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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휴양지서 즐기며 일해요”… 日-태국-호주서도 ‘워케이션’
[위클리 리포트] 엔데믹 시대 진화하는 근무제도
팬데믹 시기부터 확산한 근무 형태
충분한 휴식 보장해 직장인에 인기
기업은 공유 사무실-숙박 등 지원
지난달 25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 있는 공용 사무실 외부 테라스에서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윤주 LG유플러스 수원소매영업팀 선임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LG유플러스 제공
《늘어나는 ‘워케이션’ 해외도 간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진작 끝났지만 직장인들의 원격 근무 수요는 여전히 높다. 이에 따라 휴가지A에서 업무를 보는 일명 ‘워케이션’(Work+Vacation)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일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복지 차원에서 재충전의 기회도 주겠다는 취지다. 워케이션 장소는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네덜란드 등 해외로도 확장하고 있다. 높은 만족도 덕에 치열한 참가 경쟁이 벌어진다는 각 기업의 워케이션 프로그램들과 그에 숨은 전략 및 고민들을 살펴봤다.》
지난달 25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 리조트 정문 옆에 있는 작은 건물로 들어서자 여러 사람이 노트북을 작동하는 소리만 들렸다. 2층으로 올라가자 구름이 조금 낀 날씨에도 넓은 유리창을 통해 인공호수와 넓은 녹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공유 사무실에선 LG유플러스 직원 5명이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7년 차인 이윤주 LG유플러스 수원소매영업팀 선임은 “업무에 몰입하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모니터 너머로 탁 트인 자연환경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만족스러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근무 지역과 소속 부서 등이 모두 다른 직원 5명이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은 ‘워케이션(Workcation)’ 프로그램에 선정된 덕분이다.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평일 2박 3일간 곤지암리조트에서 가족들과 함께 머물 수 있다. 숙박비, 왕복 주유비, 활동비 등은 회사에서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리조트에서 머물다가 업무 시간(오전 9시∼오후 6시)엔 회사가 마련한 공유 사무실에서 맡은 일을 처리했다. 필요한 회의는 화상으로 참여하거나 통화로 응대한다. 워케이션 참여 기간엔 담당 조직장 허가를 거쳐 맡은 일을 끝내고 예정된 업무 시간보다 1∼2시간 일찍 퇴근해 가족들과 휴식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LG유플러스가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올해 2월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시행했던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는 물론이고 대중교통과 의료시설 등을 제외한 장소에선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된 시점이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2020년부터 시행한 비대면 근무 수요도 줄어든 시점에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가동한 것이다. LG유플러스가 운영하고 있는 곤지암 워케이션 프로그램엔 6개월간 65명의 임직원과 168명의 가족이 참여했다.
● 팬데믹에 떠오른 워케이션, 회사 복지로 발전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개념을 합친 업무 형태다.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으로 집에서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 상황에서 코로나19 장기화가 워케이션 확산 속도를 앞당겼다. 어차피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사무실에 출근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한적한 국내외 휴가지에서 비대면 회의와 디지털 업무 도구를 통해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자는 문화가 확산한 것이다.
엔데믹(감염병 유행 종료) 국면으로 들어선 시점에서도 비대면 기반의 재택근무와 워케이션과 관련한 직장인들의 관심도는 여전히 높다. 여행 플랫폼 야놀자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6박 이상의 장기 숙박 예약 비중은 2019년보다 약 2.9배 증가했다. 올해 1∼5월 장기 숙박 비중도 지난해와 비슷한 추이다. 야놀자는 워케이션 수요가 늘어나면서 장기 숙박 예약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관광·여행 산업 분석 기관인 야놀자리서치는 올해 6월 30일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사무실 출근과 워케이션을 포함한 비대면 근무 방식을 혼합한 제도가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짚었다.
워케이션 문화가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근무 형태로 안착하자 국내 주요 기업은 이를 일종의 복지 제도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에게 새로운 환경에서 근무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충분한 휴식 기회를 보장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실제 LG유플러스는 워케이션 프로그램 참가자를 담당 팀장의 추천과 인사 담당 조직의 심사를 거쳐 선정한다. 프로그램 운영 초기엔 워케이션을 단순히 휴가처럼 받아들인 각 팀장이 직원 추천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참가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쟁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올해 2월 워케이션에 참여한 원공재 LG유플러스 마케팅전략팀 책임은 “함께 온 아내가 ‘회사에서 이런 것까지 해주네’라고 할 때 이 회사에 다니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격리 조치 해제에 국내 넘어 해외로
코로나19 확산 시기와 가장 큰 차이는 워케이션 장소가 국내를 넘어 해외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국가에서 출입국 의무 격리 조치 등을 해제하면서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억눌렸던 한국인의 해외 여행 수요도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해외 여행객은 815만9513명으로 전년(93만6850명) 대비 9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네이버는 올해 1월 강원 춘천시에서 진행하는 국내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이어 5월부터는 해외에서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네이버는 매주 5명을 선정해 일본 도쿄 공유 사무실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도쿄 워케이션 프로그램 참가자로 선정되면 최대 7일간 현지에서 일할 수 있다. 회사는 공유 사무실과 숙소, 아침식사, 충전식 교통카드 등을 제공한다. 공유 사무실에선 전담 직원들이 주변 식당과 관광 정보를 안내해주고 상황에 따라 통역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다.
참가자는 신청자 중 추첨을 통해 정한다. 복지 강화 차원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인 만큼 다양한 직원들에게 참여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취지다. 앞서 3개월 시범 운영 기간을 포함해 올해 6월까지 도쿄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한 직원은 160여 명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안착한 비대면 근무 제도를 활용해 직원들이 자유롭게 해외 워케이션 장소를 다녀오기도 한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올해 1월부터 근무지 자율선택제를 도입했다. 구성원 모두가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근무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사무실 출근이나 재택근무 외에도 조직장의 승인을 거치면 국내 다른 지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일할 수 있다. 네덜란드, 일본, 태국, 호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의 원격 근무 사례가 나오고 있다.
올해 1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워케이션을 경험한 태주희 우아한형제들 디자인시스템팀 디자이너는 “매일 일에만 집중하면서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재미가 있다”며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는데 변화가 생기니 굉장히 좋았다”고 했다.
● “업무 생산성 높일 방안 계속 고민해야”
조미선 야놀자 데이터마케팅 실장은 올해 4월 회사가 마련한 제주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주말을 이용해 동료들과 한라산에 올랐다. 야놀자 제공
사무실을 벗어나 휴양지 등에서 머무른다고 해도 워케이션은 결국 ‘일’이다. 직원들을 위한 복지 차원에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도 업무 효율성이나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할 방안을 찾는 것이 숙제다.
이를 위해 LG유플러스는 강원 강릉시 안목해변에서 팀 단위로 참가할 수 있는 워케이션 프로그램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숙소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곤지암리조트와는 다른 워케이션 형태다. 팀 단위로 5일간 숙소에 머물며 동해 바다가 보이는 단독 사무공간에서 근무하는 방식이다.
변현수 LG유플러스 즐거운직장팀 선임은 “인공지능이나 플랫폼 등 신사업 관련 조직이 몰입한 상태에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팀 단위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회사마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적정한 워케이션 기준을 마련해 직원들에게 제시하기도 한다. 네이버는 회사가 지원하는 도쿄 워케이션 프로그램 외에도 신청하는 직원이 조직장의 승인을 거쳐 연 1회 최장 4주간 해외에서 자율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내용의 규정을 공지했다.
그 대신 해외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한국 시간 기준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할 것을 권장했다. 근무 가능 지역은 일본, 호주, 동남아시아 등 한국과 시차가 4시간 이내인 지역으로 제한했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직원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것이다.
도쿄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올해 5월 참여했던 유우성 네이버클라우드 5G엔지니어링팀 매니저는 “사무실을 벗어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기준이나 시스템 등) 사소한 것도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야놀자는 보직을 맡은 조직장 등도 워케이션에 참가할 수 있는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2021년 11월부터 4차례 운영했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관점에서도 워케이션 프로그램 개선 방안을 찾겠다는 취지다. 현재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한 야놀자 임직원은 450여 명이다. 야놀자는 설문조사를 통해 임직원들이 워케이션 공유 사무실이나 숙소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길 원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올해 4월 7일간 제주에서 열린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다녀온 조미선 야놀자 데이터마케팅실장은 “앞으로 워케이션 프로그램이 개인 단위를 넘어 팀이나 프로젝트 단위로 참가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로 운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워케이션(Workcation)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국내외 휴가지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곤지암=지민구 기자
보수적 美금융그룹도 도입… 전세계에 새로운 근무 문화 확산
[위클리 리포트] 엔데믹 시대 진화하는 근무제도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워케이션
씨티그룹 등 2∼4주 원격 근무 허용
FT “가장 떠오르고 있는 근무 형태”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에서도 ‘워케이션’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과 별도로 새로운 근무 문화이자 제도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산업계에서도 워케이션이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영국 유고브가 올해 1월 원격 근무가 가능한 직장인 7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3%는 1년 안에 워케이션에 참가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18∼34세 응답자의 65%가 워케이션 참여 의지를 보였다. 워케이션 장소로는 이탈리아(42%)와 호주(36%), 캐나다(32%) 등을 선호했다.
미국에선 구글, 씨티그룹,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의 기업이 직원들이 2∼4주간 관리자의 승인을 거쳐 어느 지역에서든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미국에서도 근무 시간을 가장 엄격하게 관리하는 대형 금융그룹이 워케이션을 허용한 것을 현지에서도 이례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팬데믹 시기에 나타난 다양한 근무 형태 중 워케이션이 떠오르고 있다”며 “상당수 기업이 워케이션을 팬데믹 이후 경직된 노동 시장에서 직원들에게 무료 혜택처럼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유럽 일부 기업은 조직을 이끌고 있는 임원에게도 워케이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새로운 근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프랑스의 미디어 업체 퍼블리시스는 지난해부터 임직원들이 지사를 둔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1년에 최대 6주간 근무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따라 퍼블리시스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임원인 달리아 하미예도 일주일간 레바논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처리하기로 했다. 레바논에서 2주간 휴가를 먼저 보낸 뒤 워케이션 형태로 현지에서 근무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전자상거래 업체 영국 일렉트로헤즈는 공동 창업자 리처드 비치가 사무실이 있는 런던을 떠나 해안가인 콘월에서 일주일간 서핑을 즐기며 원격으로 근무했다. 비치는 “혁신적인 경험이었다”며 “(워케이션이)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전했다.
사실 워케이션이 처음 활성화한 지역은 일본이다. 일본 관광청과 지방자치단체는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며 다른 지역의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워케이션 활성화 정책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부터 추진했다. 와카야마현은 2017년부터 일본 지자체 중에서도 선제적으로 워케이션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 영자 매체 저팬타임스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5월까지 251개 기업이 와카야마현에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이타현, 후쿠오카현 등도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워케이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는 2023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기준 일본의 워케이션 시장 규모가 1084억 엔(약 9790억 원)까지 성장한 것으로 추산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697억 엔)보다 55.5% 증가한 수치다.
지민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