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교수님의. 귀한 글 옮깁니다
<이종찬 신임 광복회장께 보내는 공개서한>
이종찬 광복회장에게···"1919년 건국설 거두시라" [이인호 칼럼]
광복회 회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습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실 뿐 아니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시었던 이시영 선생의 증 손자이시며 우리 국군 간부 출신으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정원장 역임한 경륜을 갖추신 분이니,
그 간 불미로운 일로 오래 시달렸던 광복회가 우리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모임으로서의 본래의 정신과 위상을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하실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난 6월 22일 취임식에 뒤따른 인터뷰 기사들을 보고,
저는 많은 우국시민들과 함께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보도가 얼마나 정확했던 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회장님과 보도 기자들의 역사의식은 크게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정체성만 바로 서면 나라가 정상화됩니다”라는 윤석열 대통령,
아니 나라가 정신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크게 걱정하는 모든 국민들이 원하는 국가정체성 바로 세우기와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역사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가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간 회장님과 저희 집안간, 망국의 회한을 품고 사셨던 외조부님 대부터 쌓아온 깊은 우의에 혹시라도 손상이 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도 불구하고, 이 공개서한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공과 사가 갈등을 빚을 경우는, 공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우리 조상들의 공통된 가르침 이시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 1919년 건국은 역사 왜곡
첫 번째로 지적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언제 독립국가로 세워진 나라인가 하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라는 회장님의 취임사 속 표현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라는 현행 헌법 전문이나 마찬가지로 독립의지와 민주공화국의 이념적 기조가 그 때부터 이어져 왔다고 해석되는 한에서는 무난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대한민국의 재건 또는 부활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이승만 대통령 자신도 정부선포식에서 “민국 30년”이라는 표현을 쓴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 역사적 사실이 몇 몇 사람의 발언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1948년 8월 15일이 아니라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 출범이 우리 대한민국의 수립이었다는 주장은 분명한 역사 왜곡입니다.
임시정부는 어디까지나 임시정부이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능을 내외로 인정받는 정식 국가가 아닙니다.
이승만 박사나 김구선생은 임시정부를 우리 망명 임시정부로 인정받으려 백방 노력했지만, 어느 나라도, 심지어는 우호적이었던 장개석 정부조차도 인정을 거부했습니다.
국내에서 일제의 압박을 받고 살던 한국 백성 절대다수는, 임시정부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북한측이 “남조선이 1948년 친일파에 의해 세워졌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또는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고 하면 같은 1948년에 인민민주공화국을 선포한 북한과 동격으로 추락하기 때문에,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삼아야 하고 광복회에서는 연호까지 서기 대신 '대한민국 104년' 식으로 그쳐 쓰겠다는 발상은, 망상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단기를 서기로 바꾼 것은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국가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결정이었는데, 변화하는 세계 정세에 맞게 독립정신을 새로이 해석해 나가야 할 광복회가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키겠다는 복고주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1919년 건국설은, 문재인 같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주장하는 맹목적 통일지상주의자들 일부가 민족지상주의를 내세워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국민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내놓은 주장임을 모르십니까?
임시정부 시절에는 남북한의 구분이 없었고 함께 참여했던 공산주의 계열의 임정요인들이 자유민주주의 계열의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직에서 사임시킨 일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1919년 건국설이 역사학계 대세?
천만의 말씀입니다
두번째.
어느 면에서 더 큰 문제는 일제 지배시대와 해방과 대한민국 건국과정을 직접 겪으며 자라났던 이 회장님 같은 원로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이 후속세대에 미치는 해악입니다.
이 회장님의 취임을 보도하는 매체들 다수가 1919년이 대한민국의 원년이라는 회장님 주장이 '일부 뉴라이트 보수층'의 견해와는 다르지만, '역사학계 전반'의 입장은 그 쪽이라는 식으로 쓴 것을 보고, 또 다른, 더 우려스런 차원에서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어느 '역사 학계'를 그들은 말하는 것이지요?
해방 직후부터의 역대 우리 역사학계 중진들은 물론 세계 어느 이름있는 역사학자, 심지어는 대한민국에 적대적이었던 공산권 학자들 까지도 대한민국이 1948년이 아니고 1919년에 태어났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이 '사실'이 아니고 '견해'나 '주장'이면 되는 듯 한 위험한 가정이 새 세대를 이끌어 갈 지도자급인 기자들 생각 저변에 팽배해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는데, 결코 반대한민국적 이실 수가 없는 이종찬 회장께서 그에일조를 하고 계신 셈입니다.
국가적 정체성이 바로 잡히려면 올바른 국민의식이 형성되어야 하며, 그것은 역사를 일어난 대로 기억하고 인식할 때야 가능해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독립을 원하고 주장하며 선포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독립국가 국민으로서 살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염원으로 현실을 지배할 수 있다면, 우리가 왜? 망국의 백성으로 전략했었겠습니까?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선포는 독립투쟁의 시발점이지 종착점인 광복이 아니었습니다.
몇몇 공명심 강한 정치인이나 역사학도들이 1919년이 대한민국 탄생의 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적으로 공인되는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임시정부를 임시정부라 불렀고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같은 이름을 가진 조직들이 우후 죽순처럼 생겨났던 것은 임시정부는 임시정부였지 국민에 대한 통솔권을 가진 국가기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대한 승리로 우리를 해방시킨 미국이나 소련 등 연합국들도 우리 임시정부를 임의단체로 밖에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뿐 아니라 미군정으로부터도 해방 되어 독립국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우리 힘으로 된 일이 아니라 일본에게 승리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승전세력이 우리의 독립의지를 인정하고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독립국가로서의 탄생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지 임시정부가 그대로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광복회의 원천인 독립투사들은 바로 큰 희생으로 그 독립정신을 지켜내며 우리가 결코 일본의 속주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세계만방에 인지시킨 공로로 마땅히 감사와 추앙을 받는 것이지, 임시정부를 세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힘으로 우리 스스로가 일본에서 해방되고 독립을 성취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분단이라는 기상천외의 민족적 비극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만, 우리 민족 어느 누구가 그것을 바랐겠습니까?
이 종찬 회장님과 저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 “새나라의 어린이는…” 하는 동요를 부르며 자라난 세대입니다.
우리가 날자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임시정부 탄생이 아니라 1948년 8월 15일을 국경일로 경축해야 하는 것은 그 때 부터야 비로소 우리는 독립국가 국민으로서 나라의 주인이 되어 자신이 만든 법에 따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공산당 조직을 통해 소련의 실질적 지배를 받고 있던 몇 몇 공산권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 50여개 국가들로부터 인정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반토막 나는 것 보다는 전체가 공산화된 것이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는 있었으며, 그들은 결국 대한민국의 반역자가 되었고 38선 북쪽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벌어져 조만식 선생 같은 원로 애국자가 순국했지만 우리가 통일을 애타게 부르짖는다고 냉전이 시작된 국제정체적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련의 붕괴가 보여주었듯이 세계공산주의 체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