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퍼니 하더웨이는 1971년 7월 28일, 미국 테니시 주의 멤피스에서 태어남
안타깝지만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었다고함
그의 어머니가 캘리포니아까지 가서 가족을 위해 가수로 활동하며 돈을 보내줌.
앤퍼니 하더웨이는 학교에서 급식요리사 일을 하는 할머님 밑에서 자람
할머님은 그를 끔찍히 사랑해서 그가 아가일때 'pretty'라고 항상 불렀다고함
미국 남부의 특유적인 발음덕분에 그 단어가 사람들에게는 'penny(페니, 1센트)'로 들리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할머님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의미로 '페니'라고 다시 부르기 시작면서
훗날 이 별명은 전세계의 NBA팬들이라면 절대 잊지 못하는 닉네임이 되게됨.
어렸을때 4번이나 원치않게 집을 이사하며 그의 가족은 점점 가난해짐
페니의 동네에선 마약 거래가 오고가고 칼싸움이 일어나며 총소리가 들렸다고함.
그런 환경으로 부터의 보호자는 어렸을때부터 친구이상 가족이상의 의미인 할머님이였음
그가 어디있어야 하는지, 언제 집에 와야되는지 매우 엄격하고 나쁜길에 안빠지도록 이끌어주셨음.
야구, 탁구, 볼링, 테니스, 풋볼등에서 특출난 실력을 보였던 그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함.
첫번째로 좋아하게 된 운동은 풋볼이였다고 하는데 페니가 다치는것을 할머님이 싫어 하여 그만두게됨.
페니는 언제나 또래에 비해서 키가 월등히 컸는데, 만 12세가 되던해 이미 키가 190cm가 넘었음
잘생기고 큰 키, 큰 몸에 한때 할머님은 그의 직업을 모델로 할까 고민을 했었다고함.
그런 페니에게 농구는 어찌보면 당연한 스포츠였고 존경했던 선수는 장신 포인트가드였던 어빈'매직'존슨이였음.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 다녀온 페니는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그를 본 그의 할머니가 말하길
'페니, 무슨일 있었니?' 곧바로 페니가 대답하며 '오늘 학교에서 1:1농구 시합을 했는데 제가 졌어요,
일주일 전만 해도 제가 이겼는데 말이에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걸까요?'
그의 질문에 할머님이 대답하시길 ' 페니, 니가 일주일전에 아니 어제 이겼다고 하더라고 오늘 또 승리하다는 법은 없다,
아마 우리 페니가 일주일동안 놀이터에서 놀고 TV를 시청했던 시간동안 너의 친구를 농구연습을 했을거다,
페니가 더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배를 했을거야, 하지만 페니, 더 이상 낙담하거나 슬퍼하기보다는
니가 왜 패배했는지 니가 패배하기전에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라.' 라고 하셨다고함.
어린나이였지만 이 후 농구에 대해 많은 노력을 하기 시작했음,
집에서 할머니와 있는 시간보다 농구연습을 했던 시간이 많았다고 페니가 기억을 할정도라고함.
페니를 멤피스지역 아마추어 리그로 데려왔던 코치 짐 커는
'농구는 정말 그에게 쉬었다, 그는 키가 큰 동나이대의 아이들과는 전혀 달리 운동신경이 뛰어나 잘달리고,
드리블을 하고, 득점-리바운드 등 어떤것도 해내었다, 우리는 페니를 포지션으로 부르지않았다.
그냥 그를 내보내고 '해봐'라고 말하면 그가 알아서 다했다.'
페니의 지역 아마추어 팀은 그가 16살 때 다른 지역선수들을 물리치고 토너먼트로 미국 내 최고의 팀이되었음.
'페니는 정말 대단했다, 저는 그를 코치한 기억이 별로 없지만 딱 하나는 생각이 난다,
넌 욕심내서 슛을 더 하도록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팀에 있는 전원이 득점하는걸 원했다.
페니는 팀원들을 득점하게 해주는것에 더 흥미를 느꼈다.'
페니는 멤피스에 있는 트레드웰 고교에 진학했다, 월등히 큰키, 우월한 점프력, 빠르고 민첩한 신체
신장대비 농구공을 매우 잘 다룰수 있으며 본인이 맘먹었을땐 득점하나 패싱이 먼저인 그를 막을 고교선수는 많지 않았음.
페니가 농구코트에 들어설때 마다 그의 인기는 높아짐, 동네-도시-주-미국에 그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함.
그러나 고등학생은 고등학생, 일정이상 점수를 얻어야 대학교에 진학하고 농구를 할수있다는 걸 몰랐던 페니는
명성이 높아지자 자만하고 고교 기간 및 마지막 시즌에 책을 놓는데, 이를 걱정한 학교측에서 경고조치로
그를 벤치에 앉힌다, 그래서 마지막 시즌이 끝나기 얼마전이 되서야 다시 농구를 할 수 있었다고함.
졸업학년때 게임평균 36.6득점 10.1리바운드 6.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퍼레이드 매거진에 의해 올해의 고교농구선수로 뽑힘.
페니는 그리 유명한 대학농구팀은 아니지만, 할머니와 떨어져있기 싫어 멤피스대학에 진학하게됨.(후에 멤피스주립)
그러나 대학 1학년때 낙제를 하면서 농구를 할수 없었고, 총기사전에 연루되어 발가락에 총상을 입으면서 지냈음.
하지만 페니는 이를 악물고 공부에 전념하면서 평점을 채워 다시 농구선수로 뛸수 있게되었다고함.
91/92 대학2학년 게임평균 17.4득점 7.0리바운드 5.5어시스트 1.3블락 2.5스틸 43.3%야투성공율 36.3% 3점슛성공율
-그레이트 미드웨스트 컨퍼런스 올해의선수상/신인상 -NCAA토너먼트 8강 견인
-최초의 드림팀이였던 1992년, 대학올스타를 형성하여 출전 19득점 8어시스트를 기록(일화는 많은분들이 아시기에)
92/93 대학 3학년 게임평균 22.8득점 8.5리바운드 6.4어시스트 1.2블락 2.4스틸 47.7%야투성공율 33.2% 3점슛성공율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블락,스틸 상위3위권
-네이스미스 올해의 선수상, 존 우든 어워드 수상
*화려한 플레이에 턴오버 평균 3.5개를 기록했지만*
멤피스의 아들이라 불리며 3학년을 마치고 '더 이상 배울것이 없다'라고 선언 NBA진출.
첫댓글 페니 보고싶다ㅜㅜ
페니때문에... NBA 보게되었는데 ㅠㅠ
진짜... 1번이라는 번호는 없애던가해야지 페니 티맥 로즈......... ㅡ ㅡ
진짜 조던이 페니한테 먹히는줄 알았던 적이 있었습니다.ㅜㅜ
근데.. 96 시리즈에선 ㅠㅠ
참 아쉽네요.... 총만 안맞았어도
아ㅠ storm is over 페니 관련 내용엔 이댓글밖어 올릴 말이없네요 댓글달면서 벽에걸려있는 95-96 올랜도 검은색 스트라이프 얼트져지 1번을 쳐다봅니다
페니의 무릎이 좀만 더 건강했다면... 참 아쉬워요. 본인은 더했겠죠... 페니의 플레이 아우라. 진짜 매력적인.
전성기 조던을 그 누구보다 긴장 시켰던 선수.
하.. 진짜 '부상이 뭔지...' 에 가장 해당하는 선수가 아닐까 싶어요 진짜 미친 재능이었는데...
삭제된 댓글 입니다.
페니의 덩크는 간결하면서 파워가있죠 간지의결정체ㅜㅜ
커리어별로 많은 사진이 잇는데 폼포짓을 신은 사진은 없네요
오늘 피닉스버전이 발매된다던데...
사랑합니다 페니 나의 영원한 넘버원 플레이어
정말 간지 하나는......역대 엔비에이 최고라 불리울만 하죠.....
길쭉길쭉하고 잘생기고 간지도 장난아니었죠.. 센세이션 그 자체였던 그리운 선수..
아...ㅜㅜ 아쉬워요...플레이자체도 사람을 빨아들이지만...복귀한 조던을 격침했다...라는 그 상징성때문에 더 인기가 대단했죠...그 당시 페니는 조던이던 피펜이던 머리를 흔들정도 였으니까요...
어엉어엉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중학생시절 휴스턴과 파이널때 공을 가지고 하프코트를 넘어오던 그 모습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네요...
나두 저렇게 해야지하면서 연습하고 흉내내고..ㅠㅠ
그래서 대학동아리 내내 백넘버가 1번이었습니다..ㅠㅠㅠㅠㅠ
페니..... ㅜㅜ
조던보다 페니를 통해 느바에 입문했었는데...그에게 감사합니다 농구라는 종목의 매력을 느끼게해줘서
아 페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와...가슴 먹먹해지는 리그 순위는 또 처음이네요.ㅜ
포스트업할때 보여주던 리드미컬한 풋워크를 잊을수없음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