35)·오남철(베드로·40)씨다. 이들의 혼인미사는 9월 1일 부산교구장 서리 손삼석 주교가 주례한다. 성당에서는 이들의 사진촬영과 드레스, 메이크업, 혼인미사 부대비용과 피로연 등 예식비도 전액 지원한다. 교구가 아무것도 없는 빈 터에서 복음의 씨앗을 싹틔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부부와 가정에 첫 축복의 터전을 제공하기 위해 펼치는 노력이다.
119년을 거슬러 올라간 1899년. ‘부산가정성당’ 자리엔 부산교구 최초의 성당이 세워졌었다. 교구는 오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옛 부지를 매입하고 가정교회와 가정공동체의 출발점으로 꾸몄다.
박하연씨와 오남철씨는 같은 ‘집’에서 성장했다. 부산 소년의 집.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이 보육시설에서 소알로이시오(Aloysius Schwartz) 몬시뇰을 아버지로, 수녀님들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자랐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소년의 집에 들어온 박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후 차츰 하느님과 멀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다 다시 ‘집’에 오가면서 ‘알로이시오 열매회’ 봉사를 시작했다. 오씨는 소알로이시오 몬시뇰이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면서 마지막으로 집전한 세례성사를 통해 세례를 받았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짬을 내어 ‘알로이시오 열매회’ 봉사활동에 참가해 박씨를 만났다. 하지만 친부모와 가족들이 없는 상황에서 혼인을 준비하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교구에서 혼인미사 특화성당을 짓고 첫 혼인 대상자를 공모한다는 소식에 사연을 보냈다.
전임 교구장 황철수 주교는 ‘부산가정성당’ 봉헌식 강론을 통해 “이 성당은 혼인이라는 출발점에 서 있는 젊은이들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알고 출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그러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터전, 지역사회 주민들, 특히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혼인미사 접수 051-441-3500(9월 2일 09시부터 전화접수만 가능)
200여 석 규모의 아담한 ‘부산가정성당’ 내부는 전체적으로 카나의 혼인잔치 내용을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몄다. 파이프오르간을 들이고 나무 조각, 청토, 황동 등으로 만든 성물을 갖춘 것도 특징이다.
작지만 최고의 음색을 자랑하는 성가대석 파이프오르간.
1층 다목적 강당은 250석 규모로, 하객 수에 따라 병풍식 유리문을 열고 닫아 공간 크기도 조절할 수 있다.
◆ 부산가정성당 초대주임 송현 신부
“혼인과 가정에 대한 영적 돌봄 위해 힘쓸 것”
혼인·출산 등의 중요성 공감하며 가정 신앙 키워줄 프로그램 지원
“교구가 그동안 받은 은총을 신자들에게 되돌려드린다는 뜻으로 이 성당을 운영합니다. 따라서 ‘부산가정성당’에서는 이윤을 전혀 남기지 않아 거품을 걷어낸 예식 비용으로 혼인을 치를 수 있습니다.”
‘부산가정성당’ 초대주임인 송현 신부는 또한 “이 시대에 요청되는 가장 중요한 사목적 과제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돌봄”이라면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혼인 여정에 교회가 동반한다면 예비부부와 그 가정은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사회혼이나 관면혼에 비해 성사혼 비율이 매우 낮고 혼인강좌 참가자 중에서도 냉담교우 비율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혼인성사는 냉담을 풀고 새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일부 본당에서 혼인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전용공간을 따로 마련한 경우는 있지만, ‘혼인미사 특화성당’을 설립한 것은 한국교회에서 부산교구가 처음이다. 덕분에 이 성당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시간대에 혼인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혼인한 부부들을 영적으로 돌보고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별도로 제공받을 수 있다.
특히 송 신부는 “현대인들이 혼인과 가정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대중매체를 포함해 비뚤어진 대중문화와 생활환경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가정·혼인·출산 등의 중요성을 공감할 수 있는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ME 주말, 아버지·어머니학교, 혼인강좌 등의 프로그램은 그릇된 문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데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송 신부는 “앞으로 ‘부산가정성당’에서는 예비부부와 신혼부부 뿐 아니라 기존 혼인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부와 가정을 위한 사목적 지원도 다양하게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사진 박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