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
아버지 겨울새 -이민영
추워하는 이들의 집에는 겨울만 있다, 그래서 겨울이 오면
새가 되어 재잘거린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새들 속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새도 있다.
웅크린 목에 빗살을 새우듯 초가지붕을 날다가
헐려지고 없어진 옛집을 찾는 듯
날개쭉지를 파르르 떤다,
써래질로 여윈 여름을 심던 논배미,
학교 보낸다고 두 마지기, 자식 빚 갚는다고 두 마지기,
남의 논이 되고 신작로 된 길가 논수밭에 앉아있다.
깃털 하얀 아버지가
종일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 아버지새 앞에
얼굴 드러내지 못한
부끄러운 아들 새가
목놓아 외친다,
겨울아~ 춥지 말아다오.
겨울아~ 춥지 말아다오.
흰뼈와 어머니의 춤
이민영
겨울도 살아있다. 서릿발에는 기도하는 숨의 액화가
방울로 떨어져서 밭고랑 속 보릿닢 숨쉬기를 돕는다
늙은 눈빛이 쏘아 올린 산마루에는 채익지못한 홍시가
배고픈 서산을 유혹한다
서서 바라보는 것들은 넘고자 할 고갯마루에서는
헐떡거린 발걸음의 대안이다
산신은 돌각다미 사이에 묵직하게 잠 자고, 그의 예언은 시방
통치마가 디딤질한 거리에 게눈빛을 내린다
짐작으로도 써볼 수 없는 여린 생각이 전설 속의 용을 움직였다
나무의 이파리마다 다가가 책을 읽어내는 서산의 노력으로
가을의 산이 붉어진다, 허리에 갈잎이 핀다.
이끼낀 할배의 웃음이 너울너울
옹골저수지 못 가상으로 모인다
'아 참, 나의 이 참에는'
갈잎이 흔들리면 엄니의 이름을 썼다
비와 바람처럼 아직도 머물고, 떠나지 않는 것은 없다.
뒷송낭치마다 웃대가 민다
할배는 송장이 되었고
허릴 구부리지 못한 할미꽃이 뭣둥에서 고개를 휜다
엄니에게 묻는다, 어릴적 지게막대기 들고
쉼쉬이 하던 산아래 밭두덩의 전설-당골채는 누구 것이냐고
그것은 우리 것도 남의 것도 아닌 신령의 제사장이라한다
휘이 휘이 산신의 춤사래 질에, 길옹에 놀던 소딱새가 산판으로 날아가고
대한(大寒)의 섣달이 진하게 눕는다, 달력 낱장을 갈려고 치면
가슴 자락에 올해를 던진다
길가마다 하얀 뼛골이 춤춘다,
반응의 숲에서
이민영
1. 말의 둥지를 사랑하였던 님이여 기억하리, 청명할 날의 발이 걸음 닫는 곳마다, 아버지의 땅이 된 아버지의 이름을, 작은 곳에도 기억의 소자가 닿는 것이면, 번개의 의식아래 역사는 빛, 역사앞으로 생성될 이성(理性)의 얼굴을 세어 보리, 저물도록 거닐고도 이르지 못한다면, 달빛 어스름한 세월의 저녁도 맞으리, 사랑하는 이여,
2. 수풀마다 山이 山을 안고, 가지마다 새가 나무를 안고 있다, 겨울 차가웠던 물 울음이 모여들고, 진리 앞에 겸손해진 아들의 어머니-봄이 모여들고, 山이 이루어 낸 빛깔마다 계곡이 울면, 동산으로 날아간 새의 노래가 세상의 들이 될 때, 아픈 겨울 하나가 봄의 귓전에서 맴을 돈다,
3ㆍ봄인데도 여름이듯 옷을 벗고, 여인이 된 입술과 입술의 포옹은 탐욕의 절망이 주는 허기진 조반, 목이 쉰 가지들은, 시잇소리로 바람과 어울려야 하고, 적셔내지못한 비의 노래가 들의 마당을 채운다,
4. 홀로 애태우는 아버지 말씀이, 길손으로 머물어 맨발로 걷던 오솔길에서 그의 발자욱을 따라, 말씀의 사연을 암각할 때, 두고온 삶은 밭고랑 쑥대의 기억으로도 생경의 시초가 된다, 혀는 핥고 얼굴은 부비며, 빛은 빛을 두고 사라진다, 어여쁜 흐느낌으로 들녘에 새겨진다. 아는가, 이파리는 꽃을 피우고 뿌리는 엉키면서 스스로 이루었었다고, 숲쟁이의 길을 거니는-땅의 목소리가 된 이정표 앞, 갈바람을 일어서 내려 쓴 일기장은, 아버지 숨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는 것을, 혼음한 잡목이 가지마다 뻗어가는 이상을 안아, 스스로 부대끼며 더워질 때, 채워놓은 땀으로 산야(山野)의 이별을 설득하는 것, 잡초같은 삶인 통속에게, 통속으로부터 떠난 것을 후회하였던, 한때의 풍경이 되돌아와 희망을 깨우는 것, 피사체의 인생이 복사되어, 미래가 된 아부지의 아부지와 그 엄니의 엄니가 준 진리-그 진리의 방울을, 울리는 것은, 눈물의 어둠을 이겨 온 삶의 안개인 것, 사랑하는 이에게 숲 속의 아침은, 살아가면서 깨달아가는 뿌리의 이야기로 남겨진다,
(후기,
人生은 선험(先驗)의 과정에서 오는 이음의 미학(美學)이다 사랑하는 과정이다. 나무든 숲이든 안개든 세월이든 별이든 마찬가지다, 특별히 오늘만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그려 가련다, 언덕에 오르기 위해 두 분은 두 분과 함께 손잡고 오른다, 데이트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정한 일상의 오후인 것 같기도 하다, 그 숨 고르기에서 조차 반응하려는 것이, 세상이란 숲이고, 세상의 숲에서 내 가치의 귀함을 다시한번 찾아 보려는, 내 뿌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님은 이십년 전에 돌아 가셨다, 노모만 모시고 산다, 이제, 죽음을 약속하며, 생(生)의 늦은 황혼을 거닐고 있는 나에게, 두 분 다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마음에 살아 계신다,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 그 엄니의 엄니로, 그래서, 때로는 살고 죽는다는 것에,초연하려한다. 비워내는 슬픔의 수양이다. 선험(先驗)의 훈(訓)으로 살다 먼저의 곳으로 가는 것-당연하다, 누구에게나 해당된 이야기일 것이다. 살아가는 이에게 가정은 핵(核)이요 사회성원(社會成員)의 기본이라는 것,
이제, 어린 아버지의 아버지인, 어른인 어머니의 어머니인 우리, 한번쯤 생동하는 인생의 숲에서 진정한 뿌리의 이야기에 잠기려고한다. 이민영)
어떤 의문문, 여름의 비상 공초(空超)에 대하여
이민영
비의 분무가 알아낸 작은 떨림을
시간의 액화가 침묵의 간극에 숨어있을때
찰나의 시선이 보여준 추억이 봄이었을 때,
울고싶은 우수와
이별하여 고독해진 여름이
만나서 서로 주고받던 말
새들은 알아 냈을까,
감춰진 본능과 우울 사이에
병든 발자욱은
숨겨야했던 오래된 비상의 꿈이던 것을
지상에서는 날지 못한 겸양이
지성의 숲속에서 발가벗겨지고 헤맨다는 것을
눈에는 보이되 보이지 않는,
어느 밝음이 어느 어둠을 조망하는 것처럼
그 사연이 여름이 되면 새가 되었을,
비 오기 전의 우울의 모습인 것을
청명하고자하는 저 새의 하늘은 알고
있었을까,
짐짓 날아가버린 도시의 고요한 정적을 위하여
짐짓 흩어져버린 도시와 도시의 인연을 위하여
서로 어깨동무짓인 연무의
그의 표정 하나에서 흔들려 보이려는,
지금 슬픈 것들에 대하여
비상하노니,
그렇게 비상하노니,
그대는 충동처럼 다가온
여름날 천둥처럼 그 외침을 알고
있었을까,
밤에게
이민영
어둠이 밝지못한 것은 아픔만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루가 모여 밤이 될무렵이면 토닥거려야할 작은
이야기까지 잠들지 못하고 뛰쳐 나온다
혼자란 그렇게 아까워하며 보내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밤에 기댄 내가 되었다
칠흑 네모상자 안 어두움을 조망하는 별빛,
나무 꼭대기, 소망의 침엽이 가르키는 하늘에는
구름은 없고 자정은 알람처럼 표시된 한 자리에 머무는데
어두워질때 밤은 빛난다, 반짝이면서 겸허해진
잃어가는 상실이여
밤이 밝지않는 것은
어두음을 위한 인종의 빈곤을 대신 울어주는
어머니의 옷고름 같은 것이 아닌가
국어책은 밤에만 읽는다.
냉혹의 서러움을
홀로 익혀가는 밤의 응시여,
국어책은 밤에만 읽혀진다.
포옹
이민영
그대가 무척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때에 그대는 새가 되었다
그대가 무척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에 그대는 달이 되었다,
그대가 그리워질때 별이 되었고
그대를 사랑할 때는 하늘에 있었다
겨울 하늘이 되었다
금방 울음같은 얼굴로 회색빛 하늘이 되었다,
기도가 하늘에 닿아
함박눈으로 오시는 날
부서 지도록
그대를 부르며
그대를 껴 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