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산서부동
○ 칠산지역
- 가락국 10대 구형왕 12년(서기 532)에 신라에 합병 금관군으로 호칭되었으며,
삼국통일 후 문무왕 20년 (서기 680)에는 김해 소경으로 개칭되어 이때부터
김해의 명칭이 최초로 생겼다고 전해진다..
- 그 후 시 승격시에 칠산동으로 명명 되었고, 칠산이라는 이름은 산봉우리가
일곱게 솟아 있다고 해서 칠봉산이라 부른 것이 칠산이 되었으며,
그 봉우리 마다 산 아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 또 화목(화목 2통)들 앞에는 일곱 개의 둔대(동뫼)를 만들어 갖가지 나무를
심어 칠산이라는 명산을 과시하기도 하였으나,
김해부 읍성 서쪽의 부자촌이었으며,
도남쪽의 남포(지금 화목3,4통)는 금릉 8경의 하나인 "남포어장"으로 유명한
어장이었다가 갈대밭 지대로 변하여 해방후 차츰 개간되어 오늘날의 평야를
이룩하였다.
- 조만강(옛이름 대지강)으로 장유면과 경계를 이루며 정천진, 마차진, 흔지진
등의 나루터는 장유면을 거쳐 녹산면과 연결하는 길목이며 특히 마차진을
건너면 신문진(장유면 용산), 적항역(장유면 관동)을 지나 옹천현으로 연결되는
역로였다.
○ 전하동
전하는 이 일대가 옛날에는 전체가 바다였으며, 예전에는 갈대가 무성했다
하며, 한때는 큰배가 드나들었다고 전한다.
함박산은 흥동 1구로 조선시대때 전국이 장마철에 접어들어 온 집과 산은 물에
잠겼으나 이 산 봉우리만은 함박꽃 크기 만큼 잠기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