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전쟁 「제1쿼터」 종료... 재정비에 들어간 반도체 업계 / 10/21(월) / 중앙일보 일본어판
인공지능(AI) 열풍 속에 시작된 세계 반도체 전쟁 1라운드의 승부가 사실상 결정됐다. 승자는 시장을 독점하고 패자는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AI 반도체 전쟁 전반전은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의 완승으로 끝나는 상황이다. AI 모델 학습·개발에 필수적인 AI 액셀러레이터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설계·제조를 분담한 이들 기업은 분기 기준 최고 실적을 냈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제 막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고 있어 역전 가능성은 상존한다. 김정호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회는 곧 다시 찾아올 것"이라며 "농구로 치면 1쿼터가 막 끝났으며 전략과 기술 개발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 고칠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 AI 반도체는 '엔비디아 시대'
AI 액셀러레이터 시장에서는 당분간 엔비디아의 독주가 유력시된다. AMD·인텔 등 주요 도전자는 물론 많은 스타트업이 성능 면에서 엔비디아와의 정면 승부를 피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인텔은 지난달 내놓은 신형 AI 액셀러레이터 가우디3의 개발 방향을 가격과 전력 효율 등 가격 성능비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가 압도적 우위의 'AI 훈련' 성능보다 'AI 추론' 성능을 앞세워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 파운드리는 'TSMC 질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대만 TSMC가 초반 독주체제를 굳혔다. TSMC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활용되는 3나노미터(nm10억분의 1m) 공정에서 모든 주요 고객을 잡았다. TSMC의 올 3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4.2% 증가한 13조 8000억원으로 삼성 반도체의 같은 기간 순이익의 배 이상을 기록했다.
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최근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3나노 공정보다 2나노 공정으로 방향을 잡았다. 최근 일부 협력업체에 3나노 대신 차세대 공정인 2나노 공정 개발에 참여해 달라는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가 첨단 반도체를 만들려면 설계자산(IP) 기업·디자인하우스 등 여러 협력사와의 사전 개발이 필수적이다.
삼성은 2022년 TSMC를 누르고 세계 최초로 신기술 GAA 구조를 적용한 3나노 공정 양산을 발표했지만 고객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분간은 TSMC와의 정면 승부보다는 2나노 이후 시대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도 2021년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한 지 3년 만에 실적 부진으로 분사를 결정했다. 인텔은 주력 제품인 중앙처리장치(CPU) 칩을 자체 파운드리에서 생산하지 않고 TSMC의 3나노 공정에 맡겼다.
◆ 삼성전자·인텔 "당분간 본업 집중"
삼성전자·인텔은 파운드리 분야에 대한 추가 투자를 보류하고 본업 경쟁력 회복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30년 넘게 1위를 지켜온 D램의 경쟁력을 재검토하고 주요 공정을 포함한 기술개발 방식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은 D램 기술력 복구를 위한 총력전을 벌일 방침이다.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HBM 시장에서도 기존 메모리 반도체 '게임의 법칙'에서 벗어나 성능 우선 설계로 개발 방향을 전환한다.
인텔도 하반기 내놓을 신형 CPU로 경쟁력 회복에 집중한다. 파운드리 투자에 집중한 나머지 CPU 시장에서 AMD·퀄컴 등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 반도체 소재·부품·장비도 희비 엇갈린다
이처럼 반도체 업계의 경쟁 구도가 바뀌면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계도 명암이 엇갈렸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극단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은 인텔과 삼성전자가 투자를 보류하면서 장비 주문량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 제재를 위해 반도체 장비 수출을 제한하면서 당분간은 관련 매출액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처럼 주요 반도체 장비 기업이 부진한 반면 AI와 관련해 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된 HBM 관련 특수장비 기업은 연말까지 역대 최대 실적과 시장 확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