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수학여행가는 길 - 일본 / 대마도 / 신화가 짙게 배인 신비의 숲 지나 그 秘景 끝, 역사의 아픔을 만나다
영원한 인간사랑 ・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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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대마도 / [박경일기자의 여행] 신화가 짙게 배인 신비의 숲 지나 그 秘景 끝, 역사의 아픔을 만나다
문화일보 게재 일자 : 2013년 06월 05일(水)
▲ 일본 대마도 중부 도요타마의 ‘신화의 마을’ 캠핑장에서 만난 낙조. 하늘의 노을빛보다 거울처럼 잔잔한 내만의 바다에 비친 색감이 더 황홀했다. 호젓한 캠핑장에다 텐트를 치고 낙조 무렵 캠핑의자를 바다 쪽으로 놓고 앉으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과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다. 해가 다 지고난 뒤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북두칠성이 선명했다.
▲ 동틀 무렵 대마도에서 첫번째 경관명소로 꼽히는 에보시다케 전망대에 올라 굽어본 아소만의 풍경. 리아스식 해안에 떠있는 섬들이 화선지 위에 먹으로 찍은 듯 농담이 느껴진다. ‘그림 같다’는 말은 이런 정도의 풍경에다 붙여야 아깝지 않다.
평화·공존 꿈꾸는 경계의 땅 ‘대마도’
‘멀고도 가까운’. 한·일 관계를 일컬을 때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일본의 어떤 다른 지역보다 대마도(일본명 쓰시마)에 더 맞춤한 듯합니다.
거리로 본다면 대마도는 정작 일본보다 부산에서 훨씬 더 가깝습니다. 대마도에서 일본 규슈(九州)의 하카다(博多)항까지는 138㎞. 하지만 부산에서는 49.5㎞에 불과합니다. 마라톤 코스보다 좀 긴 정도니 부산 해운대에서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가 보인다는 건 절대 거짓말이 아닙니다.
대마도는 예부터 한국과 일본을 가르는 아슬아슬한 ‘경계의 땅’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침략과 정벌을 거듭하는 곳이었고, 정반대로 교류와 친선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는 총칼을 겨누며 서로 멀어졌고, 어떤 때는 조공과 화답으로 서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때마다 대마도는 양국의 경계에서 부침을 거듭했습니다.
화해의 시기에 대마도는 사람과 물자를 이어주며 번성했지만, 갈등의 시대에는 침략과 약탈로 고단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양국 간의 평화야말로 대마도 사람들의 안정된 삶의 조건이었던 것이지요.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다 대마도에 유배됐던 면암 최익현을 기리는 비석을 대마도 사람들이 돈을 걷어 세워준 것도 이런 ‘공존’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