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의 만종과 감사
『만종』(晩鐘)은 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의 대표작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가을걷이를 끝낸 저녁,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기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부드러운 필치로 묘사되었으며, 원경의 평화로운 분위기로 더욱 유명하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다른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감사’라는 독특한 주제가 있다.
첫째로 고개 숙인 감사이다. 저녁 기도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고개 숙인 모습에서 감사가 무엇인지를 배운다. 감사를 아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죄인 됨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덜되고 못나고 무지하고 허물 많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이 그림처럼 우리에게 얼마나 고개 숙인 감사가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둘째로 말 없는 감사이다. 고개 숙인 채 입도 다문 채 조용한 침묵 속에서 감사가 표현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감사하는 말을 많이 입으로 표현하지만 감사는 말을 많이 하는 것과 비례하지 않는다.
셋째로 함께하는 감사이다. 만종에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말없이 고개 숙인 모습이 있다. 하나님과 이웃이 함께 있는 감사의 모습이 만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감사 모습이다.
넷째로 고난 속에서의 감사이다. 만종이라는 그림의 배경은 가난한 부부의 감사하는 모습이다. 저녁이 되어 하늘이 붉게 물들자 하루 일을 끝낸 부부가 감자를 수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인데도 수확한 감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의 밭이 없어 밭주인이 감자를 다 수확하고 남아 있는 감자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의 견해에 의하면 만종은 원래의 그림에서 수정된 것이라고 한다. 즉 가난한 부부의 앞에 놓인 바구니에는 본래 감자가 아니라 죽은 아기의 시체가 그려졌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그림 속 부부의 모습은 슬픔이 아닌 감사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아이를 잃은 슬픔조차도 그들의 감사의 마음을 빼앗지 못했다. 그 슬픔조차도 가슴에 묻고 두 손 모아 조용히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참 신앙인의 자세를 발견하게 된다.
만종의 하루해가 저물듯 올 한 해가 조용히 저물어간다. 고개 뻣뻣이 들고 알량한 명예와 지식을 자랑하며 살았고, 자기방어와 변명을 위한 입놀림과 자화자찬을 위해 쉴 새 없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이웃과 함께 살지 못하고 경쟁하고 편 가르고 싸우다가 흘려보낸 많은 시간을 회개할 수 있어야 한다. 조용히, 고개 숙인 채, 이웃과 함께, 고난의 한가운데서 감사하고 있는 만종의 풍경을 마음속에 그려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