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값
오래 사용한 서럽장에
한켠마다 쌓아둔것들
오늘의 이야기 한편
오늘의 삶의 파편들
쌓여서 낡아가는
귀한 손떼 묻은 인연들
낡아가는 정감이
정이 되어 남는데
세월값처럼
세월값
오래된 서랍장을 열면, 나무에서 스며 나오는 은은한 냄새와 함께 시간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한 칸, 한 칸마다 쌓여 있는 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잊힌 줄 알았던 감정들,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날의 공기까지 함께 눌러 담겨 있다.
어떤 칸에는 낡은 편지가 있다. 종이는 누렇게 변했고, 글씨는 흐릿해졌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서툴렀고, 그래서 더 솔직했다. 또 다른 칸에는 오래된 사진이 있다. 빛이 바랜 얼굴들 속에는 웃음이 남아 있고, 그 웃음은 지금의 나를 조용히 위로한다.
서랍장 한켠에 쌓인 것들은 오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루를 살며 흘려보낸 작은 감정들, 말하지 못한 생각들, 잠시 스쳤다가 사라진 풍경들. 우리는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치지만, 결국 그것들이 쌓여 ‘나’라는 시간을 만든다.
삶은 커다란 사건보다 이렇게 작고 사소한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조각들은 때로는 반짝이고,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아프게 남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은 서서히 닳고 부드러워진다. 날카로웠던 기억은 무뎌지고, 아팠던 감정은 따뜻한 정으로 바뀐다.
낡아간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남는 일이다. 오래된 것들에는 손때가 묻어 있다. 그 손때는 누군가의 시간이고, 마음이고, 살아온 흔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것에서 오히려 더 깊은 정감을 느낀다.
결국 세월값이라는 것은, 시간을 견디며 남은 것들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반짝이는 새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래됨에서만 배어 나오는 온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무게이자, 삶이 우리에게 남겨준 조용한 선물이다.
오늘도 우리는 또 하나의 조각을 서랍에 넣는다. 언젠가 그것이 낡아갈 때, 그 안에서 따뜻한 정이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