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1](월) [동녘글밭] 서동요, 정읍사, 가시리를 지어 부른 우리들
https://youtu.be/GRbguFglAm4
우리의 옛 역사는 바로 ‘우리의 뿌리’입니다. 지금의 우리 삶이나 그때의 삶이나 살아가는 방식은 조금의 차이가 있겠지만 백성들의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먹고, 자고, 싸고를 반복하면서 ‘사람다운 삶’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 낸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가 되어 오늘에까지 이르렀지요,
지금처럼 누구나 쉽게 한글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 낼 수 없었기에 겨우 한자를 빌려 썼던 흔적을 찾아 내어 이렇게 저렇게 미루어 짐작을 하게 됩니다. 또한 그 흔적도 많지가 않아 자세하게 살필 수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한 때는 그 한자로 기록된 기록도 자신들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모아 없애 버렸던 우리 지배층들이었읍니다.
그러다 보니 자랑스러워해야 할 우리의 뛰어난 역사는 없어지고, 가려지고 어쩌다 남은 그루터기만을 붙잡고 우리의 그 옛날을, 그 뿌리를 살피게 됩니다. 그나마 그것이라도 남아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었던 이 땅의 지배층인 기득권 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피를 나눈 가까운 혈육만을 ‘우리의 테두리’에 넣고 힘을 뻗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때로 이웃의 소중함에 눈을 떠 전체를 하나로 보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 임금도 없지 않습니다. 가까이는 ‘조선의 세종’이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 예전에도 그런 훌륭한 님들이 가끔은 있었을 테지요. 있을 정도가 아니라 많았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래서 이어 이어 오늘, 우리들의 삶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 예전, 이웃 나라에 공자를 비롯하여 맹자와 같은 사람이 나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른 삶’인지를 일깨워 주었으니까요. 공자와 맹자 뿐만이 아닙니다. 노자와 장자도 있었으니까요. 저 멀리는 싯달타와 예수도 나와, 사람의 바른 삶을, 궁극을 이야기했으니까요. 지금도 끝없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른 삶인지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은 지난 날의 우리 겨레를 돌아 보며 우리는 어떤 우리였는지를 가늠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우리들’이므로 깔보지 말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말 것을 충고하고자 함입니다. 어쩌다 윤석열을 정점으로 모여 사악한 기운이 똘똘 뭉쳐 그 균형을 허물어트리기에 건너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제 목숨을 이어 갈 수도 없을지 모른다는 경고입니다.
그 우리들은 서동요를, 정읍사를, 가시리를 지어 부른 우리 백성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무지렁이 백성들이라고 깔보았다가는 결국, 큰 코를 다치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가까운 어제에도 ‘다스는 누구껍니까’를 물어 이명박을 감옥에 넣었을 정도니까요. 나오긴 했지만 결코, ‘용서’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100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풀고, 다시 첫 단추를 끼워 바로 잡게 될지도 모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함께’ ‘같이’라는 ‘뜻이 같은 말’이 어찌하여 자꾸 만들어지고, 자주 쓰이는지 그 까닭을 알아 두기를 일러 주고 싶은, 만우절인 오늘입니다. 지금의 권력이 전부일 수는 없으니 속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자기밖에 모르는, 거기에다 사악하기까지 한 머저리 윤석열, 한동훈에 휘둘리지 말 것을 국짐당 얼간이 놈들에게 전하는 오늘이기도 합니다.
이런 오늘도 고마움으로 아리랑 가락을 흥얼거려 봅니다. 정말, 고마워요.
첫댓글 오늘은 '서동요, 정읍사, 가시리를 지어 부른 우리들'이라는,
그런 제목의 글밭을 일구었읍니다.
우리 백성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제목을 잡았읍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저의 생각을 담았읍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