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사각’ 중증 정신질환자 1만4000명… 그중 28명만 치료명령
[‘외톨이 테러’ 공포]
자해 등 ‘강제입원’ 환자 아니면, 현행법상 외래치료 명령 못내
“입원 이력 없어도 명령 내리도록
대상 넓히고 국가책임제 검토해야”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AK플라자에서 무차별 테러를 벌인 최모 씨(22)처럼 심각한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않는 환자가 한 해 최소 1만4638명에 이르지만 ‘외래치료 명령’을 받은 사례는 28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래치료 명령은 정신질환을 앓는 이가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경우 강제로 치료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법상 이미 사건을 저지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만 내릴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래치료 명령의 대상을 넓히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강제입원 환자 아니면 명령 불가능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최 씨는 2020년 조현병의 전 단계인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지 않았다. 최 씨가 범행 후 경찰 조사에서 ‘특정 집단이 나를 스토킹하려 한다’며 피해망상 진술을 한 것을 보면 치료가 중단된 최근 3년간 증상이 악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환자가 치료 사각에 방치되지 않도록 2009년 3월 도입된 제도가 ‘외래치료 명령’이다. 정신병원이 청구하면 지방자치단체 산하 정신건강심사위원회가 심사해 환자에게 최장 1년간 외래치료를 명령하고 치료비도 지원해 줄 수 있다. 2019년 4월 ‘외래치료 지원제도’로 이름을 바꾸고 보호자 동의 없이도 치료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이미 자해나 타해 행동으로 ‘강제입원’됐던 환자에게만 이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최 씨처럼 입원한 적이 없으면 아예 명령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환자가 치료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 강제할 법적 수단도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 3만9927명 가운데 퇴원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외래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는 1만4638명(36.7%)이었다. 중증인 만큼 계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이를 하지 않았다는 것. 같은 해 외래치료 명령이 내려진 사례는 28건뿐이었다. 그 전해(2020년)에는 8건이었다. 서울과 부산, 경기 등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시도에서는 외래치료 명령이 한 건도 청구되지 않았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증 정신질환은 단기간 내 완치가 사실상 불가능해 꾸준한 상담과 복약이 필수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관리 사각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해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최 씨의 경우 입원 이력이 없는 만큼 강제치료 이력도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 때문에 치료 명령 대상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명령 대상 넓히고 국가책임제 검토해야”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할 우려가 크다면 입원 이력이 없어도 외래치료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1983년 이후 47개 주(州)에 외래치료 지원제도(AOT)가 도입됐는데, 입원 경력보다는 ‘재발’이나 ‘악화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다수 선진국이 병식(스스로 아프다는 인식)이 없는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예방적 차원에서 치료를 명령하는 것을 인권침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증 정신질환의 초기 진단부터 치료까지 국가가 관리하는 ‘국가책임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의심 신고부터 진단, 병상 배정까지 모두 담당했던 것처럼 중증 정신질환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환자가 불만이나 불안감을 해결하지 못해 ‘폭발’하는 일을 막기 위해 맞춤형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건희 기자, 최미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