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초 김영삼 정부가 끝나자 3월 1일을 기다리던 고위 공무원이 여럿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1절 날 새순 파릇파릇 돋는 잔디밭에서 만나자"고들 했다.
김영삼 정부는 공무원 골프에 대해 유난히 엄격했다.
어지간히 간 크지 않으면 필드에 나갈 염두를 못했다.
그래도 유혹을 못 이기는 공무원들은 本名 외에 필명(필드용 이름)'이란 걸 갖고 있었다.
경기자 명단에 올리고 골프백 이름표에 새겨 넣는 假名이다.
차는 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 새워두고 모여서 갔다.
감찰 기관에선 만남의 광장에 오래 서 있는 차 중에 공무원 차가 있는지 내사하기도 했다.
김지하가 1970년 발표한 풍자시 '五賊'에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 모여
골프 대회를 여는 대목이 나온다.
'盜짜 하나 크게 걸어놓고 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이라 날씨는 화창/
저마다 골프채 하나씩 꼲아잡고/ 다투어 秘傳의 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당시만 해도 골프를 고위 공직자와 돈 있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부패의 고리처럼 보는 시선이 많았다.
지금은 물론 다르다.
지난해 골프장 연 이용객은 3050만명, 한 해 프로야구 관중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네 배 많은 숫자다.
그래도 공무원 가운데는 여전히 드러내놓고 골프 치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공무원 골프 십계명' 이란 게 있다.
현충일과 6.25는 피할 것,
정권 초기와 인사 철엔 몸조심할 것,
민원인은 피할 것...
홍준표 경남지사가 지난주 말 논란 많은 '도지사배 공무원 골프 대회'를 강행했다.
36팀으로 나눠 공무원 144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비용은 각자 부담했지만 우승 상금 300만원 등 상금 600만원은 도 예산을 썼다.
홍지사는 공무원들에게 "조상 이름까지 바꿔가며 골프를 치는 일은 경남에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며
"당당하게 치라"고 했다.
누구나 칠 수 있는 골프를 고움원만 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공직자 접대 골프에 얽힌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홍지사는 경남기업에서 1억원을 받았네, 안 받았네 하는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처지다.
골프가 대중회됐다고는 하지만 골프는 여전히 공무원 봉급으로 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돈과 시간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공무원 골프를 호통치며 막는 것도 이상하지만 도지사가 트로피를 내걸고 장려하는 게
국민 눈엔 어떻게 비칠지도 궁금하다.
제 돈 내고 치면서도 사람들 시선을 살펴야 했던 공무원들을 즐거웠을까. 김태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