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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연암 박지원>
* 사상적 배경 : 실사구시(實事求是)
* 성격 : 풍자적
* 풍자대상 : 무위도식하는 무능한 양반, 분수없이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상인계층
* 특징
1. 몰락 양반의 위선적 행동을 묘사
2. 평민 부자의 새로운 인간형 제시
3. 실사 구시의 실학사상을 반영함
4. 양반의 전횡을 풍자적으로 비판함
* 주제 : 양반들의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생활에 대한 비판과 풍자
* 출전 : 방경각외전
● <양반전> 본문 읽기
양반이란 사족(士族)들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정선군에 한 양반이 살았다. 이 양반은 어질고 글읽기를 좋아하여 매양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으레 몸소 그 집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 양반은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고을의 환자(봄에 빌린 곡식을 가을에 갚던 일)를 타다 먹은 것이 쌓여서 천 석에 이르렀다. 강원도 감사가 군읍(郡邑)을 순시하다가 정선에 들러 환곡(還穀-고을 사창에서 백성에게 곡식을 꾸어주던 제도)의 장부를 열람하고는 대노해서
"어떤 놈의 양반이 이처럼 군량(軍糧)을 축냈단 말이냐?"
그러나 가난해서 갚을 힘이 없는 것을 딱하게 여기고 차마 가두지 못했지만 무슨 도리도 없었다. 양반 역시 밤낮 울기만 하고 해결할 방도를 차리지 못했다. 그 부인이 역정을 냈다.
"당신은 평생 글 읽기만 좋아하더니 고을의 환곡을 갚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군요. 쯧 쯧 양반, 양반이란 한푼어치도 안 되는 걸."
그 마을에 사는 한 부자가 가족들과 의논하기를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늘 존귀하게 대접받고 나는 아무리 부자라도 항상 비천하지 않느냐. 말도 못하고, 양반만 보면 굽신굽신 두려워해야 하고, 엉금엉금 가서 하정배(下庭拜-신분이 낮은 사람이 양반을 뵐 때 뜰 아래에서 절하던 일)를 하는데 코를 땅에 대고 무릎으로 기는 등 우리는 노상 이런 수모를 받는단 말이다. 이제 동네 양반이 가난해서 타먹은 환자를 갚지 못하고 아주 난처한 판이니 그 형편이 도저히 양반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장차 그의 양반을 사서 가져 보겠다."
부자는 곧 양반을 찾아가서 자기가 대신 환자를 갚아 주겠다고 청했다. 양반은 크게 기뻐하며 승낙했다. 부자는 즉시 곡식을 관가에 실어 가서 양반의 환자를 갚았다. 군수는 양반이 환곡을 모두 갚은 것을 놀랍게 생각해 몸소 찾아가서 양반을 위로하고 또 환자를 갚게 된 사정을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양반이 벙거지를 쓰고 짧은 잠방이를 입고 길에 엎드려 '소인'이라고 자칭하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지 않는가.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부축하고
"귀하는 어찌 이다지 스스로 낮추어 욕되게 하시는가?"
하고 말했다. 양반은 더욱 황공해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엎드려 아뢴다.
"황송하오이다. 소인이 감히 욕됨을 자청하는 것이 아니오라, 이미 제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았습지요. 동리의 부자가 양반이올습니다. 소인이 이제 다시 어떻게 전의 양반을 모칭(冒稱-성명을 거짓으로 꾸며댐 )해서 양반 행세를 하겠습니까?"
군수는 감탄해서 말했다.
"군자로구나 부자여! 양반이로구나 부자여! 부자이면서도 인색하지 않으니 의로운 일이요, 남의 어려움을 다급하게 여기니 어진 일이요, 비천한 것을 싫어하고 존귀한 것을 사모하니 지혜로운 일이다. 이야말로 진짜 양반이로구나. 그러나 사사로 팔고 사고서 증서를 해 두지 않으면 송사(訟事)의 꼬투리가 될 수 있다. 내가 너와 고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를 증인 삼고 증서를 만들어 미덥게 하되 본관이 마땅히 거기에 서명할 것이다."
그리고 군수는 관부(官府)로 돌아가서 고을 안의 사족(士族) 및 농공상(農工商)들을 모두 불러 동헌뜰에 모았다. 부자는 향소(鄕所-군현의 수령을 보좌하던 기관)의 오른쪽에 서고 양반은 공형(公兄)의 아래에 섰다. 그리고 증서를 만들었다.
<1차 양반 매매 증서>
건륭(乾隆- 청나라 연호.1745년. 영조 21년) ) 10년 9월 모일에 이 문서를 만드노라.
몸을 굽혀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으니 그 값은 천석이다. 양반은 여러 가지로 일컬어지나니 글을 읽으면 사(士)라 하고 정치에 나아가면 대부(大夫)가 되고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이다. 무반(武班)은 서쪽에 늘어서고 문반(文班)은 동쪽에 늘어서는데 이것이 양반이니 너 좋을 대로 따를 것이다. 야비한 일을 딱 끊고 옛날을 본받고 뜻을 고상하게 할 것이며, 늘 오경(五更-새벽 3시~5시)만 되면 일어나 유황에다 불을 당겨 등잔을 켜고서 눈은 가만히 코끝을 보고 발꿈치를 궁둥이에 모으고 앉아 동래박의(東萊博義)를 얼음 위에 박 밀듯 왼다. 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뎌 입으로 구차스러움을 남에게 말하지 아니하되 고치탄뇌(叩齒彈腦-이를 마주치고 머리를 두드림. 옛날 선비들이 하던 체조)를 하며 입안에서 침을 가늘게 내뿜어 연진(嚥津)을 한다. 소매자락으로 모자를 쓸어서 먼지를 털어 물결무늬가 생겨나게 하고, 세수할 때 주먹을 비비지 말고, 양치질을 지나치게 말고, 소리를 길게 뽑아서 여종을 부르며, 걸음을 느릿느릿 옮겨 신발을 땅에 끈다.
그리고 고문진보(古文眞寶), 당시품휘(唐詩品彙)를 깨알 같이 베껴 쓰되 한 줄에 백 자를 쓰며, 손에 돈을 만지지 말고, 쌀값을 묻지 말고,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밥을 먹을 때 맨상투로 밥상에 앉지 말고, 국을 먼저 훌쩍 떠 먹지 말고, 무엇을 후루루 마시지 말고, 젓가락으로 방아를 찧지 말고, 생파를 먹지 말고, 막걸리를 들이켠 다음 수염을 쭈욱 빨지 말고, 담배를 피울 때 볼에 우물이 파이게 하지 말고, 화 난다고 처를 두들기지 말고, 성을 내어 그릇을 내던지지 말고, 아이들에게 주먹질을 말고, 노복(奴僕)들을 야단쳐 죽이지 말고, 마소를 꾸짖되 그 주인까지 욕하지 말고, 아파도 무당을 부르지 말고, 제사 지낼 때 중을 청해다 재(齋)를 드리지 말고, 추워도 화로에 불을 쬐지 말고, 말할 때 이 사이로 침을 흘리지 말고, 소 잡는 일을 말고, 돈을 가지고 놀음을 말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품행이 양반에 어긋남이 있으면 이 증서를 가지고 관(官)에 나와서 변정할 것이다.
성주(城主) 정선군수 화압(花押-손으로 사인(sign)함 ), 좌수 별감 증서(證署).
양반들이 지켜야할 덕목으로서, 덕을 바르게 하기 위한 필수항목들이다. 이를 당대의 형식주의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목하여 타파의 대상으로 서술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통인이 탁탁 인(印-도장)을 찍어 그 소리가 엄고(嚴鼓-큰북) 소리와 마주치매 북두성(北斗星)이 종으로, 삼성(參星)이 횡으로 찍혀졌다. 부자는 호장이 증서를 읽는 것을 쭉 듣고 한참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양반이라는 게 이것 뿐입니까? 나는 양반이 신선 같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는 걸요. 원하옵건대 무슨 이익이 있도록 문서를 바꾸어 주옵소서."
그래서 다시 문서를 작성했다.
2차 양반 매매증서>
"하늘이 민(民)을 낳을 때 민을 넷으로 구분했다.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않고 약간 문사(文史)를 섭렵해 가지고 크게는 문과 급제요, 작게는 진사가 되는 것이다. 문과의 홍패(紅牌-문과 과거 합격증. 붉은 글씨로 쓴 데서 유래)는 길이가 2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자루인 것이다.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있는 음관(蔭官-조상의 음덕으로 얻은 벼슬)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 과거에 의하지 않고 문벌을 따라 벼슬을 내림 )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감사나 수령들이 부임할 때 받던 우산 모양의 의장)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서 기생이 귀고리로 단장하고, 뜰에는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능히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드리 붓고 머리끄뎅이를 회회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가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양반의 권세를 이용하여 호의호식하는 양반이 민생을 가렴주구하는 사례들이다. 부자는 이를 통해 양반으로서의 지위가 고작 물질적인 이익만 있는 것이고, 부자 자신이 추구했던 존귀라는 가치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부자는 증서를 중지시키고 혀를 내두르며
"그만 두시오, 그만 두어. 맹랑하구먼. 장차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인가."
하고 머리를 흔들고 가버렸다. 부자는 평생 다시 양반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다.
● 등장인물의 이중적 성격
* 양반 : 악을 행하지 않는 선량한 존재이지만, 타성에 젖은 무능한 인물이면서 본분마저 망각함
* 부자 : 인간성의 각성과 양심의 회복을 보여주지만, 양반권을 사려는 어리석은 속물주의자
● <양반전>의 시대적 배경
조선 후기의 사회는 임진, 병자 양란의 후유증 등으로 조선 전기의 엄격한 신분 질서가 동요하기 시작했으며, 상업의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발달 등으로 평민 부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국가에서는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서 돈 많은 평민들에게 일정한 돈을 받고 신분을 상승시켜 주기도 했다.
한편, 당시의 지배 관료층은 혼란한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고 공허한 명분에 얽매여 있었으며, 관료 사회의 부패 또한 극심하였다.
● <양반전> 이해하기
이 작품에 대하여 박지원은 <방경각외전>의 자서(自序)에서,
"사(士)는 천작(天爵)이니 사(士)와 심(心)이 합하면 지(志)가 된다. 그 지(志)는 어떠하여야 할 것인가? 세리(勢利)를 도모하지 않고 현달하여도 궁곤하여도 사(士)를 잃지 말아야 한다. 명절(名節)을 닦지 아니하고 단지 문벌이나 판다면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랴? 이에 <양반전>을 쓴다."
고 그 저작 경위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천작을 팔고 산 정선 양반과 상인인 부자를 풍자한 것으로 허위 부패를 폭로한 것이다.
그리고 양반전의 내용에서 보는 것처럼 처음 만든 문권(1차 양반매매증서)에 나타나는 양반의 형식주의, 두 번째 만들다가 만 문권(2차 양반매매증서)에서 볼 수 있는 양반의 비인간적인 수탈 등이 매우 구체적이고 희화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 점에 착안하여 <양반전>은 양반의 위선적인 가면을 폭로하고 봉건계급 타파를 주장한 소설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한편, 작품을 분석하여 얻은 결론은, 치부를 한 뒤 신분상승을 꾀하여 양반이 되고자 하는 정선의 한 부자가 마침 어느 몰락 양반이 당면한 극한 상황을 계기로 그 양반을 사 가지는 사건을 두고, 같은 양반 계층인 군수가 기지를 써서 이 매매행위를 파기시켜버린 골계소설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 까닭은 최초에 설정되었던 관곡 보상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뒤에 군수가 새로 이 사건에 개입한 점, 문권의 내용은 양반이 상인이 되어 지켜야 할 일들이 제시된 것이 아니고 상인이 양반이 되어 지켜야 할 것만을 요구하는 일방적인 것이라는 점, 첫째 문권은 양반이 행하는 일들의 골계적인 표현이며, 둘째 문권은 계약 파기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견해는 작가가 가진 철저한 계급의식을 감안할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이 작품은 부농이 등장하여 경제력에 의한 양반 신분 획득의 가능성이 나타나고, 관료 사회의 부정이 깊어졌으며, 몰락 양반의 비참한 모습이 드러나는 등 조선 후기의 역사적 상황이 작가의 간결한 필치로 잘 그려진 작품이다.
또한 사이사이에 끼여 있는 교묘하고 익살스러운 표현은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며, 속된 표현이라 하여 당대에 많은 비난을 받았던 이 작품은 도리어 그 표현 때문에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양반전>은 풍자문학이냐 해학문학이냐?
<양반전>을 풍자문학으로 보느냐 해학문학으로 보느냐는 단순히 작품의 성격 문제에 그치지 않고 주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양반전>이 풍자문학이라면, 그 풍자의 대상은 양반이다. 양반으로서의 명예와 위신을 저버리고 양반 신분을 팔아 생계를 연명하는 행위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해학문학으로 볼 경우에는 그 대상은 부자가 된다. 사고 팔 수 없는 신분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속물주의자의 어리석음이 군수의 기지를 통해 골계화된 것이다.
풍자문학으로서의 <양반전>은 "명예와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선비도를 상실한 양반의 타락'을, 해학문학으로서의 <양반전>은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천부(비천한 부자)의 어리석음'을 주제로 한다
참고-연암의 소설 세계 소재를 현실 생활에서 취했다는 점이다. 그 현실은 당시 자신이 속했던 양반 계층 뿐만 아니라 하류계층도 포함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간결한 문장으로 등장인물의 내면심리를 사실적으로 적어나갔다.. 근대적 성격을 지닌 소설, 그리고 고전 소설로는 드물게 단편의 소설을 지었다는 점이다.
# 본문 범은 착하고도 효성스러우며, 문채롭고도 싸움을 잘한다. 인자하고도 효성스러우며, 슬기롭고도 어질다. 씩씩하고도 날래며, 세차고도 사납다.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
그러나 비위는 범을 잡아먹고, 범우도 범을 잡아먹는다. 박(駁)도 범을 잡아먹고, 오색사자는 큰 나무가 선 산꼭대기에서 범을 잡아먹는다. 자백도 범을 잡아먹고, 표견은 날면서 범과 표범을 잡아먹는다. 황요는 범과 표범의 염통을 꺼내어 먹는다. 활(猾)은 범과 표범에게 일부러 삼켜졌다가 그 뱃속에서 간을 뜯어먹고, 추이(酋耳)는 범을 만나기만 하며 곧 찢어서 먹는다. 범이 맹용을 만나면 눈을 꼭 감고, 감히 뜨지도 못한다. 그런데 사람이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범은 두려워 하니, 범의 위풍이 얼마나 엄한가.
범이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리게 된다. 범이 한 번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가 굴각(屈閣)이 되어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산다. 굴각이 범을 남의 집 부엌으로 이끌어 들여서 솥전을 핥으면, 그 집주인이 갑자기 배고픈 생각이 나서 한밤중이라도 아내더러 밥을 지으라고 시키게 된다. 범이 두 번째로 사람을 먹으련, 그 창귀가 이올(彛兀)이 되어 범의 광대뼈에 붙어산다. 이올은 높은 데 올라가서 사냥꾼의 움직임을 살피는데, 만약 깊은 골짜기에 함정이나 묻힌 화살이 있으면 먼저 가서 그 틀을 벗겨 놓는다. 범이 세 번 째로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가 육혼( 渾)이 되어 범의 턱에 붙어산다. 육혼은 자기가 평소에 알던 친구들의 이름을 자꾸만 불러댄다.
하루는 범이 창귀들에게 분부를 내렸다.
“오늘도 해가 저무니, 어디서 먹을 것을 얻을까?"
굴각은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아까 점을 쳐보았더니 뿔 있는 놈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닌, 검은머리를 한 놈이 나왔습니다. 눈 위에 발자국이 있는데, 비틀비틀 성긴 걸음이었습니다. 뒤통수에 꼬리가 붙고, 꽁무니를 감추지 못하는 놈이었습니다."
이올은 이렇게 말하였다.
“동문(東門)에 먹을 것이 있는데, 이름은 의원(醫員)이라고 합니다. 그는 입에다 온갖 풀을 머금어서 살과 고기가 향기롭습니다. 서문에도 먹을 것이 있는데, 이름은 무당이라고 합니다. 그는 온갖 귀신에게 아양부리느라고 날마다 목욕 재계하기 때문에 고기가 깨끗합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골라서 잡수시지요."
범이 수염을 거스르고 얼굴빛을 붉히면서 말하였다.
“의(醫)는 의(疑)다. 자기도 의심스러운 처방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시험해서,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 만이나 된다. 무(巫)는 무(誣)다. 귀신을 속이고 인민들을 미혹시켜,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 만이나 된다. 그래서 뭇 사람들의 노여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금잠(金蠶)으로 화하였으니, 독이 있어서 먹을 수가 없다."
그러자 육혼이 이렇게 말하였다.
“저 숲 속에 어떤 고기가 있는데, 인자한 염통과 의로운 쓸개를 지녔습니다. 충성스러운 마음을 간직하고 순결한 지조를 품었으며, 머리에는 악(樂)을 이고 발에는 예(禮)를 신었습니다. 입으로는 백가(百家)의 말을 외우며 마음속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달했으니, 그의 이름은 석덕지유(碩德之儒)라고 합니다.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져서, 오미(五味)를 갖추어 지녔습니다."
범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침을 흘리다가, 하늘을 쳐다보고 웃으면서
“짐이 더 듣고 싶으니 어떠하냐?"
하였다. 창귀들이 다투어서 범에게 추천하였다.
“일음(一陰) 일양(一陽)을 도(道)라고 하는데, 그 유(儒)가 이를 꿰뚫었습니다. 오행(五行)이 서로 낳고 육기(六氣)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데, 그 유(儒)가 이를 이끌어 줍니다. 그러니 먹는 것 가운데 이것보다 더 맛있는 것은 없습니다."
범이 이 말을 듣고는 문득 걱정스럽게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반갑지 않은 말투로 말하였다.
“음양이라는 것은 한 기운이 죽고 사는 것인데, 그들이 둘로 나뉘었으니 그 고기가 잡될 것이야. 오행도 제 바탕이 있어서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 그들을 구태여 자(子), 모(母)로 가르고 심지어는 짜고 신 맛까지 들여서 분해하였으니, 그 맛이 순하지 못할 거야. 육기(六氣)도 제각기 행하는 것이라서 남이 이끌어 주기를 기다릴 것도 없었는데, 이제 그들이 망령되게 ‘재성(財成) 보상(輔相)'이라고 일컬으며 사사롭게 자기 공을 세우려고 한다. 그러니 그런 고기를 먹다가는 너무 딱딱해서 체하거나 구역질 나지 않겠느냐?"
정(鄭)땅의 어느 고을에 벼슬을 좋아하지 않는 선비가 살고 있었으니, 북곽선생이라고 불렸다. 나이 마흔에 손수 교정한 책이 만 권이요, 구경(九經)의 뜻을 부연해서 다시 지은 책이 일만 오천 권이나 되었다. 천자가 그의 의(義)를 아름답게 여기고, 제후들이 그의 이름을 사모하였다.
그 고을 동쪽에는 아름다운 청춘 과부가 살았는데, 동리자라고 이름하였다. 천자가 그의 절개를 갸륵하게 여기고, 제후들도 그의 어진 마음을 흠모하였다. 그래서 그 고을 사방 몇 리의 땅을 봉하여,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고 하였다. 동리자는 이렇게 수절 잘 하는 과부였지만, 다섯 아들을 둔 것이 저마다 다른 성을 지녔다. 어느 날 밤 그 아들 다섯 놈이
"강 북편에는 닭 울음소리 강 남쪽에는 별이 반짝이네 방안에서 소리가 나니 모습이 어찌 북곽선생과 아주 비슷한가?"
하였다.
형제 다섯 놈이 번갈아 문틈을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선생에게
“오랫동안 선생의 덕을 연모하였습니다. 오늘밤에는 선생님께서 글 읽으시는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라고 청하였다. 북곽선생이 옷깃을 가다듬고 꿇어앉아서 시를 읊었다.
"병풍에는 원앙새가 있고, 반딧불은 반짝이네 가마솥과 세발솥은 무얼 본따서 만들었나 흥겨워라"
다섯 아들이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예기>에 이르기를 '과부의 집 문에는 함부로 들어서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북곽 선생은 어진 이거든(그러니 이런 일이 없을 거야.)."
“내가 들으니, ‘이 고을 성문이 헐어서 여우가 구멍을 내었다'고 하던데."
“내가 들으니,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조화를 부려 사람 흉내를 낸다.[전에 올린 매구네요.ㅎㅎ]'고 하던데, 그 놈이 반드시 북곽 선생을 흉내 낸 걸 거야."
그들이 서로 이렇게 의논하였다.
“여우의 갓을 얻은 자는 천금의 부자가 되고, 여우의 신을 얻은 자는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으며,여우의 꼬리를 얻은 자는 사랑 받아서 누구든지 그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우리가 저 여우를 잡아 죽여서 나누어 가지는 게 어떨까?"
그래서 다섯 아이들이 한꺼번에 어머니의 방을 에워싸고 들이쳤다. 북곽 선생이 크게 놀라서 달아났는데, 남들이 혹시라도 제 얼굴을 알아볼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한 다리를 비틀어 목덜미에 얹고, 도깨비처럼 춤추며 도깨비처럼 웃었다. 문 밖을 나가 뛰어가다가, 그만 벌판 구덩이에 빠졌다. 그 속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붙잡고 올라와 목을 내밀고 바라보니, 이번에는 범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범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구역질하다가, 코를 막고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며
“에이쿠, 그 선비가 구리구나."
하고 혀를 찼다. 북곽선생이 머리를 조아리며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았다. 고개를 쳐들고 이렇게 여쭈었다.
“범님의 덕이야말로 참으로 지극하십니다. 대인은 그 변화를 본받고, 제왕은 그 걸음을 배웁니다. 남의 아들된 자들은 그 효성을 법으로 사모,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합니다. 그 거룩한 이름이 신룡(神龍)과 짝이 되어, 한 분은 바람을 일으키고 한 분은 구름을 일으키시니, 저처럼 하토(下土)의 천한 신하는 감히 그 바람 아래 서옵니다."
범이 이 말을 듣고 꾸짖었다.
“앞으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지난번에 내가 들으니 ‘유(儒: 선비)는 유(諛: 아첨하다)다'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 천하 나쁜 이름을 모두 모아서 망령되게도 내게 덧붙이더니 이제 낯간지럽게 아첨하는 구나. 그 말을 누가 곧이 듣겠느냐? 대개 천하의 이치가 한 가지이니, 범의 성품이 악하다면 사람의 성품도 악할 것이요, 사람의 성품이 선하다면 범의 성품도 선할 것이다. 너희들의 천만 가지 말이 모두 오상(五常)을 떠나지 않고, 경계하여 권명하는 것이 언제나 사강(四綱)에 있긴 하지만, 서울이나 고들 에서 코 베이고 발 잘리며, 얼굴에 죄인이라는 글자를 먹으로 새긴 채 돌아다니는 자들이 모두 오륜에 순종치 않은 사람들이란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밧줄이며 먹바늘이며 도끼며 톱 따위의 형벌 도구들을 날마다 공급하기에 겨를이 없으니, 그 나쁜 짓을 막을 길이 없어. 그런데 범의 집에는 이러한 형벌이 없으니, 이로써 본다면 범의 성품이 사람보다 어질지 아니하냐?
범은 나무와 풀을 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으며, 강술처럼 좋지 못한 것을 즐기지 않고, 젖이나 알처럼 자질구레한 것들은 차마 먹지 못한다. 산에 들어가면 노루와 사슴을 사냥하고 들판에 나가면 말이 소를 사냥하되, 아직 구복(口腹)의 누를 끼치거나 음식 때문에 송사(訟事)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으니, 범의 도(道)야 말로 어찌 광명 정대하지 않으랴. 범이 노루나 사슴을 먹으면 너희들이 범을 미워하지 않다가도, 범이 말이 소를 먹으면 '원수'라고 떠들어대더구나. 아마도 노루와 사슴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지 않지만, 말이나 소는 너희에게 공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도 너희들은 말이나 소가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도 다 저버리고, 사랑하고 충성하는 생각까지 다 잊어버리며, 날마다 푸줏간이 미어지도록 이들을 죽이고 심지어는 그 뿔과 갈기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더구나. 게다가 우리들의 노루와 사슴까지도 토색질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서 먹을 것이 없고 들에서 끼니를 굶게 하였었다. 그러니 하늘로 하여금 공평하게 처리하도록 한다면, 너를 먹어야 하겠느냐? 아니면 놓아주어야 하겠느냐?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취하는 자를 도(盜)라 하고, 남을 못살게 굴다가 목숨까지 빼앗는 자를 적(賊)이라고 한다. 그런데 너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쏘다니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며 남의 것을 착취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더구나. 심지어는 돈더러 형이라 부르고, 장수가 되기 위해서 자기 아내를 죽이는 일까지도 있었으니, 이러고도 인륜의 도리를 논할 수 있겠느냐? 그 뿐만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그 밥을 빼앗고, 누에한테서 옷을 빼앗으며, 벌을 막질러 꿀을 긁어먹고, 심한 경우에는 개미의 알을 젓 담아서 그 조상께 제사하니, 너희보다 더 잔인하고 박덕한 자가 있겠느냐?
너희들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하면서 걸핏하면 ‘하늘'을 일컫지만, 하늘이 명한 바로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 다 한가지 동물이다.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인(仁)으로써 논하더라도 범과 메뚜기, 누에, 벌, 개미와 사람이 모두 함께 길러졌으므로, 서로 거스를 수가 없다. 또 그 선악(善惡)으로써 따지더라도 뻔뻔스럽게 벌과 개미의 집을 노략질하고 긁어 가는 놈이야말로 천지의 거도(巨盜)가 아니겠으며, 함부로 메뚜기와 누에의 살림을 빼앗고 훔쳐 가는 놈이야말로 인의(仁義)의 대적이 아니겠느냐?
범이 아직도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까닭은 차마 제 겨레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범이 노루가 사슴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노루와 사슴 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고, 범이 말이나 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말이나 소 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며, 범이 사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저희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었을 때에 백성들끼리 서로 잡아먹은 자가 몇 만 명이고, 그 앞서 산동(山東)에 큰물이 났을 때,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자도 또한 몇 만 명이었다. 그러나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는 어찌 저 춘추시대(春秋時代) 같은 적이 있었겠느냐? 춘추시대에는 은덕을 세운다는 싸움이 열일곱 번이요, 원수를 갚는다는 싸움이 서른 번이었다. 그들의 피가 천리에 흘렀고, 엎어진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다.
그러나 범의 잡 앞에선 큰물과 가뭄 걱정을 모르므로 하늘을 원망할 것도 없고, 원수와 은혜를 모두 잊고 살므로 다른 생물들에게 미움을 입지 않는다. 천명을 알고 순종하므로 무당이나 의원의 간교한 술수에 미혹되지 않고, 타고난 바탕을 그대로 지녀서 천명을 다하므로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범이 착하고도 성스러운 까닭이다. 범의 아롱진 무늬를 한 점만 엿보더라도 그 문(文)을 천하에 보여 주기 넉넉하고, 한 치의 병장기도 지니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만으로도 천하에 무(武)를 빛냈었다. 범과 원숭이를 그릇에 그려 천하에 효(孝)를 떨쳤고, 하루에 한 번 사냥하면 까마귀, 솔개, 청머구리, 말개미 따위와 함께 그 대궁을 나누어 먹으니, 그 인(仁)을 이루 다 쓸 수가 없다.고자질한 자는 먹지 않으며, 병들어 못 쓰게 된 자도 먹지 않고, 상복 입은 자도 먹지 않으니, 그 의(義)도 이루 다 쓸 수가 없다.
그런데 너희들이 하는 짓이야말로 인자하지 않구나. 틀과 함정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새 그물과 노루 그물, 작은 물고기 그물과 큰 물고기 그물, 수레 그물과 삼태 그물 따위들을 만들었으니, 처음 그물을 만든 자야말로 천하에 커다란 화를 끼쳤구나. 게다가 큰바늘과 쥘창, 날 없는 창과 도끼, 세모창과 한길 여덟 자 창, 뾰죽 창과 작은 칼, 긴 창까지 만들었지. 또 화포(火砲)란 것이 있어서 터뜨리는 소리가 화산(華山)도 무너뜨릴 듯하고, 그 불기운이 음양을 누설하여 우레보다도 더 무섭거늘, 이 정도로도 그 못된 꾀를 마음껏 부리지 못한 듯하게 여긴다.
보드라운 털을 빨아서 아교를 녹여 붙여 칼날을 만들되 끝이 대추씨처럼 뾰족하고 길이는 한 치도 못되게 하여, 오징어 거품에 담갔다가 꺼낸다. 종횡 무진 멋대로 치고 찌르되, 세모창처럼 굽고, 작은칼처럼 날카로우며, 긴칼처럼 예리하고 가지창처럼 갈래졌으며, 살처럼 곧도 활처럼 팽팽해서, 이 병장기가 한번 번뜩이면 모든 귀신들이 밤중에 곡할 지경이다. 그러니 너희들보다도 가혹하게 서로 잡아먹는 자가 있겠느냐?"
북곽선생이 자리를 물러나 한참 엎드렸다가 일어나 엉거주춤하더니, 두 번 절하고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말하였다.
“<시전>에 이르기를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목욕 재계를 한다면 상제를 섬길 수 있다.
고 하였으니, 이 하토에 살고 있는 천신(賤臣)이 감히 하풍(下風)에 서옵니다."
그런 뒤에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들어 봐도 오래도록 아무런 분부가 없으므로, 황송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다. 그래서 손을 맞잡고 머리를 조아리며 쳐다보니, 동녘이 밝았는데 범은 벌써 어디론지 가 버렸다. 마침 아침에 밭을 갈러 온 농부가
“선생님, 무슨 일로 일찍이 이 벌판에서 절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북곽선생이
“내 예전에 들으니 하늘이 비록 높다 하되 머리를 어찌 안 굽히며 땅이 비록 두텁다 한들 얕디디지 않을쏘냐? 하였더군."
하고 말하였다.
핵심정리 * 연대: 조선 영조 때 * 작자: 박지원 * 갈래: 소설, 한문 소설, 단편 소설, 풍자 소설 * 주제: 양반 계급의 허위적인 도덕관을 풍자적으로 비판 *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유학자들의 위선을 풍자. 조선후기의 가식적 관념과 의식을 폭로, 비판. * 출전: '열하일기'의 <관내정사>
# 예전 창귀만 따로 올릴땐 몰랐는데 호질 전문을 보니 느낌이 새롭군요. 산에서 호랑이를 잡아먹는다는 상상속 동물들도 있고. 무엇보다 호랑이가 거의 히어로 역할이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