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의 수의
주영혜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입는 옷, 수의. 불에 태워지거나 땅속에서 썩어질 것을 왜 사람들은 가장 좋은 것으로 해드리려 할까? 그건 이생에서 못 해준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며 사랑의 마음일게다. 우리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덧없이 빈손으로 가듯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오랜 전통처럼 여겨왔던 삼베 수의는 일재의 잔재이다. 가난한 서민들만이 삼베 수의를 해드렸고 양반들이나 좀 살만한 사람들은 가장 값비싼 비단을 사용해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지인이 상을 당해 장례식장에 갔다. 항상 입구에 진열돼있던 수의인데 오늘따라 눈길이 자꾸 갔다. 그것은 건넛방 옷장 속의 수의를 보며 알수 없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느꼈던 유년 시절로 나를 돌아가게 했다.
부모님이 맏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언니들과 떨어져 어머니랑 조부모님 댁에서 살았다. 그곳은 마당을 중심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로 나뉘어 있었는데, 안채는 두 줄로 여러 칸의 작은 방들로 나뉘어 있었다. 그 중 세 번째 칸 뒤쪽 방 옷장에 이상한 두 개의 베이지색 상자가 매달려 있었는데, 누런 무명실을 굵게 엮어서 십자 모양으로 묶여 있었던것것같다. 예닐곱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왠지 알수 없는 두려운 존재로 느껴졌다. 우연히 그 물건의 정체를 알고 난 후에는 더욱 음습하고 부정적인 존재로 내게 와닿았다. 그 당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머슴 두 분이 안방에서 민화투를 치며 놀다 가곤 했었다. 그중 눈이 찢어진 듯 올라가고 장난끼 많은 아재는 재미난 이야기로 남동생과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중 빨간 휴지 줄까 하얀 휴지 줄까 하는 달걀귀신 이야기, 밤새도록 씨름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몽당빗자루였다는 도깨비 이야기, 백 년 묵은 여우 이야기는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면서도 우리를 그것에 빨려 들어가게 했다. 이렇게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듣는 날에는 엄마나 남동생 손을 꼭 잡고서야 수의가 있는 그 방에 갈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자식들이 미리 수의를 만들어 놓으면 장수하신다고 해서 조부모님 회갑 기념으로 부모님께서 마련해 드렸다고 한다. 나의 유년 시절 삶의 주역이셨던 조부모님 세대는 수많은 추억을 뒤로한 채 무대 뒤로 퇴장하신 지 오래다. 안타깝게 우리 부모님들은 노년을 맞이해보지 못하시고 내 곁을 일찍 떠나셨지만, 부모님 세대도 동지섣달 두메산골에 저녁 해가 넘어가듯 한 세대가 시계초침처럼 빠르게 달음박질쳐 발 뒤꿈치만 보인다. 애타게 손 내밀어도 붙잡을 수도 없다. '다음은 당연히 우리 세대가 되겠지' 하는 생각에 허무함이 고개를 내민다.
어느덧 내 나이도 조부모님의 수의를 만드셨던 나이에 접어들었다. 어릴 적 장롱에 매달렸던 상자에 대한 두려움처럼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진열장의 수의가 낯설게 느껴지고 회색빛으로 다가오는건 왜일까? 더없이 아름다운 낙원일지라도 가 보지 않은 다른 세계로 간다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까닭일게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기약 없는 이별은 황량하고 스산한 사막 한복판에 홀로 내던져지는 것 같은 짙은 외로움이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수천 수백 미터 흑암의 땅끝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은 심정일게다. 수의는 죽음과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수의는 이번 생이 끝이 아님을 믿는 사람들 마음의 표현이다. 사후의 세계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빛을 담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입고가는 첫 예복이기도 하다.
신께서는 사람을 빚으시고 세상 속에 내어놓으셨다. 나란 존재는 위대한 자연의 섭리 속에 흘러가는 강물의 물 분자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또 우리는 위대한 신의 영역 안에서 순응할 수 밖에 없고, 정작 자신의 시간조차 알지 못하는 숙명을 지닌 유한한 존재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온 맘을 다해 수의를 준비하는 기도가 하늘에 닿길 바라본다. 그래서 신께서는 현생의 생로병사로 얽매인 고단한 삶보다, 가보지 않은 다음 세상에는 슬픔과 고통이 존재하지않는 파라다이스를 예비해 놓으셨길 염원해본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유월의 대자연 속에서, 지금 이순간 내가 존재하고 사랑하고 또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