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새벽 2시에 일정을 마친 후 두북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두북 수련원 법당에서는 4시 30분에 맑은 종소리와 함께 예불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부지런히 차로 달려왔지만 5시 20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해 명상 시간부터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 했습니다.
경전을 독송한 후 사홍서원까지 마치고 스님의 법문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정토행자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늘은 제10차 천일결사 제2차 백일기도 입재 후 34일째 되는 날입니다. 아침 기도는 잘하셨습니까?”
3천 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하여 각자 자신의 방에서 함께 기도를 한 후 경전을 읽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읽은 경전 내용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쿠시나가라(Kushinagar)로 이동할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바이샬리(Vaishali)에서 ‘나는 앞으로 3개월 후에 열반에 들겠다’고 선언하시고 북쪽으로 길을 떠나셨고, 그 후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사람들은 ‘왜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셨을까?’ 하는 의문을 많이 제기하기도 합니다. 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이런 의견도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를 향해 가다가 도중에 파바 마을에 이르러 춘다의 공양을 받고 급성 식중독을 일으켜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신 것이 아닐까?’
지리적으로 보면 바이샬리와 카필라바스투의 거의 중간 지점에 쿠시나가라 지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의 모습
부처님께서는 바이샬리를 떠나 간다키 강을 건너 북쪽으로 올라가시다가 파바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지난주에 읽은 경전의 내용이 바로 이 파바 마을에서의 내용입니다. 파바 마을에 이르러서 어느 망고나무 밑에서 쉬고 계셨습니다. 인도의 망고나무는 우리나라의 감나무처럼 동네 어귀마다 있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그 망고나무의 주인이 대장장이의 아들 춘다였습니다. 대장장이는 천민에 속합니다.
아마도 자신의 망고 나무 아래에서 수행자가 머무르고 있으면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것이 당시 인도 사회의 예의였나 봅니다. 춘다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예를 갖추고 한쪽에 앉으니 부처님께서 춘다를 위해서 좋은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그 법문으로 깨달음을 얻은 춘다는 너무나 기뻐서 부처님께 ‘부처님과 대중들에게 내일 아침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침묵으로 승낙하셨습니다. 춘다가 떠난 뒤에 아난다가 부처님께 걱정스러운 얼굴로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왜 승낙을 하셨습니까? 춘다는 가난하여 많은 대중의 음식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그해에는 가뭄이 들어서 부자도 부처님 일행에게 공양을 쉽게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난존자가 생각하기에는 하물며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부처님 일행에게 공양을 올릴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춘다의 공양은 마땅히 거절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여, 걱정하지 말라. 춘다는 잘 준비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춘다는 사람을 보내서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하고 알렸습니다. 부처님이 대중 일행과 함께 춘다의 집에 도착하니 공양 준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인도는 앉아 있으면 음식을 준비한 사람이 돌아가면서 음식을 덜어줍니다. 그중 한 음식을 나누어 주는데, 부처님께서 발우에 담긴 음식을 보시고 이렇게 말합니다.
‘춘다여, 이 음식은 다른 이에게는 주지 말라’
그 음식의 이름은 스카라맛다바였습니다. 공양 분배가 끝나고 부처님께서 ‘남은 스카라맛다바는 땅에 묻으라’고 말씀하셨고, 춘다는 ‘알겠습니다’ 하고 음식을 땅에 묻습니다. 공양이 끝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공양을 준비한 춘다를 위해 설법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후 부처님께서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비치면서 ‘아난다여, 속히 일어나서 길을 떠나자. 배가 몹시 아프구나’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처님께서는 쉬었다가 가자고 하신 후 피가 섞인 급성 설사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제가 수집한 여러 가지 정보로는 스카라맛다바에서 ‘스카라’는 돼지란 뜻이고, ‘맛다바’는 벵갈어로 토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스카라맛다바는 돼지 토란, 즉 야생 토란일 확률이 가장 높을 것 같습니다.
인도 열대지방에 가보면 야생 토란이 많습니다. 원래 토란은 독성이 있기 때문에 삶아서 우려 놓았다가 먹습니다. 특히 야생 토란의 경우 독성이 더 강할 수 있습니다. 춘다는 가난한 환경에서 살아가니까 야생에서 음식을 채취해 먹는 것에 익숙했을 텐데,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독성이 크게 발휘되었을 수 있겠죠.
내가 고집을 했구나
결국 부처님께서는 춘다의 공양을 받고 나서 몸이 매우 편찮으셨는데, 그 내용이 오늘 우리가 읽은 경전에 나옵니다. 설사를 하면 맥이 빠지고 목이 마르니까 ‘아난다여, 물을 좀 다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아난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근처에 냇가가 있긴 하지만 금방 수레 500대가 지나가서 흙탕물이 가라앉지 않았으니 잠시 후 카쿠타 강에 이르면 그곳에서는 맑은 물이 많아 물도 마실 수 있고 목욕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부처님께서 ‘아난다여, 물을 좀 다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아난다는 다시 설명을 반복하며 조금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잠시 후 또다시 부처님께서 ‘아난다여, 물을 좀 다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째, 부처님께서 얼마나 목이 마르셨는지를 알 수 있고, 둘째, 아난다 역시 고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행자라면 요청이 있을 때 일단 가보고 흙탕물이라도 떠와서 ‘부처님, 이렇게 흙탕물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하고 말해야 하는데 자기 눈으로 본 것을 더 믿는 겁니다.
인도 문화에서는 세 번 요청을 하면 대개 들어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세 번째 요청을 받자 아난다는 발우를 들고 강가에 가보았습니다. 강물은 정말로 깨끗했습니다. 조금 전 500대의 수레가 지나갔는데도 물이 깨끗한 것을 보고 놀란 아난다는 얼른 물을 떠서 부처님께 드립니다.
경전에는 아난다가 신기해하는 내용은 있지만 ‘내가 고집을 했구나’ 하고 반성하는 내용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지니는 의미를 잘 파악했으면 의미에 맞게 기록을 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부처님의 일생을 기록한 사람의 수행력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웃음)
부처님을 위대하게 만든 춘다의 공양
부처님은 이렇게 목을 축이고 다시 걸어서 카쿠타 강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신 후 그 옆 망고나무 옆에 가사를 네 겹으로 깔고 누우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난다에게 춘다의 안부를 물으십니다. 그러자 아난다가 대답합니다.
‘춘다가 지금 몹시 힘들어합니다. 사람들은 비록 춘다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지만 부처님을 병들게 했기 때문에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배고픈 이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은 공덕이 아주 크다. 그리고 그중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덕이 으뜸이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중에서도 두 가지 공양이 최고의 공덕을 지닌다. 첫째가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드신 공양이고, 둘째가 열반에 들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드신 공양이다.’
정각을 이루기 직전에 드신 공양이 바로 수자타의 공양입니다. 열반에 들기 직전에 드신 공양은 바로 춘다의 공양입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춘다는 부처님을 병들게 한 사람에서 부처님께 마지막 공양을 올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해준 음식을 먹고 죽게 되었다면, 그 음식으로 인해 죽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음식이 그 사람의 마지막 공양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사물의 양면성입니다. 부처님께서 바로 이 양면성을 통찰하시고 상황을 뒤집어서 춘다를 부처님께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린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그래서 인도에 가보면 춘다의 공덕을 기리는 큰 탑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수자타의 공양은 수자타를 위대하게 만든 공양이라면, 춘다의 공양은 춘다가 아니라 부처님을 위대하게 만든 공양입니다. 어떤 사람이 음식에 독성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안 먹은 사람은 역사 속에서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또한 독성이 있는 음식을 먹고 아무렇지 않았던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을 먹고 죽어가면서 ‘이 음식이 내가 먹은 마지막 공양이니라, 그에게 한없는 공덕이 있으리라’ 이렇게 말한 사람은 아직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역사 기록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일화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자기를 못 박은 교도관 두 명을 향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라고 말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일화도 바로 예수님을 위대하게 만든 일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그렇게 말하는 건 사람으로는 낼 수 없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곧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춘다는 법문을 듣고 기뻐하며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할 거라고 했지만, 춘다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야생에서 먹을 수 있는 온갖 것을 채취해서 부처님과 일행을 위한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평소 먹는 습관대로 하다 보니 음식이 잘못될 수 있었던 겁니다. 부처님은 그 과정을 다 알고 계셨던 겁니다.
‘부처님께서 미리 알고 안 드실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데, 부처님이 행하신 걸식의 원칙은 담아주는 음식을 그대로 먹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음식을 발우에 담는 것을 보고 그 모양과 냄새를 보고 다른 사람에게는 주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수행자는 걸식을 할 때 ‘나를 위해서 이 음식은 넣어 달라’, ‘이 음식을 빼 달라’ 이렇게 말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단,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이 음식을 넣어달라거나 빼 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식의 원칙을 알아야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춘다에게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하면서 ‘춘다의 공양은 그 공덕이 아주 크다’라며 춘다를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대중들 사이에서도 춘다를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말들이 싹 사라졌습니다. 이런 춘다의 공양은 바로 부처님을 위대하게 만든 공양입니다.
그것이 진실이다 vs 나는 이렇게 봤다
또한 우리는 눈으로 본 것에 대한 신념이 아주 강한 편입니다. ‘내가 봤다’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안 듣게 됩니다. 내가 직접 봤다는 것에 비해서는 조금 약하지만 ‘TV에서 봤다’, ‘신문에서 봤다’, ‘책에서 봤다’라고 할 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안 듣게 됩니다. 요즘 가짜 뉴스가 성행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방송에서 봤다는 것 때문입니다. 방송 뉴스에 그런 내용이 나온 적이 없는데도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접하는 내용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옛날에는 설령 말은 함부로 하더라도 기록이 되는 책에는 최대한 진실만을 적었고, 신문이나 TV 뉴스에도 공신력 있는 내용들이 주로 나왔는데, 요즘은 글이나 화면으로 된 내용 중에도 사실이 아닌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인식 상의 오류로 인해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아는 것을 너무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내 눈으로 직접 봤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봤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다르게 이야기를 하면 다시 한번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한 겁니다.”
스님은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아침 6시 20분에 간단히 요기만 할 정도로 간식을 먹고 곧바로 밭으로 나가 농사일을 했습니다. 밤새 차를 타고 온 스님의 건강이 걱정되어 한 행자님이 물었습니다.
“스님, 밤새 서울에 다녀오셨는데 좀 쉬셔야 하지 않으세요?”
“밥을 먹으려면 밥값을 해야죠.”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텃밭에 상추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먼저 밭 주변에 떨어진 감과 베어낸 상추 뿌리들을 뽑았습니다.
들깨를 한쪽으로 옮겨 심고 상추 심을 땅을 마련했습니다.
옮겨 심은 들깨에 물을 준 후 빈 땅에 직접 키운 상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아직 상추가 어린 편이었지만, 명상수련이 끝나면 너무 늦어지기 때문에 오늘 다 옮겨심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 상추를 뽑아낸 빈 땅에도 새로 상추를 심었습니다.
꽃대가 자란 청상추도 다 뽑고 새로 상추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명상수련을 다녀오면 상추가 쑥쑥 크고 있을까?”
여름에 심은 어리고 여린 상추 모종들이 과연 잘 자랄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일하기에는 뜨거운 햇볕이었지만, 상추대는 잘 마르고 있었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는 사이 뜨겁던 햇살이 구름에 가렸습니다. 날이 흐려지자 스님은 12시부터 다시 비닐하우스에 나와 곳곳에 풀을 맸습니다.
이틀 후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명상수련에 들어가기 때문에 오늘은 미리 할 수 있는 농사일을 최대한 해놓았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영어 통역 온라인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 명상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