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도 없고 염치도 없는 이상한 봉사 현장
아나운서들은 여름이 오면 주의사항을 전달받습니다. 이 주의사항은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에게 더 상세히 전달되고 신입 아나운서들에겐 따로 시간을 정해서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주의사항 중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도 있는데, ‘홍수가 나서 피해상황을 전달할 때 절대로 웃으면 안 되고 심지어 미소도 짓지 말 것’, ‘재해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시에는 의상 선택에 신중을 기할 것, 특히, 빨강이나 노란색 같은 원색의 옷은 입지 말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재난방송 표준 매뉴얼을 보면, 재난방송 시 준수사항에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다’, ‘피해자 또는 그 가족에 대하여 인터뷰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실 위 내용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굳이 지키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지침을 만들고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이유는 첫째는 누군가의 재난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소재’로 삼는 것에 대해 경계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화면에 잠깐 비치는 모습으로 인해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질타를 받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이렇게 당연한 것들도 매일 하는 일의 연속이라는 안이한 자세로 방송을 하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 엄청난 기습폭우로 서울이 물바다가 됐을 때, 뉴스를 보다가 한 기상 캐스터의 너무 밝은 톤의 목소리와 제스처를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기상 캐스터는 ‘방송은 밝고 경쾌하게’하는 거라는 교육만 받은 듯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집과 차가 물에 잠기고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날씨를 전달하면서 걱정하는 기색이 있어야 하는데 늘 하던 대로 날씨를 전달하니 그렇게 된 듯합니다.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사람됨은 경험과 무관한 거겠지요.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재난 방송을 할 때 이렇게 숨소리 하나도 신경을 쓰는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좀 다른가 봅니다.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 경기도 동두천시 연천군이 지역구인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수해복구 현장에서 한 말입니다. 물론 수해복구 현장지원을 나와서 열심히 일하는 의원들도 있지만 거의 항상 이런 구설수가 생기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자기 집이 물에 잠겨본 적이 없으니까 저러는 걸 겁니다.
둘째로 사진이 목적이라서 저런 말이 나온 겁니다.
셋째, 인간이 덜돼서 저런 말을 하는 겁니다. 영상을 보니 자기들끼리 나즈막하게 한 대화도 아니고 카메라를 보면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옆에 여성 분이 팔목을 때리며 타박을 주는 모습이었는데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이 “수재민들의 참담한 심정을 놓치지 마시고 장난치거나 또 농담하거나 심지어 사진 찍고 하는 이런 일들도 안 해주시면 좋겠고..”라고 봉사활동 시작하기 전에 주의를 주었는데 왜 그런 말은 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이분들 수해현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오디오만 켜놓고 들으면 봉사활동 온 건지 소풍을 나온 건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친목 도모는 다른 데서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도대체 눈치라는 것을 보며 사는 사람들이 아닌 듯 합니다.
그리고 더 이해가 안되는 건 ‘굳이 왜 갔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가더라도 왼손이 하는 일은 오른손이 모르게 조용히 다녀올 수는 없는 일일까요? 당직자들과 기자들을 대동하고 간 후에, 사진 찍는 것도 안 해주시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게 앞뒤가 맞는 말인가요?
그리고 봉사활동은 그냥 개인적으로 하시고 당 차원에서는 그런 낯간지러운 일회성 이벤트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데 힘을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쓰레기 치우는 건 환경미화원이 훨씬 더 잘하시는 일이니 맡겨 두시고 당신들 할 일이나 잘하는 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더 바람직한 일일 것 같은데, 수해만 났다 하면 팔 걷어붙이고 복구현장에 나타나서 사진 찍고 가면 ‘할 일 다했다.” 싶은 건가 봅니다. 그러니 비만 오면 침수되는 곳이 10년이 지나도 또 침수되는 거겠죠.
배수로 공사를 다시 하든, 지반을 올리든, 그것도 어려우면 차수벽을 쳐서 물난리를 겪지 않은 강남 빌딩처럼 동네에 차수벽을 치든 뭐라도 할 생각을 해야지 21세기에 살면서 물나리만 나면 새마을 모자 쓰고 수해 현장 찾아서 쓸데없는 소리로 수해 입은 분들 마음만 후벼파고 봉사활동입네 하고 사진 찍고 가는 게 좋아 보일 리 없습니다.
그러니 시장 앞에서 길 가로막고 얘기한다고 시장 상인에게 거친 말을 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하루종일 무더위에 땀 흘려가며 봉사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땀이 고맙지가 않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언제쯤 국민들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보게 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마치 소는 짊어 지고 가는 저 분과 같이 어쩜 우리는 마음에 담아서는 안되는 것들을 담고 있거나 짊어 져서는 안되는 무거운 짐들을 지고 살아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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