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활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 `먹고 자고 싸는' 것일 것이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는 대체로 먹고 자는 것은 고상한 취급을 받는 데 비해, 싸는 것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싸는 것은 더럽다'는 관념이 아직 뿌리깊게 남아 있고, 이런 관념이 화장실의 불결함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 아직 한국의 수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적어도 일본의 화장실 문화를 보면, 일본에서는 싸는 것도 먹고 자는 것에 손색없을 만큼 대접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 화장실의 특색
우선 일본의 화장실은 공중화장실이건 개인 화장실이건 업소용 화장실이건 깨끗하다. 물론 내가 가본 몇몇 공중화장실은 한국과 다름없이 더러운 곳도 있었다.
예를 들면, 에도가와바시공원의 공중화장실에는 `공명당과 경찰을 죽여버리라'는 공산당원인 듯한 사람이 쓴 벽서와 여자의 성기를 그린 음탕한 낙서가 있었고, 외국인이 많이 왕래하는 롯폰기의 한 공중화장실에는 `양키 고 홈'이라는 영어 낙서도 씌여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예외적인 일이고, 대체로 공중화장실도 깨끗하게 유지, 관리되고 있다.
한 예로, 학교 화장실을 보면 한국과 일본 화장실의 청결도의 차가 금세 드러난다.
지난해 겨울의 일이다. 일본의 한 어린이신문사 기자가 한국인으로서 일본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집에 찾아온 적이 있다. 그 기자가 우리 집 아이들에게 `한국과 일본의 학교를 다녀보면서 차이가 나는 것을 얘기해달라'고 하니까, 우리집 아이가 번쩍 손을 들더니 "화장실요. 한국 학교의 화장실은 더러운데 일본 학교의 화장실은 깨끗해요"라고 말해 약간 얼굴이 화끈한 적이 있었다.
실제, 나도 일본 초등학교의 화장실을 가봤는데, 밝고 냄새가 나지 않고 깨끗해서 거의 호텔 수준으로 느껴졌다. 아이들 말을 들어보면, 한국에서는 변이 마려워도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을 내려도 물이 내려오지 않아 변이 내려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초등학교도 애초부터 그렇게 깨끗한 곳이 아니었던 듯하다. 언젠가 화장실 개선에 힘을 쓴 한 초등학교 교장의 신문 투고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교장은 "더럽고 어둡고 냄새나는 이미지의 화장실을 밝고 깨끗한 분위기로 바꿨더니,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지고 명랑해지더라"고 자랑을 했다.
한국에서도 한번 실험해 볼 일이다. 그러나, 화장지를 살 예산도 없어 1달에 1번씩 아이들에게 화장지를 사오라고 하는 게 한국 공립초등학교의 현실인 점을 보면, 쉽게 개선될 일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일본 화장실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가정의 화장실인데 한국의 경우에는 고급주택도 화장실과 욕실세면대가 분리되지 않고 한 공간에 설치돼 있는 데 비해 일본의 경우는 화장실과 욕실, 세면대가 서로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좁은 공간을 활용해야 하는 호텔이나 오피스 건물 등은 우리처럼 화장실과 욕실 세면대가 일체화돼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의 화장실이 독자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추측을 해보건대 매일처럼 목욕이나 샤워를 하는 일본인들의 생활습관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자주 목욕을 해야하는 만큼, 화장실과 목욕탕을 분리하는 게 번거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나에게도 두 공간이 분리돼 있기 때문에 느끼는 편안함이 있다. 목욕탕이나 빨래, 세면 등의 수요가 화장실까지 미치지 않아 화장실에 앉아서 신문이나 책을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자원의 낭비도 고려
일본의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수세식 변기에 대변용과 소변용의 손잡이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변기의 손잡이의 왼쪽에는 대, 오른 쪽에는 소가 써있어 대 쪽으로 손잡이를 움직이면 물이 많이 쏟아지고 소 쪽으로 돌리면 물이 적게 쏟아지게끔 작동된다.
한국에서는 대변이든 소변이든 손잡이가 하나여서 와장창 물이 쏟아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나도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이 너무 물 낭비라고 생각해 변기의 물통에다가 벽돌을 넣어서 쓴 적이 있다.
이런 방식을 쓰면 이전보다 물 낭비를 줄일 수는 있지만, 대변이든 소변이든 물의 사용량이 변하는 것이 아님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번은 어떻게 한 손잡이의 방향만 바꿔 물의 량을 대소를 조절하는가 궁금해 물통을 열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너무나 간단했다.
손잡이와 물을 막고 있는 마개를 연결하는 선을 대각선으로 이어놨을 뿐이다. 그래서 손잡이를 한쪽으로 당기면 마개가 열리는 시간이 길어지게 하고, 반대쪽으로 하면 마개가 열리는 시간을 단축하게 해 물이 적게 쏟아지도록 한 것이다.
더구나, 쏟아진 뒤 채워지는 물도 물통 위에 거꾸로 된 유자형 파이프를 통해 흘러들게 해 손을 씻도록 고안해 물을 최대한 아끼도록 해놨다. 한국의 경우도 일본보다 물이 풍부한 나라도 아닌데, 이런 간단한 조작의 상품이 왜 안나오고 있을까 궁금하다. 한 가정에서 이런 식으로 물을 절약하면, 그 양이 엄청난 양이 될 텐데 말이다.
최근에는 일본의 가정의 화장실은 대체로 보온 깔판과 비데가 되는 장치가 돼 있다. 엉덩이 닿는 곳이 차서 천 커버를 씌우고 앉는 시대가 일본에서는 서서히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다 한참 앞서가는 일본의 화장실 문화나 시설을 보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본 구봉서 주연의 `수학여행'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외딴 섬에 사는 학생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와서 겪는 일에 대한 영화인데, 그곳의 학생들이 서울의 한 가정에 홈스테이를 하면서 화장실이 방인지 알고 자는 모습이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한국도 일부 시민단체들이 2002 한-일 공동월드컵 축구대회를 계기로 화장실 문화를 개선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부디, 어느 나라사람이 언제 어디를 가서라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즐겁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문화와 시설이 갖춰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