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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유리짱!"
하고 그가 건너편을 향하여 부르자 바다만 바라보고 있던 그는 손수건으로 고요히 눈물을 씻으면서 이쪽을 향하였다. 얼굴 모습은 똑똑히 안 보였으나 흐트러진 머리, 눈물에 이지러진 분기가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이쪽에는 아무 관심도 안 가지고 또다시 바다를 향하였다.
"아노히도이쓰데모 나이데박까리이루노요.“
다마짱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가 약 일주일 전에 이 카페에 왔다는 것, 카페 여급으로는 처음이라는 것, 따라서 손님 접대에 능란치 못하다는 것, 그의 과거에 대하여서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 언제든지 혼자 눈물만 흘린다는 것……을 대충대충 추려서 이야기하였다.
그의 태도로 보나 이 이야기로 보나 센티멘탈한 부르주아 소녀가 아닐 것이매, 그 역 남과 같은 밝은 인생을 살아오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디로부터 흘러오고 장차는 어디로 흘러갈 슬픈 인생인가. 흐르고 흐르고……모두 똑같은 운명이로구나 하고 생각할 때에 서로 알지 못하는 그와 나와지만 나는 나에게로 기울어지는 한 조각의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멀리 방랑의 길을 떠나려는 이 마지막 날에 깊은 인생을 이해하는 듯한 그와 이야기라도 한마디 건너보고 싶었다.
"유리꼬상!“
나는 마침 그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명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대답을 못 얻은 나는 열적어서 그만 침묵하여 버렸다.
그러자 이 고요하던 카페는 새 손님을 맞아들이자 잔잔하던 공기를 깨트렸다. 정복한 일인 순사 한 사람과 형사인 듯한 사복한 사나이가 거칠게 문을 밀고 들어왔다. 정복 순사가 카페에 온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고 하기에 나는 문득 우리 세 사람 위에 무슨 불행이나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좋지 못한 첫 느낌을 받았다. 벼르고 벼르던 ‘해삼위행’이 또 깨어지나보다 하는 불안에 떨었다.
"단나와도꼬다?"
사복한 사나이는 이렇게 소리치더니 저 혼자 서슴지 않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방안을 자세히 휘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일은 일어나고야 말 형세였다. 우리는 속히 그 자리를 떠나려 하였으나 일이 벌써 이렇게 된 이상 그것은 더욱 불리할 듯하였다. 꼼짝없이 가만히 앉아서 당할 일이 있으면 당할 수밖에는 없었다.
우리를 노리던 그는 그 시선을 건너편 유리꼬에게로 옮겼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그에게로 가까이 가더니 나중에 정신없이 생각에 잠겨있는 그의 등을 쳤다.
유리꼬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더니 기절이나 할 듯이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무엇인지 높이 소리치더니 거칠게 그를 붙들었다. 심히 놀란 듯한 유리꼬는 말없이 몸을 빼치려고 애썼다.
일을 당하는 것이 우리가 아니고 유리꼬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 우리는 적지 않은 안도를 느꼈으나 꿈꾸는 듯한 유리꼬에게 불행이 닥쳐오는 것을 볼 때에는 미안하고도 애처로웠다.
몸을 빼치려고 무수히 애쓰던 유리꼬는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3행 약) ……. 별안간 막았던 보나 터지는 듯이 높은 울음소리가 유리꼬의 심장에서 터져 나왔다. 애를 못 이기고 설움을 못 이긴 듯한 울음소리였다.
나는 곧 일어나서……(1행 약)……. 그러나 그것도 쓸데없는 무력한 의분에 지나지 못함을 깨달을 때에 나는 애달팠다.
이층에 올라갔던 사복한 사람이 황망히 내려왔다. 그의 뒤에는 단나와오까 미상인 듯한 두 양주가 공손히 따라 내려왔다. 그들은 두 양주에게 무어라고 일르더니 쓰러진 유리꼬를 잡아 일으켰다.
"사 잇쇼니유꾼다!"
필연코 밀매라도 하였거나 돈 많은 손님을 집어먹었거나 하였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싫다고 발버둥치는 유리꼬를 그들은 그 옷 입은 그대로 흩어진 머리 그대로 눈물에 젖은 얼굴 그대로 그를 끌어냈다.
눈물에 젖은 그의 얼굴! 나는 이제야 그를 똑똑히 보았다. 나의 시선은 잠시간 그의 얼굴에 못 박았었다. 그리고 두 번째의 찰나의 죽음!이 있었고 놀람과 동요의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유리꼬 ——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계순이었다. 기모노를 입은 계순이었다.
나는 그에게로 달려들어 나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벌써 그는 문밖까지 끌려 나간 뒤였다. 그 역시 나를 보지는 못하였다. 그것이 운명이었다.
폭풍우나 지난 뒤 같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모르는 나는 잠시 술집주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이야기에 의하면 유리꼬는 일주일 전에 서울서 도망 온 여자였다. 집이 가난하여서 어떤 사나이에게 ‘팔려’ 갔다가 난폭한 그 사나이에게 버림을 받자 두 번째 ××××에게로 ‘팔려’ 갔었다. 그러나 그가 징글징글하고 몹시도 싫어서 마침내 그 집을 벗어나서 멋대로 도망하여 왔던 것이다.
생각하지 말자 접촉하지 말자 하던 계순의 운명에 또 다시 이렇게 스친 것을 나는 슬퍼하였다. 무슨 몹쓸 운명의 장난인가.
계순의 애처로운 마지막 자태가 문득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전에 없던 애착을 이제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리고 그의 집안에 대하여서도 생각났다. 삼년 전에 보았던 그 집안은 지금 어떻게나 되었을 것인가. 뒷골목의 반찬가게 초가집, 그의 어머니 아버지, 나중에 단 하나의 외딸까지 이렇게 ‘팔아’먹게 된 그들의 몰락의 과정이 눈앞에 역력히 비치는 듯하였다.
계순의 자태가 또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나의 정신은 혼란하였다. 나로서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지를 몰랐다. 그의 뒤를 좇아가 볼까.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그를 건지기에는 나는 너무도 무력하였다. 그리고 내일은 동무와 같이 해삼위로 떠날 날이다. 나는 미래에 대한 큰 뜻이 있다. 그 뜻을 위하여서는 나갈 대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만 그에 대하여서는 마음으로부터 미안한 생각을 억제할 수 없었다.
동무들에게 끌려 카페를 나와 저물어가는 해안을 걸어가는 나의 마음속에는 우울의 구름장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3]
바다와 항구와 거리를 헤매이고 헤매이고……나는 넓은 세상과 수많은 인간 생활을 활연히 해득하였다. 짓시달린 심장에는 굳은 결심이 못박였다. 마침내 나는 새빨간 피의 전부를 바쳐서……몸을 던졌다. 여름도 차차 늙어가는 작년 구월 ××총동맹의 위원의 한 사람인 나는 어떤 사건의 조사의 책임을 지고 하얼빈까지 갔었다.
의외에도 일은 쉽게 끝나고 예정보다는 이틀의 여유가 있었다. 동지 박군과도 오래간만에 만났고 나에게 하얼빈은 처음 길이기도 하기에 나는 박군의 안내를 받아 하얼빈의 사생활을 자세히 구경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마침 나는 크고 작은 거리거리도 구경하고 로서아 사람 많이 사는 유명한 키타이스카야 거리의 마굴도 엿보았다. 보드카에 취하여도 보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계집 소니야도 알았다. (소니야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밤의 하얼빈은 더한층 아름다운 도회였다. 깊은 어둠 속에 총총히 박힌 무수한 등불이 하늘의 별과 연하여 보였다. 그날 밤에도 박군과 헤어진 나는 보드카의 취흥을 못 이겨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승가리(松花江[송화강]) 연안을 거녔다. 아름다운 하얼빈의 야경과 승가리강을 불어 건너오는 싸늘한 바람에 무상의 쾌감을 느끼는 나는 강 연안을 거닐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조그만 중국사람 거리로 발을 옮겨 놓았다.
얕은 집, 수많은 노점(露店), 바퀴 작은 수레, 불유쾌한 취기……어느덧 나는 강 연안을 벗어져 나서 중국인 거리의 복판까지 들어갔었다. 야경은 해삼위보다 낫고 복잡하기는 상해에 어림없고 아름답기는 청도에 몇 층 떨어지고 번화하기는 서울의 몇 곱절이고……이렇게 막연히 하얼빈을 비평하면서 취흥에 끌린 나는 그칠 바를 모르고 거리에서 거리로 몽유병자같이 자꾸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함부로 걷는 동안에 길을 어떻게 들었는지 나중에 나는 조그만 알지 못할 거리에까지 갔었다. 등불도 없고 인기척도 없는 어둡고 고요한 거리였다. 그 거리를 굽어서 더욱 작은 거리로 몇간 걸어가자 나는 지붕도 없고 처마도 없는 석유통같이 네모지게 짠 괴상한 집이 졸로리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중 몇 집만은 문이 열려 있고 그 안에서 행길로 향하여 희미한 등불이 흘러나왔다.
흐릿한 정신에도 괴상한 느낌을 받았다.
"빈민굴이로구나!“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세상에 도회 쳐놓고 빈민굴 없는 곳이 없다. 굉장한 돌집이 즐비하여 있는 그 반면에 반드시 쓰러져 가는 빈민굴이 숨어 있으니 이 뼈저린 대조를 현재의 도회는 모두 보이고 있다. 하얼빈의 빈민굴은 또한 어떠한 것인가를 보아 두어야 할 것이매 나는 늘어 있는 집 앞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희미한 등불이 흘러나오는 집 문간에까지 가까이 가 안을 흘끗 엿본 나는 그 자리에 장승같이 서버리고 말았다.
그 속은 한 간의 방이었다. 방안에는 높직한 단이 있고 단 위에는 자리와 요가 펴있었다. 그 위에 젊은 중국 여자가 두 다리를 뻗고 음란히 앉아 있었다. 두 팔을 드러내 놓고 새파란 중국복에 싸인 젊은 여자였다.
그는 나를 보았는지 이쪽을 향하여 웃음을 던지면서 손짓을 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두 다리를 안으로 쪼그리고 두 팔로 옷을 걷어 올리더니 발가벗은 하반신을 서슴지 않고 나타내 보였다. 새파란 옷과 희미한 등불에 비쳐 그것은 마치 신비로운 황홀의 연못 그것으로 보였다. 백설 같은 현란한 감각에 현기를 느끼는 나는 정신없이 몽롱이 서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두 사람의 거한이 비틀걸음을 치면서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음란하게 여자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느결엔지 판장문이 덜컥 닫히고 문 잠그는 쇠 노래가 들려왔다.
"마굴이다!"
나는 그것이 빈민굴이 아니고 마굴임을 깨달았다. 전율할만한 마굴 —— 그 속에서는 어떤 무서운 죄악이 일어나는지도 생각할 새 없이 한번 불 지른 이상 타오르는 새빨간 관능의 불길에서 나는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었다. 아직까지도 몽롱이 서 있던 나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몇 간 건너 역시 행길로 향하여 희미한 등불이 흘러나오는 그곳으로 발을 옮겨 놓았다. 똑 같은 방안에 똑같이 차린 중국 소녀가 앉아 있었다. 새파란 옷, 흰 팔, 눈부신 감각……나는 아무것도 반성할 여유 없이 서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룻밤에 몇 놈이나 거친 사나이에게 부대끼는지 젊은 중국 소녀는 피로할 대로 피로한 듯이 손님이 들어가도 머리도 들 생각하지 않고 나른히 앉아 있었다. 아까의 소녀와 같은 난잡한 추태도 지어 보이지는 않았다. 너무도 잠잠한 그의 태도에 나는 기가 빠졌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들어온 이상 염치불구하고 그의 옆에 가 주저앉으면서 전신을 그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두 팔로 그의 목을 걸어 졸고 있는 듯이 숙인 그의 얼굴을 번쩍 들었다.
"응?“
순간! 나의 전신은 화석하여 버린 듯하였다.
놀람, 의혹, 동요의 회오리바람이 세 번째 또 불었다.
그 회오리바람이 지나가자 그의 목에 걸었던 나의 두 팔은 힘없이 떨어져버렸다.
눈의 착각이나 아닌가 하여 나는 눈을 비비고 또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주기조차 깨어 버린 나의 인식에는 한 점의 틀림도 없었다. 확실히 그였다.
무슨 괴이한 인연인가. 멀고 먼 외국의 밤 낯모르는 도회의 어두운 이 한 귀퉁이에서 그를 또다시 이렇게 만날 줄야 꿈엔들 생각하였으랴.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항상 그런 괴이하고 심술궂은 트릭을 좋아하는 얄미운 계집아이 같다.
"무슨 인연입니까 네 계순씨!“
풀죽은 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나를 힘있게 붙들었던 그는 말없이 나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쳐 울 따름이었다.
어디서인지 돌연히 몇 사람의 거친 호인이 몰려 들어왔다.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가 그들에게서 흘러왔다. 그들의 침입에 나는 적지 아니 놀랐다.
"오늘 저녁 이 조선 계집애는 내 차지다.“
그 중의 한 자가 술김에 똑똑지 못한 청어로 이렇게 지껄이면서 나를 무시하여 버리고 쓰러져 있는 계순의 등을 잡아 일으켰다. 잇대어 또 한 놈이 비틀비틀 달려들었다.
나는 크나큰 모욕과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계순이를 보호하여야 할 의무까지 느꼈다. 그 자리에 일어서서 아무 분별 없이 나는 그에게 달려드는 놈의 팔을 뿌리치고 주먹을 하나 앵겼다.
세 놈이 무서운 기세를 가지고 일제히 나에게 달려들 형세이었다. 나 한 사람과 장대한 세 사람의 거한과, 물론 나는 능히 당할 바가 아니었다. 계순이는 나의 팔을 붙들면서 말렸다. 그러자 문득 나는 뒤에 서 있는 장승같이 후리후리한 사나이를 발견하였다. 그런 속을 짐작하는 나는 눈치 빨리 주머니 속에서 집어낸 몇 장의 지폐를 그 사나이의 손에 얼른 쥐어 주었다.
그 사나이는 나에게 만족한 듯한 웃음을 보이고 높이 호령을 하더니 세 놈을 밖으로 좇아냈다. 그리고 자기도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우리는 겨우 안심하고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안존한 마음으로 그렇게 대면하여 앉기는 낙원동 여관서의 작별 후 꼭 십년 만이었다. 나는 전무후무 처음으로 그의 손을 잡아 보았다. 그 역시 그의 생전 처음으로 나에게 몸을 의지하였다. 이제는 피차에 부끄러운 마음도 아무것도 없었다. 산 설고 물 설은 이역에 와 있는 외로운 두 개의 혼이었다. 우리는 벌써 살 파는 사람, 살 사러 들어온 사람은 아니었다.
그 경지를 높이 초월한 두 개의 고결한 영혼이었다.
그에게 대하여 나는 이제 전에 없던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욕심 많은 한 개의 사나이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오빠나 어머니로서의 위대한 사랑이었다. 나는 오빠의 사랑을 가지고 그를 안았다. 그는 어머니에게나 안기는 듯이 나를 신뢰하였다. 외로운 땅에 와 어머니의 사랑에도 많이 주렸을 것이다.
어머니 —— 어머니라면 대체 그의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외딸을 이렇게 버려 놓고 망쳐 놓지 않으면 안 된 그의 어머니를 나는 물어 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새롭게 용솟음쳤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한마디를 말하였다.
"죽었는지 살었는지도 몰라요.“
"……“
그러면 대체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모를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더 물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한시라도 속히 둘이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를 그 이상 그대로 그 무서운 곳에 버려둘 수는 없다. 어머니를 찾든지 새 생활을 도모하든지 어쩌든지 서울까지라도 같이 데리고 가야할 것이다 고 나는 결심하였다.
"자, 이대로라도 속히 나와 같이 갑시다.“
"네, 가다니요!"
그는 놀라서 거절하였다. 그리고 마굴 안의 무서운 제도와 호인의 포악무도한 제재를 대강 이야기하였다. 만약 들키면 두 사람의 생명이 위태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를 설유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주인의 양해를 얻어서 요구하는 대가로 그의 몸을 빼내려고까지 계획하였을 때에 계순이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한참이나 있다가 그는 극도의 절망한 태도로 서슴지 않고 두 팔을 걷어 보였다. 가련한 일이었다. 두 팔, 어깻죽지 할 것 없이 흰 살 위에는 무서운 자색 반점이 군데군데 솟아 있었다. 감염된 외국인의 독한 병독으로 하여 젊은 살이 점점 썩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놀랐다. 그러나 침착한 태도로 그를 위로하고 굳은 결심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일찍이 상당한 액을 변통하여 가지고 와서 주인과 담판하여 모든 일을 결정하기로 굳게 약속하여 놓고 그곳을 나왔다. 번잡하던 도회는 고요히 잠들고 이역의 밤은 깊었다. 취중에 정신없이 헤매이던 거리지만 맑은 정신에는 극히 단순한 거리였다. 나는 손쉽게 거리거리를 빠져서 마침내 밤 이슥히 박군의 숙소를 찾았다.
경성행을 하루 동안 연기하기로 하고 이튿날 아침 일찍이 나는 박군의 호의로 상당한 금액을 수중에 차고 박군과 같이 어젯밤 그곳을 찾아갔다.
수면 부족으로 흐린 나의 머리 속에는 전날 밤 일이 마치 필름같이 전개되었다. 생각하고 생각하여도 계순의 이때까지 운명이 너무도 참혹하였다. 그러나 생활이란 항상 ‘이로부터다’. 이로부터 사람답게 뜻있게 살아간다면 그만 아닌가. 나는 모든 것을 억지로라도 밝게 생각하려 하였다.
승가리강을 옆으로 끼고 어제 걷던 거리거리를 찬찬히 찾아 내려가면서 결국 그곳까지 갔었다.
석유통같이 네모로 짠 집들, 그것은 낮에 보니 더한층 참담한 것이었다. 그 속에 계순이가……모두 거짓말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라면 오죽이나 좋으랴.
아직 문이 닫힌 집도 있고 열린 집도 있었다. 우리는 몇 집을 거쳐 놓고 그것인 듯 짐작되는 집 앞까지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좁은 방안에 이삼 인의 호인이 들어서서 황망한 태도로 무엇인지 수군수군 의론하고 있었다. 우리의 들어감을 보고 그들은 깜짝 놀라 일제히 이쪽을 향하였다. 그 중의 후리후리한 사나이는 주인인 듯한 어젯밤의 그 사나이였다.
나는 그들을 헤치고 들어가서 무엇보다도 먼저 단 위의 계순이를 찾았다. 이불을 푹 쓰고 있는 그는 아직까지 잠자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단 위에 올라가서 그를 깨웠다. 후리후리한 사나이는 나를 붙들면서 만류하는 듯하였다. 그것도 불구하고 나는 깨웠다. 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잠은 너무도 깊이 들었었다. 너무도 깊이 —— 영원히 깊이.
나는 황망하였다. 정신이 산란되었다. 다시 흔들고 흔들었으나 맥은 이미 끊어졌고 전신은 싸늘하였다. 핼쑥한 얼굴을 들여다 보았을 때에 나의 가슴은 무너지는 듯이 비통하였다.
"계순이 계순이!"
뜨거운 눈물에 세상이 캄캄하여졌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물 사이로 나는 그의 머리맡에 놓인 조그만 약병과 한 장의 글발을 발견하였다. 나에게 주는 유서였다. 눈물을 뿌려 가면서 나는 그것을 내려 읽었다.
”찬호씨 놀라지 마세요. 경솔하다고 책하지 마세요. 저의 취할 길은 이밖에는 없었습니다. 이 몸을 가지고 어데 가서 무슨 새 생활을 꾸며 보겠습니까. 결국 일각일각 죽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니 차라리 한시라도 속히 죽어버리는 것이 편할 줄로 믿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생각에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이 밤에 저에게 보여 주신 고결한 사랑, 저는 마지막으로 사람답게 살았습니다. 아무것도 한할 것이 없어요. 다만 세상은 저에게 너무도 쓰렸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서울서 작별한 것이 마지막 작별이었습니다. 저보다도 더 불쌍한 이들이예요. 이 낯설은 땅에 와 있어도 그이들만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죽은 뒤에 뼈나 추려 주세요. 그 뼈라도 어머니의 품에 들어간다면 저에게는 더없는 기쁨이겠습니다.
- 계 순
쏟아지는 눈물을 나는 금할 수 없었다. 싸늘한 그의 얼굴을 들어 마지막으로 품에 안아 보았다. 그의 말도 옳기는 옳다마는 어젯밤에 약속까지 하여놓고서 왜 이렇게 죽는단 말인가. 낯설은 땅 이 한구석에서 이별한 지 오래인 아버지 어머니도 못 보고 반 오십의 젊은 청춘을 죽어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비참하였다.
나와 박군과 세 사람의 호인은 그를 둘러싸고 앉아서 외로운 영을 위하여 묵도를 올렸다.
비통의 눈물은 참회의 눈물로 변하였다. 반은 나의 죄라고 할까. 그러나 반은 누구의 죄인가?
빌어먹을 놈의 ××이다. 어금니로 바작바작 씹고 씹고 또 씹어도 시원치 않을 놈의 ……이다. 나의 새빨간 심장에는 무서운 저주와 굳은 신념의 연륜이 또 한 바퀴 새겨졌다.
이 새빨간 염통이 두 조각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맺히고 맺힌 원한만은 풀어 주고야 말 것이다. 그의 영시 앞에 고개 숙이고 앉은 나는 마음속 깊이 그의 외로운 영혼과 맹서 지었었다.
❊조선지광 1929. 6
<재편집: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