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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41장 1절 ~ 9절
그때 일곱째 달에 왕의 씨중에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왕의 고관들, 곧 그와 함께한 열 사람과 미스파로 아히캄의 아들 그달랴에게 가서, 그들이 미스파에서 함께 음식을 먹었는데, 1)
Now it came to pass in the seventh month, that Ishmael the son of Nethaniah the son of Elishama, of the seed royal, and the princes of the king, even ten men with him, came unto Gedaliah the son of Ahikam to Mizpah; and there they did eat bread together in Mizpah. 1)
역시 이스마엘은 왕가의 자손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달랴는 요하난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를 감쌌고, 이스마엘이 왕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자리에 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조선의 역사에서 수양대군이 형제들을 죽여 왕권을 강화했던 사례와 같습니다.
인조나 후에 세조가 되었던 수양대군이나 성공한 쿠데타였지만 개인의 삶을 비참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모든 왕들 즉 정조에 이르기까지 암살에 대한 위협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조선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정통성의 문제가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을 죽인 세조가 잔인해 보이지만 왕으로 될 수 있는 형제는 왕권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정조가 밤에 자객을 두려워하여 잠을 잘 수 없어 책을 많이 읽었다는 기록은 조선왕실의 비극적인 탄생에서 비롯된 댓가이기도 합니다.
느나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빌론왕이 그 땅을 다스리기 위해 총독으로 세운, 사판의 손자요 아히캄의 아들인 그달랴를 칼로 쳐서 그를 죽였더라. 2)
Then arose Ishmael the son of Nethaniah, and the ten men that were with him, and smote Gedaliah the son of Ahikam the son of Shaphan with the sword, and slew him, whom the king of Babylon had made governor over the land. 2)
요하난의 우려대로 이스마엘은 그달랴를 죽이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또 미스파에서 그달랴와 함께한 모든 유대인들과 거기에서 만난 칼데아인들과 전사들을 죽였더라. 3)
Ishmael also slew all the Jews that were with him, even with Gedaliah, at Mizpah, and the Chaldeans that were found there, and the men of war. 3)
그가 그달랴를 죽인 지 이틀이 지났어도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4)
And it came to pass the second day after he had slain Gedaliah, and no man knew it 4)
이 당시의 유대는 마지 병자호란을 겪게된 조선과 닮았다고 보여집니다. 청의 홍타이지는 조선 북방의 성들을 우회하여 한양으로 그대로 진격하였습니다. 왕은 남한산성으로 도망가고 거기서 공성전을 하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북방에 있었던 조선의 군사들은 홍타이지와 전투를 벌이지 못했습니다. 후에 조선북방에 있는 군사를 한양으로 불러모았지만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인조는 강화도의 세자가 잡혔다는 소식에 그대로 항복하고 맙니다.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비겁한 왕으로 선조에 못지않게 비겁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혼군 즉 어리석은 왕이라고 불리울만했습니다. 세자가 잡혔다고 항복하는 결과는 세자가 또 인질로 끌려가고 백성들도 약탈물로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서는 청에 끌려간 소현세자가 자신의 왕위에 위협이 된다고 느끼고는 또 버리기까지 합니다. 유전적으로 정서적인 문제가 있었던 조선왕실의 부인할 수 없는 치욕입니다.
이에 비하여 그달랴는 조심성은 없지만 비겁한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침 팔십 명이나 되는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수염을 밀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손에는 제물들과 향을 가지고 세켐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와서 주의 전에 가져오려 하더라. 5)
That there came certain from Shechem, from Shiloh, and from Samaria, even fourscore men, having their beards shaven, and their cloths rent, and having cut themselves, with offerings and incense in their hand, to bring them to the house of the LORD. 5)
이 사람들은 바빌론에게 멸망한 남유다를 애도하며 주께 회개하러 모이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러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맞이하려 미스파에서 나와 울며 길을 가다가 그들을 만나자 그들에게 말하기를 "아히캄의 아들 그달랴에게 가자." 하더라. 6)
And Ishmael the son of Nethaniah went forth from Mizpah to meet them, weeping all along as he went: and it came to pass, as he met them, he said unto them, Come to Gedaliah the son of Ahikam. 6)
이스마엘이 사람들에게 태연스럽게 거짓말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사탄에 속한 것으로 여겨도 무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입니다. 그분이 거짓을 사용할 이유가 없으신 분이며, 그런 분에 속한 자들은 당장을 모면하기 위하여 혹은 기만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거짓은 곧 아무 권세가 없고 속여서 기만하는 것의 능력을 가진 사탄의 속성입니다. 교회나 집단이나 개인을 분별할때 아주 유용한 방법중의 하나로 거짓말을 하는 지와 거짓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 지를 확인해 보면 됩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나 집단치고 제대로 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거짓말을 합리화하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쪽이 아니라 사탄쪽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여기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삶이 당장의 손해로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성읍 한가운데 오니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로 던졌으니 그와 그와 함께한 자들이더라. 7)
And it was so, when they came into the midst of the city, that Ishmael the son of Nethaniah slew them, and cast them into the midst of the pit, he, and the men that were with him. 7)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열 사람이 발견되었는데 이스마엘에게 말하기를 "우리를 죽이지 말라. 우리가 들에 보물을 가지고 있으니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이라." 하니 그가 그만두고 그들의 형제 가운데서 그들을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8)
But ten men were found among them that said unto Ishmael, Slay us not: for we have treasures in the field, of wheat, and of barley, and of oil, and of honey. So he forbare, and slew them not among their brethren. 8)
이스마엘은 바빌론에 항복한 그달랴에 대한 분노로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욕심으로 죽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죽이면서도 이득을 위하서는 동시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재물을 위하여 사람을 죽이지 않는 모습은 그가 재물을 위하여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그달랴로 인하여 죽였던 사람들의 모든 시체들을 던져 넣은 구덩이는, 아사왕이 이스라엘의 바아사왕을 두려워하여 팠던 것인데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죽임당한 사람들로 그 구덩이를 채웠더라. 9)
Now the pit wherein Ishmael had cast all the dead bodies of the men, whom he had slain because of Gedaliah, was it which Asa the king had made for fear of Baasha king of Israel: and Ishmael the son of Nethaniah filled it with them that were slain. 9)
바아사왕과 아사왕의 이름으로 무슨 연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찾아보았는데 Baasa와 Asa는 전혀 연관관계가 없었습니다.
Bar 바는 지금의 주니어라는 뜻으로 쓰인것으로 보이지만 Ba는 아닙니다.
바예수Bar-Jesus
‘예수아의 아들’이란 뜻. 구브로(키프러스) 섬에 있는 도시 바보에서 활동하던 유대인 출신 마술사(거짓 선지자). 바나바와 바울의 1차 선교여행 때 복음을 훼방하다가 맹인이 되었다(행 13:6, 8, 11). 일명 ‘엘루마’(행 13:8).
바아사[ Baasha ]
‘바알은 태양이다’, ‘바알이 듣고 있다’는 뜻. 잇사갈 지파 아히야의 아들(왕상 15:27). 북이스라엘 초대왕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 왕의 부하 장군. 나답이 블레셋의 깁브돈을 포위 공략할 때 진중에서 반란을 일으켜 나답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여 수도 디르사에서 24년 간 통치했다. 남유다 3대 왕 아사의 경건한 신앙에 고무된 북이스라엘 백성이 남쪽으로 이주하자(대하 15:9) 남쪽 경계 라마에 성곽을 건축하여 백성의 남하를 저지하는(대하 16:1-6) 한편 아사 왕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아람의 원조를 받은 아사 왕에게 라마 성마저 함락당했다. 지속적으로 우상을 숭배하였으며 사후에 아들 엘라가 왕위를 계승했다(왕상 16:2-12).
[네이버 지식백과] 바아사 [Baasha]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 선왕: 부친 아비야 <-- 아사 --> 후왕: 아들 여호사밧 ]
아사 왕 십 년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종교 개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평강을 주셔서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였습니다. 구스 사람 세라가 백만 군인을 데리고 쳐들어왔지만 약한 자를 도울 수 있는 하나님께 의존하니 승리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해 말하기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 것이고,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를 만나겠고,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이에 아사가 2차 종교개혁을 하였고 산당을 제하지는 않았지만 아세라 목상을 지닌 어머니를 태후에서 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아사왕 36년에 이스라엘왕 바아사가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교차로에 라마를 건축하자 아람 왕과 동맹을 맺었고 아람왕이 북이스라엘을 침공했기에 라마의 건축이 중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선견자 하나니를 통해 아사 왕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의지한 것을 책망했지만 회개하지 않고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말년에 발병이 났을 때도 하나님이 아닌 의원을 의지했다는 기록을 통해 그의 말년이 불신앙의 길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조에서 보이듯이 아사왕과 바아사왕은 정체성도 달랐습니다. 남유다의 주변의 국가들은 모두 북 이스라엘이나 남유다와 동일하게 그 정체성이 섞여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남유다의 멸망에 회개하러 나오고, 어떤 사람들은그들을 죽여 이익을 취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며, 이것을 비정상으로 여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해서 이런 현상은 유지 될 것이며, 그렇게 섞여 있다가 마지막을 맞이하여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정상화 그리고 한국사회가 백신이나 CBDC에 정신을 차리고 대응하는 것은 우리의 권세 영역밖입니다.
CBDC 논의 속도...한은, 시중은행과 하반기 사용성 테스트 - 전자신문 (etnews.com)
코로나 지원금으로 CBDC 테스트를 한 것에 이어서 이제는 본격적인 CBDC테스트를 하겠다고 한국은행이 선언을 하였습니다. CBDC는 짐승의 표로 가는 과정일뿐만아니라 전체주의 통제사회로 가는 수단이 됩니다. 이것의 실체는 금융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보를 권력자가 수집하여 관리하겠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반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할을 충돌하는데 있지 승리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전에 글에 쓴 것처럼 우리 주변의 상황은 변하지 않는 상수입니다.
오직 나의 마음과 이웃의 마음이 각자의 구원에 변수일 뿐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짐승의 표가 나오는 것을 우리가 막을수는 없습니다. 예정된 상수이고, 다만 그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변수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순응할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도록 충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최대의 승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있기 전에, 내 이름으로 인하여 그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리니, 회당과 감옥에 넘겨주며 왕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고 가리라.
그때가 너희에게는 증거하는 기회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미리 무슨 말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마음에 작정하라.
누가복음 21장 12절 13절 14절
변수인 당신의 마음에 무슨 말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작정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회가 될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최선입니다. 이것이 소극적인 모습처럼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하는 작정입니다.
너희는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에 의해서 배반당할 것이며, 그들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죽이리라.
And ye shall be betrayed both by parents, and brethen, and kinsfolks, and friends; and some of you shall they cause to be put to death.
누가복음 21장 16절
몇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도 충분히 죽음의 공포를 모든 사람에게 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과 10개를 당신에게 준비하라고 하면 당신이 사과 11개를 준비해도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과 10개를 준비하라고 했다면 당신은 절대로 사과 11개를 준비하면 안되고 반드시 10개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미래를 알지 못하는 무능이 있기 때문에 11개가 필요할 수도 있을지 알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과 10개를 준비하라고 하심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말씀하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는 사과 1개는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은 있는 그대로 실행하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사탄의 숭배자들의 행위에 저항하여야 합니다. 저항은 사탄숭배자들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사탄숭배자들의 마음도 사탄숭배자들의 구원에는 변수가 됩니다. 우리는 상수가 아닌 변수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포위되어 있는 것을 보거든 그때는 그 패망이 가까운 줄 알라.
그때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피하고, 도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시골로 가되, 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도성으로 오지 못하게 하라.
누가복음 21장 20절 21절
하마스 이어 레바논도 이스라엘 공격…5차 ‘중동 전쟁’ 발발하나 (daum.net)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공격은 예루살렘안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 대한 보호를 위한 명분을 내걸었습니다. 그래서 레바논처럼 이슬람 국가들이 함께 나서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일이 앞으로 2억의 이슬람 국가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모습을 보게 할지는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그런 모습이 보인다면 말씀그대로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피해야 하고, 그외의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야 합니다.
도시를 떠나야 하는 이유는 15분도시로 도시를 감옥으로 조성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전쟁은 그 과정중에 하나이지 예루살렘이 포위될 정도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보안군이 정기적으로 알 아크사 모스크를 모독하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본격적인 알 아크사 홍수 작전을 개시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마스는 예루살렘 내의 모스크 보호를 명분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조금 의구심이 듭니다.
이스라엘은 법무부의 권한을 축소하여 독재와 같은 체제로 진행되다가 반발에 부딪힌 상황입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 인하여 그 반발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더욱 극단적인 유대주의로 나가게 될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전쟁으로는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보다는 예루살렘의 복원 즉 제 3성전을 세우는 이스라엘의 전체주의 체제를 갖추는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상자 1000명 넘은 이스라엘, 하마스에 ‘철검’ 보복작전 개시 (naver.com)
예루살렘에 세워질 제 3성전은 그 안의 모스크를 철거하고 세워질 듯합니다. 그런 모습을 아랍권이 그대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그 때에는 예루살렘이 포위될 것이며, 우리는 도시를 떠나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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