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묵상] 도스토옙스키가 발작 일으킨 그림
'무덤 속의 그리스도'가 주는 메시지는?
한스 홀바인 '무덤 속의 그리스도' / 가디언(the Guardian)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쓴 도스토옙스키는 스위스 바젤미술관에서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의 그림 '무덤 속의 그리스도'(Dead Christ in the tomb)를 보는 순간, 공포에 휩싸여 간질 발작을 일으킨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스탕달 신드롬은 아름다운 그림이나 뛰어난 예술 작품 앞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백치>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 시체를 보면서 어떻게 순교자가 부활하리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는 음산한 기운이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충격적인 그림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단절된 무덤 속, 어둡고 굳게 닫힌 공간에서 앙상한 모습으로 외롭게 누워있는 그리스도의 육신, 시퍼렇게 변한 얼굴과 온몸의 빛깔, 극심한 고통으로 뒤틀리고 짓눌려진 몸뚱어리, 누구에게서도 생명의 구세주로 인정받지 못하는 썩어가는 육체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쓸쓸하고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그림입니다.
그렇지만 홀바인은 그리스도의 죽은 몸뚱어리를 그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다른 것을 그림 속에 그려 넣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에 대한 순종과 확신, 세상과 인간을 향한 가없는 사랑과 희생, 어떤 고통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죽음도 마다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순결한 영혼을 썩어가는 시신 뒤에 감춰놓은 것입니다. 문학적으로는 탁월한 반어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인으로 영국 왕실의 궁정화가를 지낸 한스 홀바인은 종교개혁 시대를 살면서 '헨리 8세 초상화' '대사들' '에라스무스 초상화' 등 사실성과 상징성을 결합한 명화들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홀바인을 가리켜 '인생의 8할이 종교개혁인 화가'라고 부르는데, 신앙과 종교개혁을 빼놓고는 그의 예술과 삶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독실한 신앙인 홀바인이 그리스도를 뜻밖에도 처절한 시체의 모습으로 그려놓은 것입니다.
홀바인은 부패해가는 싸늘한 주검을 통해 당시의 부패한 가톨릭 종교권력에 경종을 울리려 했던 것이지만, 오늘 우리의 신앙에도 날카로운 채찍을 던지고 있습니다.
호화로운 예배당과 부유한 교회재정으로 왜곡되어가는 종교성, 장중한 의식과 엄숙한 예복 속에서 사라져가는 영성(靈性)이 저 무덤 속에 쓸쓸히 누워있는 앙상한 시체 같은 모습은 아닌지, 스스로 겸허히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질책이 들리는 듯합니다.
"화 있으리라.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마태복음 23:27)
글 | 이우근 ・변호사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