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여러분은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6절)
연약한 우리들은 추님을 만난 후에도 자꾸 예날로 돌아가려한다.(9절)
그러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순종하여야한다.
"고난당할 때 기도는 고난을 빨리 해결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문제의 초점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으라는 말씀으로 고난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게 하도록 하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고난 받을 때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렇게 고난 가운데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한 것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고난 가운데 기도하고 찬송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조남홍 선교사)
9월을 맞아 읽은 서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의 유일한 한국인 선교사의 매일 쓰는 선교일기의 일부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전하기를 원하는 것도 이같은 참 복음의 진수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릴 때에는, 세상의 유치한 교훈 아래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3,4절)
이제는 율법에 매이지 말고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믿음으로 살아야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나도 복음의 껍데기를 벗고 온전한 복음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묵상하는 시간만큼은 얼마나 복된 시간임을 알기에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세상 소망이 다 사라져 갈 때 하늘 소망을 바랄 수 있다. 메시아 오실 때를 대망하는 믿음이 점점 마음에 커지는 것도 그때문이다.
이어서 바울이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고 또 여러분은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6절)
비록 육신의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히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계신 것이다.
"지금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 주셨습니다.~" (9절 상)
우리가 아버지를 부를때 하늘 아버지도 우리에게 응답하신다는 귀한 말씀이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데 필요한 계단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제.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이다 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명하신 선교도 구원의 필수 조건은 아니나 순종의 모습의 발현인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이 마지막 걱정과 당부의 말씀을 하고 있다.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지키고 있으니,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염려됩니다." (10,11절)
여기서 바울 자신이 바울이 다멕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두번째 질문이 기억된다. 오랜시간동안 내가 응답받으려 기도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 때에 내가 주님, 어떻게 하라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더니, 주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그러면 네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말해 줄 사람이 거기에 있다." (행 22:10절)
나의 다마스쿠스는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