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꽃, 정수리에서 터지다
홍은택
정수리는 몸통의 끝,
정신이 바람을 불러들이는 숨구멍이다
사막을 건너는 데 오십 년이 걸렸다
네 손길이 만지고 간 가시 끝마다 붉은 핏방울
그 힘으로 견딘 상처가 흰 꽃잎으로 핀다
시간의 모래땅에서 펌프질로 끌어올린
내 오랜 그리움이 팝콘처럼 터진다
지금 바람을 향해 열린 꽃잎들의 문
하루해가 가기 전 어둡게 닫힐 테지만, 오늘 밤
감각이 정신으로 바뀌는 통점痛點에서 꽃은 환히 핀다
흰 꽃은 붉은 피보다 더 붉다
선인장 흰 꽃은 정수리에서 터진다
라파스*의 시간
높고 둥근 지붕 이마에 박힌 탑시계
좌우가 바뀐 숫자판 거꾸로 도는 바늘
기억의 태엽을 거꾸로 감아
허공에 풀어내는 일은 아니다
음험한 먹장구름을 찢고
번개 아닌 별 가루 쏟아져 내려
둥근 지붕 피뢰침으로 빨려든다
왼쪽으로 도는 바늘 끝에서
세상에 뿌려지는 별빛 모래알들
허공에 떠다니는 반짝이는 알갱이들을
이곳 주민들은 잉어처럼 받아먹는다
해발고도 3,600미터 남반구
분화구 모양의 도시 라파스에서
매일매일 생기는 일이다
만년설을 배경으로
붉은 달 서쪽에서 뜨고
계곡 위 달동네 아이들 케이블카 타고 학교 가는
* ‘평화La Paz’라는 뜻의 볼리비아 수도
시간은 공간을 먹고 산다
사와로라 불리는 기둥선인장은 이백 년 이상 살 수 있다. 키가 십오 미터까지 자라고 무게는 십 톤까지 나간다. 건물 3, 4층 높이에 자동차 서너 대의 무게다. 그가 지탱하는 만큼의 무게에 견주어 사막 주민들 각각이 견디는 생의 중력, 그 총계를 가늠해 본다.
기둥선인장은 아주 천천히 자란다. 오십 년이 지난 후에야 흰, 노란, 붉은색 꽃들이 해마다 피어나기 시작한다. 꽃들은 각각 하루 동안만 피었다 진다. 밤마다 선인장은 꽃잎을 열어 캄캄한 우주와 교신을 시도하지만 메시지는 대기권을 벗어나기도 전에 삭제된다.
칠십 년이 넘으면 기둥선인장은 거의 육 미터 정도로 키가 큰다. 그제서야 가지들이 옆구리에서 팔처럼 뻗어 나온다. 백 년쯤 지나면 선인장은 마치 양팔을 니은 자로 벌린 안테나의 형상이 된다. 불면의 밤들을 지나며 전생의 연인들로부터 해독할 수 없는 메시지를 수신한 것도 이 초록의 안테나를 통해서였다.
사막의 밤, 유성우가 쏟아진다. 온몸에 날카로운 가시별들이 박힌다. 내 몸을 곧추세우고 양팔을 벌려 스스로 안테나가 되기로 한다. 잉걸불 같은 가시별들 깜박이며 내가 떠나온 우주와 교신을 시도한다. 초록의 불기둥을 세운다. 바닥이 드러난 릴리토 강 속으로 해가 뜨고 오래도록 해가 진다. (홍은택, 『통점에서 꽃이 핀다』 <시작노트>에서 발췌, 수정)
사막이라는 공간. 시간은 공간을 먹고 산다. 아니, 공간은 시간에서 양분을 섭취하며 소멸해 간다. 거대한 진흙더미가 소멸해 가다가 멈춰 선 듯한 공간.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는 영혼의 계곡이 있다. 언제부턴가 달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 만년설이 멀리 그림의 배경처럼 보이고 하늘의 별들과 가장 가까운 도시.
모래와 파도가 시간의 상징으로 자주 쓰이는 건 무한함과 반복성 때문일 것이다. 진흙더미가 말라 사막으로 굳어가다가 시간의 파도에 씻겨 뾰족뾰족한 침식의 흔적을 남길 때, 육안으로 더듬어 볼 수 있는 풍경이 이런 것이겠다.
시계는 시간을 공간화 시켜놓은 문명의 산물. 헌데 시계바늘은 왜 오른쪽으로만 돌아야 하나. “시계가 항상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누가 말했는가? 왜 우리는 항상 순종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창의적이면 안 되는가?” 그 오래 굳어진 상식적 사고에 라파스 주민들이 반기를 들었다. 국회의사당 건물 둥근 첨탑에 붙박힌 시계의 바늘은 왼쪽으로 돌아간다. 숫자판도 반대다. 혁명적 생각의 실천이다.
그런 빛나는 생각은 별들로부터 왔다. 한밤중, 마치 반짝이는 별들이 가루가 되어 쏟아져 내리듯 시간의 모래가 의사당 시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감긴 태엽이 풀리면 시계바늘이 왼쪽으로 돌고, 달의 계곡 골짜기마다 별빛을 닮은 시간의 알갱이들이 뿌려진다. 라파스 주민들은 뻐끔뻐끔 잉어처럼 노란 별빛 시간을 받아먹고 산다.
붉은 달이 지면, 해발고도 3,600미터, 분화구 언덕에 사는 아이들은 텔레페리코라 불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일리마니(6438m)산의 만년설을 바라보며 학교로 내려간다. 이곳의 아이들이 한결같이 빛나는 이마와 서느런 눈빛을 가진 것은 그 때문이다.
공간은 시간을 먹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