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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벗 삼아 – 각흘산, 명성산
1. 아래는 산정호수, 그 오른쪽은 망무봉, 왼쪽은 망봉산, 맨 뒤 오른쪽은 불무산
仙遊邈已遠 신선이 놀던 일 멀고 아득하여라
嘉境轉幽寂 아름다운 경개는 갈수록 그윽하다
晴川碧如藍 맑은 시냇물 푸르기 쪽빛 같고
石蘚暖於席 돌에 낀 이끼 자리보다 따뜻해라
逍遙能幾時 이렇게 소요하기 얼마나 가리
俛仰忽陳迹 부앙하는 사이에 묵은 자취되리라
淹留非不佳 얼마든지 머물러 놀고 싶건만
但恐日易夕 다만 날이 저물까 두려워하노라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8
―― 석천인(釋天因, 고려 고종 때 천태종 승려, 1205~1248), 「사선암에 놀면서(遊四仙嵓有作)」
▶ 산행일시 : 2023년 10월 14일(토) 흐리고 비 온 후 갬
▶ 산행코스 : 자등현,각흘산,약사령,명성산,궁예봉,명성산,팔각정,책바위,비선폭포,등룡폭포,산정호수 상동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17.9km
▶ 산행시간 : 9시간 10분(07 : 45 ~ 16 : 55)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와수리 가는 시외버스 타고 자등현에서 내림
▶ 올 때 : 산정호수 상동주차장에서 도봉산역환승센터로 가는 1386번 버스 타고 운천터미널(영북농협)에 내려,
동서울 가는 3001-1번 버스로 환승함
▶ 구간별 시간
06 : 20 – 동서울터미널
07 : 45 – 자등현(自等峴), 산행시작
08 : 12 – 615.3m봉
08 : 30 – 헬기장
08 : 41 – 각흘산(角屹山, △838.2m)
09 : 00 – 759m봉
09 : 45 – 716m봉
10 : 00 – 약사령(藥寺嶺, 545m)
10 : 30 – 717m봉, 헬기장
10 : 45 – ┣자 용화저수지 갈림길, 휴식( ~ 10 : 55)
11 : 36 – 명성산(鳴聲山, △923m)
11 : 55 - 870m봉
12 : 25 – 궁예봉(弓裔峰, 823m), 점심( ~ 13 : 00)
13 : 18 - 870m봉
13 : 40 – 명성산(鳴聲山, △923m)
14 : 20 – 894m봉
14 : 55 - ┫자 갈림길, 팔각정
15 : 20 - ┣자 갈림길, 비선폭포 1.2km
15 : 30 – 책바위 안내판
15 : 45 – 비선폭포
16 : 15 – 등룡폭포, 휴식( ~ 16 : 25)
16 : 55 – 산정호수 상동주차장, 산행종료
17 : 20 – 1386번 버스 출발
17 : 35 – 운천터미널(영북농협, ~ 17 : 58)
21 : 14 – 동서울터미널
2.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 각흘산(角屹山, △838.2m)
버스가 도평리 지나고 자등현 가는 고갯길로 접어들자 버스기사님에게 각흘산을 가려는데 자등현에서 내려주실 수
없겠느냐고 사정하자 대번에 거절한다. 그러다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었고 다른 승객들이 아무 데나 서느냐고 항의
하는 등 민원이 들어와 지정된 정류장 외에는 서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기를 서너 차례 반복한다. 나로서는 괜히 말
꺼냈다가 우박을 맞은 셈이다. 자등리 정류장에 내려 자등현을 걸어서 뒤돌아 오르기란 너무 멀다. 2.5km나 된다.
그렇다면 자등리에서 맞은편 지능선을 치고 올라 대득지맥-지능선 691m봉과 781m봉 넘어 대득지맥 주릉에 오르
는 거리도 2.5km이다-에 올라 그 길로 각흘산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버스가 자등현 고갯마루에 올라서
자 기사님은 나이 지긋한 내 사정이 걸렸던 모양인지, 에이, 이러면 안 되는데, 얼른 내리세요 하면서 버스를 멈추고
문을 열어 준다. 말은 쌀쌀맞게 했으나 마음은 따뜻한 분이었다. 어쩐지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
다. 그리고 그 예감은 들어맞았다.
자등현(自等峴)은 자등령(紫登嶺)이라고도 하는데, 자등(自等)이라는 지명을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자등’이라는 이름은 고을의 군수가 상해암 마루턱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항상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곡절이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자등(紫登)’이라는 한자를 쓰다가 ‘자등(自
等)’으로 바뀌었다고 전하여진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전에는 자등현을 한겨울에 광덕산을 넘어서도 왔는데 이제는 그런 욕심이 시들었다. 자등현 너른 공터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매점은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었다. 등산객 말고 손님이 있을는지 의문이다. 코스 길이 : 2.7km. 소요시
간 : 1시간 30분. 각흘산 등산로 종합안내도를 훑어보고 아프리카 돼지열병방지 철조망 쪽문을 열고 들어간다. 한적
하다. 등로는 울긋불긋한 낙엽들이 흩뿌려져 스산하다. 등로를 벗어나면 군부대라서 지능선 분기봉의 이정표는 곧
장 갈 것을 당부한다.
부부 등산객을 만난다. 잰걸음 하여 이들을 추월한다. 오늘 명성산까지 가는 3시간 40분 동안 만난 유일한 등산객이
다. 교통호 아래 사면 들러 덕순이 안부를 알아보려고 봉봉을 넘을 때마다 기웃거리지만 너무 가파르게 보여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615m봉에 명성지맥 표지판이 걸려 있다. 다시 한바탕 숨차게 힘써 750m봉이다. 등로를 오른
쪽 약간 벗어나면 너른 헬기장이 나온다. 이제 정상까지도 750m다. 가파른 돌길 오르막에는 굵은 밧줄이 달려
있다.
각흘산 오르는 중에 하늘 트인 데는 한 곳도 없는 숲속 길의 연속이다. 철조망 문을 열고 벌거숭이 주릉에 올라선다.
각흘산 정상은 좀 더 가야한다. 바윗길 돌아 오른다. 각흘산. 이 산을 서북쪽에서 볼 때 소뿔처럼 뾰족한 모양이라고
하다. 아직도 정상 표지석은 없고 표지목이 대신한다. 삼각점은 ‘갈말 311, 2007’ 재설이다. 사방 조망이 거칠 게 없
는 빼어난 경점인데 올 때마다 조망 재미를 보지 못한다. 건너편 광덕산 한북정맥도, 명성산 명성지맥도, 대득산 대
득지맥도 흐릿하다.
잠시 서성이다 약사령을 향한다. 소뿔 만드느라 가파른 바윗길을 한참이나 주춤주춤 내렸다가 벌거벗겨진 흙길
능선을 오른다. 포사격 훈련 때문에 이러지 않았는가 싶은데 산불 방화선이라고도 한다. 멀찍이서 뒤돌아보면 능선
을 따라 흰 눈이 쌓인 듯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763m봉에서 오른쪽 군인의 길
을 풀숲 헤치고 들어가 본다. 적상 두른 각흘산이다. 철조망 문을 열고 주릉을 이어간다. 숲속길이다.
763m봉에서 0.3km 가면 ┫자 갈림길 왼쪽은 또 다른 각흘봉(△661.9m)으로 간다. 거기도 등산로가 잘났다. 갑자
기 주위가 소연한가 싶더니 갈잎이 부산하다.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는 것이다. 오늘 전국에 걸쳐 비가 내린다고
했다. 산에서의 조망은 아예 기대하지 않았다. 어느 산에서나 곰탕일 것이므로. 그래서 명성산 억새를 찾아 온 것이
다. 숲속이라 비가 내리는 줄을 모르겠는데, 빗소리는 요란하다.
3. 각흘산
4. 각흘산, 759m봉에서 주릉 벗어난 북쪽 지능선으로 약간 가서 보았다.
5. 용담
6. 각흘산
7. 자주쓴풀(Swertia pseudochinensis H.Hara)
용담과 두해살이풀이다.
속명 스베르티아(Swertia)는 독일 식물학자 Emanuel Sweert(1552~1612)에 헌정된 이름이다. 종소명 픕소이도커
넨시스(pseudochinensis)는 중국 채집 표본으로 기재된 Swertia chinensis가 이명(異名) 처리되면서 생긴 것이
다. 접두사 pseudo-(픕소이도, 영어 발음은 슈도)는 가짜(僞)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명명자 H.Hara는 일본 식물학자 하라 히로시(原寛, Hara Hiroshi, 1911~1986)이다.
한글명은 자줏빛 쓴풀에서 유래하고, 일본명(紫千振)을 번역한 것이다. 일본명은 무라사키센부리(ムラサキセンブ
リ, 紫千振)인데 꽃이 자색인 쓴풀이라는 뜻이다. 쓴풀의 일본명 센부리(千振)는 아무리 달여도 쓴맛이 가시지 않는
품성을 뜻한다.
영어명은 False Chinese Swertia이다.(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2』 외)
13. 삼각봉 서쪽 주변
14. 앞이 삼각봉
▶ 명성산(鳴聲山, △923m), 궁예봉(弓裔峰, 823m)
등로 살짝 벗어난 조망이 트일 듯한 716m봉 절벽 위에 다가간다. 광덕산 박달봉이 가깝다.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는
데 파인더로 들여다보는 박달봉도 파인더 아래 셔터속도, 감도 등의 정보 표시가 뿌옇게 보인다. 초점을 잡는 전자
음은 경쾌하게 들린다. 내 눈이 이상한가 안경을 쓰고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다. 렌즈를 뺐다가 다시 끼우고, 촬영
모드를 리셋도 해보았지만 그대로다. 고장이 났나보다 하고 휴대폰 카메라와 병행하여 찍을 요량하고 길 재촉하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시도(視度)조절레버를 나도 모르게 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그랬다. 그
레버를 조절하자 모든 게 선명해진다. 이 얼마 기쁜지.
약사령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잔잔하던 등로가 716m봉을 넘고는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약사령. 예전에 이 근
처 남쪽 산기슭에 약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묵은 임도가 지난다. 명성산 등산 안내도에 거리 2.4km, 소요시간
1시간 54분이다. 비는 부슬비로 내린다. 골짜기 계단 오르고 사면 돌아 가파른 능선이다. 이곳에 얼마 전에 산불이
났었다. 산불이 나면 가장 치명상을 입는 건 소나무다. 드문드문 있는 소나무는 시커멓게 탔다.
가파른 돌길이 나오고, 가파른 사면을 오금 저리게 트래버스 하고, 슬랩을 밧줄 잡고도 달달 기어오른다. 717m봉
묵은 헬기장이다. 여기서부터 명성산 정상까지는 억새평원을 지나는 완만한 오르막이다. 등로 옆 풀숲에서 전에 보
지 못한 풀꽃을 본다. 식물도감이나 남의 블로그에서나 보던 자주쓴풀(Swertia pseudochinensis H.Hara)이다.
지금 한창이다. 올 여름에 화악산에서 닻꽃을 보던 그런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 자주쓴풀은 닻꽃과 생육환경이 아주
비슷하다. 배수가 잘 되는 사질양토에서 자라고 햇빛을 좋아하고 노지에서 월동 생육한다고 한다. 전국 산야의 양지
에 자생한다는데 내 그렇게 싸돌아다니면서도 도통 볼 수가 없었다.
이 근처에 지금은 지고 없지만 물매화도 자생한다니 명성산이 좋아진다. 자주쓴풀은 햇빛 가린 우거진 풀숲은 싫어
하는 까닭에 그 풀숲 가장자리인 등로 바로 옆에서 줄줄이 얼굴 내민다. 걸음걸음 엎드려 눈 맞춤한다. 나로서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 산행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예감한 그 첫째다.
오른쪽으로 용화저수지(2.8km) 가는 ┣자 갈림길이다. 탁자와 벤치가 있는 쉼터다. 배낭 벗어놓고 첫 휴식한다.
자주쓴풀 곁에 두고 탁주 독작한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배낭 덮개 씌우고, 비옷 걸치고, 스패츠 맨다. 스패츠를 맨다고 하여 빗물이 등산화 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을 늦출 수가 있다. 그러고도 우산 받치고 자주쓴물 자주 들여다본다. 풀숲
헤쳐 이미 온 비를 소급해서 맞는다. ┳ 삼각봉 갈림길. 명성산 정상은 0.3km다. 이제야 등산객들을 만난다. 반갑
다. 괜히 씩씩해진다. 슬랩 오를 때 뒤돌아보는 삼각봉 연봉이 운무 속 가경이다.
밧줄 잡고 긴 슬랩 올라 널찍한 공터인 명성산 정상이다. 국토정보플랫폼 지명사전의 설명이다. “궁예가 918년에
왕건에게 쫓겨 이 산중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다가 전의를 상실하고 통곡하면서 군사들을 해산하였는데, 그 후부
터 산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와 명성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궁예왕굴(弓裔王窟)은 상봉에
위치한 자연동굴로 궁예가 왕건에 쫓겨 은신하던 곳이었다 한다. 항서받골(降書谷)은 궁예 군사에게 항복하는 항서
를 받은 곳이라고 하며, 가는골(敗走谷)은 궁예가 단신으로 이 골짜기를 지나 평강으로 도망갔다고 하여 패주골,
또는 가는골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눌치(訥雉)는 궁예가 도주하면서 흐느껴 울었다는 곳으로 느치라고도 불린다.”
정상 표지석 앞 삼각점은 2등이다. 갈말 24, 1985 재설. 곧장 궁예봉을 향한다. 풀숲 헤치고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진
다. 앞에 가는 등산객의 뒷모습이 낯익다. 킬문 님이다. 산중에서 악우를 그 중에서도 킬문 님을 만나기란 매우 드문
일이다. 킬문 님은 책바위 쪽에서 올랐다고 한다. 반갑다 어찌 말을 다할까. 오늘 산행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예감한 그 둘째다. 킬문 님도 궁예봉을 간다. 함께 간다. 한결 발걸음이 든든하다.
궁예봉까지 0.9km 암봉 3좌를 넘어야 한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잠시 내렸다가 긴 바위 슬랩을 밧
줄 붙잡고 오른다. 870m봉이다. 870m봉도 조망이 훤히 트이는 경점인데 건너편 명성산 정상만 뚜렷할 뿐 삼각봉
연릉과 산정호수 쪽은 운무에 가렸다. 870m봉 내리는 길이 올 때마다 까다롭다. 여기저기 들여다보아도 마땅하지
않다. 온 길 약간 뒤돌아 오래 된 교통호로 내린다. 그러다 완만한 생사면 풀숲을 헤친다. 재작년 늦가을에 여기 올
때 제법 실한 덕순이를 보아서다. 두루 누볐으나 빈 눈이다.
이다음은 암봉은 830m봉 침전바위다. 궁예가 누웠다는 오목한 바위다. 우리는 눈으로만 넘고 그 오른쪽 직벽을
오른다. 밧줄이 아니면 오르기 어렵겠다. 한 손에는 밧줄을 다른 한 손에는 나무뿌리를 움켜쥐고 오른다. 이다음
암봉은 내리기가 까다롭다. 밧줄을 손바닥이 화끈하게 붙잡고 내린다. 여기서 보는 궁예봉 남벽의 소나무가 기송으
로 한 경치 한다. 궁예봉 동벽 오르기도 긴장된다. 밧줄은 낡아 색이 바랬다. 무척 조심스럽다.
궁예봉. 자연석 판석이 널린 좁다란 공터다. 남쪽과 서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불무산과 은장산에 이르는 첩첩 산들
이 운무 속 가경이다. 킬문 님과 탁주 술잔 나눈다. 짧지만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다. 저간의 산행소식을 들었다.
도봉산을 비롯하여 어느 산에서도 노루궁뎅이 버섯을 배낭이 무겁도록 땄다고 한다. 집에서는 이제 그만 노루궁뎅
이 버섯을 가져오지 마시라고까지 했다 한다. 한 번은 ddc 님과 고대산으로 능이를 보러갔는데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대물 능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ddc 님의 마음고생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어서 능이 철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란다. 산에 갔다가 집에 돌아
와 잠자리에 들면, 그 사면에 능이들이 어른거리더라고 한다. 누군가가 금방 채 갈 것만 같아 안타깝더라고 한다.
킬문 님은 궁예봉에서 능선을 타고 약물계곡으로 간다. 약물계곡으로 가는 능선도 만만치 않은 험로라고 한다. 나는
온 길을 뒤돌아 명성산을 넘어 책바위 쪽으로 간다. 서로 부디 조심하시라 하고 헤어진다.
명성산 가는 길. 슬랩을 내리기가 오르기보다 더 까다롭다. 비에 젖어 되게 미끄럽다. 이런 데에서는 연습이 없다.
한 발짝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살벌한 실전이다.
15. 명성산 정상
16. 궁예봉 가는 길 870m봉에서 바라본 명성산
17. 궁예봉 남벽
18. 궁예봉 정상
19. 궁예봉에서 남서쪽 조망, 왼쪽은 은장산(?)
20. 명성산의 가을
22. 왼쪽은 불무산(663m), 멀리 오른쪽은 은장산(454m)
23. 멀리 가운데는 은장산
24.멀리 가운데 왼쪽은 귀목봉, 중간은 여우봉
25. 멀리 왼쪽이 은장산
26. 앞은 망무봉(442m), 멀리 가운데는 불무산
27. 앞은 대유몽베르컨트리클럽
28. 왼쪽은 불무산, 멀리 오른쪽은 은장산, 앞은 대유몽베르컨트리클럽
▶ 팔각정, 등룡폭포
다시 명성산에 오르고 안개가 짙게 드리운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아닌 오보무중(五步霧中)이다. 노란 생강나무
가 등로 밝힌다. 안개 속 은은한 추색이 아름답다. 안개 덕분에 발품을 덜었다. 삼각봉은 오르지 않는다. 암릉 암봉
인 901m봉도 그 왼쪽 슬랩을 밧줄 잡고 길게 돌아 넘는다. 돌탑 지나고 평원을 간다. 안개가 걷히고 산정호수와 그
주변의 첩첩 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만학천봉이다. 명성산에서 이런 경치를 볼 줄을,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다고를
상상하지 못했다. 이러니 내 어찌 산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산행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예감한
그 셋째다.
신석정(辛夕汀, 1907~1974)의 「산을 알고 있다 」라는 시의 일부다. 마치 이곳 명성산을 두고 읊은 시 같다.
“산은 어찌 보면 운무(雲霧)와 더불어 항상 저 아득한 하늘을 연모(戀慕)하는 것 같지만 오래 오래 겪어온 피 묻은
역사의 그 생생한 기록을 잘 알고 있다.
산은 알고 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그 기나긴 세월에 묻어간 모든 서럽고 빛나는 이야기를 너그러운 가슴에
서 철철이 피고 지는 꽃들의 가냘픈 이야기보다도 더 역력히 알고 있다.
산은 가슴 언저리에 그 어깨 언저리에 스며들던 더운 피와 그 피가 남기고 간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마련하는 역사
와 그 역사가 이룩할 줄기찬 합창소리도 알고 있다. 산은 역력히 알고 있는 것이다.”
우회로 마다 하고 굳이 봉봉을 올라가서 보고 또 본다. 동쪽 조망은 장릉인 한북정맥에 가려 매우 단순하다. 남쪽과
서쪽 조망이 섬세하여 볼만하다. 이때는 비도 멎었다. 걸음걸음 아껴 걷는다. 894m봉 넘고 본격적인 억새평원이다.
억새는 비에 잔뜩 움츠러들었다. 볼품이 없다. 어제 13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억새축제라고 한다. 오늘은 오가는
사람이 드물다.
억새평원 한 가운데로 데크로드롤 설치했다. 데크로드를 따라 내리다가 잠깐 올라 삼거리 팔각정이다. 어디로 갈까
망설인다. 억새평원 궁예약수터로 가서 산릉을 지나 등룡폭포 쪽으로 갈 것인가. 그러면 불무산, 은장산을 비롯한
조망이 막히고 책바위 옆 암벽을 볼 수 없다. 멀지만 책바위 쪽으로 가서 내렸다가 등룡폭포를 보러 가기로 한다.
능선을 계속 간다. 산이 변했다. 예전에 비지땀을 흘리며 기어서 오르내렸던 바윗길을 데크계단으로 덮어버렸다.
재미없는 길이다. ┣자 갈림길 직진은 막혔다. 오른쪽이 비선폭포(1.2km) 가는 길이다. 협곡 가파른 너덜 길을 핸드
레일 붙잡고 내리면 책바위다. 그 책갈피로 데크계단을 놓았다. 무척 길다. 계단마다 경점이다. 여우봉, 관음봉,
불무산 등이 어느덧 준봉으로 변했다. 데크계단을 다 내리면 책바위 안내판이 나온다. 여기서 흐릿한 인적을 쫓아
오른쪽 사면을 약간 돌아가면 거대한 암장을 바라볼 수 있다. 다가간다. 허탕이다. 늦가을이나 겨울에 왔을 때는 그
장려한 모습이 잘 보였는데, 오늘은 무성한 나뭇잎에 가렸다.
서둘러 뒤돌아 내린다. 비선폭포 앞 대로다. 등룡폭포를 보러간다. 등룡폭포 쪽에서 내려오는 많은 사람들과 마주친
다. 그중 한 분을 붙들어 물었다. 등룡폭포가 볼만하더냐고. 그 분의 눈에는 그리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떻게
말할까 주저하다가 그런대로 볼만 하더라고 한다. 어정쩡한 말이다. 시시하더라고 하면 가지 않을 텐데. 등룡폭포까
지 1.6km나 된다. 왕복 3.2km다. 간다. 등룡폭포를 본 지 오래되었다. 대로라 막 줄달음한다. 데크계단 오르고
계곡을 다리로 건너기 두 차례다.
여기 비선폭포는 대폭이다. 멀리 떨어진 계곡에서 소리치며 유혹하지만 곁눈질만 하고 지나친다. 돌길 이슥 올라
등룡폭포다. 관폭대 아래로 내려가서 정면 가까이서 바라본다. 미끈하다. 높고도 넓은 암벽에 기다랗게 비단 한 폭
을 걸어 놓은 것 같다. 등룡폭포는 2단이다. 그 상단을 보려고 데크계단을 오른다. 상단 폭포도 장관이다. 그런데
등룡폭포는 데크계단에서 비스듬히 바라볼 때가 등룡의 모습이다. 오늘 산행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예감한 그
넷째다.
등룡폭포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 바로 보고 옆에서도 본다. 한 가지 흠은 계류가 탁한 것으로 승진훈련장에서
전차들이 일으킨 흙탕물 때문이다. 하산. 그간 바빴던 발걸음을 늦추니 비로소 가을이 보인다. 가을 속을 걷는다.
29. 앞은 여우봉
30. 불무산
31. 아래는 산정호수
32. 왼쪽은 불무산, 멀리 오른쪽은 은장산, 앞은 대유몽베르컨트리클럽
34. 멀리 오른쪽은 은장산
35. 멀리 가운데는 매봉, 깃대봉, 앞은 여우봉
36. 앞은 망무봉, 멀리 가운데는 불무산
37. 앞은 승진훈련장, 대전차와 공급합동훈련장이라고 한다. 맨 뒤는 응봉과 화악산(오른쪽)
38-1. 명성산 팔각정 주변 억새평원
38-2. 멀리 가운데 왼쪽은 명지산, 앞은 여우봉
39. 책바위 데크계단 내리면서 정면으로 바라본 산릉
40. 등룡폭포 하단
42. 아래 비선폭포 하단
첫댓글 가을비 내리는 산길 너무 쓸쓸했었을 듯 싶네요. 그래도 4가지 즐거움을 찾으셨으니 축하드립니다. 특히나 산길에서 우연히 만나신 친구는 더욱 반가웠겠습니다.
명성산은 자주쓴풀 보는 즐거움이 가득한 산길이었습니다.
적조했던 홀로 산꾼인 악우를 산에서 만나다니 무척 반가웠지요.
홀로 먼 길을 가셨습니다. 명성산 억새는 웬지 더 쓸쓸한 것 같네요. 오래 전에 강풍이 불던 날에 홀로 억새밭 올라가다가 외로움에 눈물 떨군 적도 있었지요...
이영도 시인의 '한결 외로움도 보밴양 오붓하고' 그랬습니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날이 저물어지니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홀로 가을비를 맞으며 만족한 산행을 하셨군요...억새를 보러가셨는데 사진에는 보이질않네요,,후반부에 날이 개서 다행입니다...우리는 비를 피하려고 가평으로 갔는데 거기서도 종일 비맞이 산행했네요^^
억새를 보러 갔는데, 억새도 비가 내리니 잔뜩 움츠러들었더군요.
억새축제가 무색했습니다.^^
가을산들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특히나 명성산은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홀로산행 고생하셨습니다. 구경 잘 했습니다.
淹留非不佳 但恐日易夕
머물러 놀고 싶으나 날이 저물까 걱정하는 산꾼들이 생각나네요.... ㅎㅎㅎ
억새 보러 갔다가 그 대신 풀꽃과 조망으로 분에 넘치게 벌충한 산행이었습니다. ^^
자주쓴풀 만난지 오랜데 여기에 있구만요
요즘 무슨 약 드시는지 갈수록 준족이십니다 ㅎ
등로주의자이시고 이 분야 교수님께서 자주쓴풀을 만난 지 오래라시니, 제가 본 건 행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