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李栗谷의 아버지 李元秀를 두고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밤나무 꽃
6월은 녹음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밤꽃의 季節입니다.
都市를 벗어나 교외로 조금만 나가면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배를 주렸던 指導者가 유실수를 독려하는 政策 때문에
우리나라 山野에는 유난히 밤나무가 많습니다.
6月 初부터 피는 밤꽃 향기는 특이한 냄새를 풍겨 구설수에 종종 오르곤
하는데,
옛날에는 男子들의 精液 냄새와 비슷한 이 냄새를 '陽香'이라 하여
밤꽃이 필 무렵이면 婦女子들은 外出을 삼갔고
寡婦는 더욱 몸가짐을 조심하였습니다.
서양에서도 밤꽃 香氣는 男子의 香氣에 비유되었습니다.
平素 새침하던 女人도 밤나무 숲을 함께 散策하면
사랑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남성적인
밤꽃 香氣에 臭해서 그런다는 意味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섹슈얼리티를 간직하고 있는 밤꽃 香氣와 함께
밤나무에 얽힌 옛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과 함께 들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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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 표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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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지금으로부터 380년 전. '婚姻으로 夫婦의
연을 맺었지만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큰 인물이 될 때까지 夫婦關係를 暫時 접고
나는 친정에 가서 그림 공부나 하며 서방님의 立身揚名을
기다릴 테니
서방님은 漢陽에 올라가서 공부나 하시도록 하세요'라는 아내의 請을 받아들여
漢陽으로 공부하러간 李公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血氣 왕성한 나이에 아내와 떨어져 공부에 全念하던 선비는
꽃같이 예쁜 아내가 보고 싶어 아내와의 10년 約束을 어기고 妻家 집을
찾아가는 길.
江原道 대화(平昌)의 한 주막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뻥뻥 뚫려 서울에서 한나절도 못되는 두어
시간 距離이지만
그때 그 時節 강릉을 오가는 선비들은 대화나 진부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흔 아홉 구비 大關嶺을 괴나리봇짐에 짚신을 매달고
걸어서 넘어야 했다.
漢陽에서부터 몇날 며칠을 걸어 楊州땅 두물머리, 양평, 橫城을 거쳐
대화까지 왔으니 노독이 쌓여 곤한 잠에 떨어진 밤.
주막집 울타리에 심어져 있는 댓잎이 스산한 가을바람에 사각거리고
짝 잃은 귀뚜라미 애달프게 울어 에는 밤.
교교한 달빛이 스며드는 夜深한 밤에 酒案床을 받쳐들고
댓돌위에 신발 벗는 소리와 함께 장지문을 여는 女人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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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 옛길 표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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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누구냐?"
"주막집 아낙이옵니다."
달빛에 비치는 여인을 바라보니 틀림없는 酒幕집 女人이었다.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 酒幕을 찾아들었을 때
秀麗한 人物에 여염집 여인 같은 端雅한 姿態가 이런 시골구석 酒幕에 있기는
아까운 人物이구나 하고 눈여겨봤던 바로 그 女人이었다.
"이 夜深한 밤에 무슨 일인고?"
"선비님의 人品이 하도 高高하여 藥酒 한 盞 올리려고 하옵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리는 姿勢가
범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女人의 姿態에서 양반집 규수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었지만
오른쪽으로 여민 말기의 품새로 보아 처녀는 아닌 듯 싶고
비록 치마로 下體를 감쌌지만 들이쉰 숨을 아래로 내려
陰氣를 아래로 모은 뒤 깊이 빨아들이는 마음으로
더 깊은 아래로 흘려 내리는 訓練을 한 걸음걸이로 보아
여염집 아낙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
"허허허, 네 뜻이 그러하다면 술을 따르거라."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털웃음을 웃고 있지만
선비의 얼굴은 好氣心과 緊張이 交叉되고 있었다.
다소곳이 절을 올린 아낙이 살포시 일어나 교방 탁자 넘어
구석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거문고를 안아 가져온다.
그 옆에 걸려 있던 선비의 衣冠이 白色 도포에 남색 띠인 것으로 보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청색 도포에 紫色 띠를 추구하는
선비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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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 옛 주막터 자리에 그려져 있는 주막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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纖纖玉手 女人의 오른손이 술대를 쥐고 虛空을 가르더니만
거문고가 팅~ 통~ 탱~ 울어댄다.
고치에서 비단을 뽑아내듯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音響이 가야금이라면
밤나무로 뒷받침대를 하고 오동나무로 울림통을 한 거문고는
陰陽이 交合할 때 들려오는 嬌聲처럼 잦아들다
솟구쳐 오르고 솟구치다 잦아드는 音色이 恍惚하고 悅樂的이다.
"받으시오 / 받으시오 / 이 술 한 잔 받으시오 /
公子님을 어제 뵌 듯 / 孟子님을 오늘 뵌 듯 /
고금이치 通達하신 / 도학군자 선비님께 /
情을 담아 바치오니 / 잡으시오 / 잡으시오 /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붉은 입술에 흰 이와 윤기 흐르는 귀밑머리에 복숭아 빛 얼굴.
이러한 女人을 丹脣皓齒와 綠嬪紅顔의 美人이라 했던가.
이러한 美人이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勸酒歌와 함께 잔을 채운다.
부드러운 女人의 손에 들려 있던 호리병에서 흘러나온 松花酒가
선비의 입을 通하여 몸 속에 흐르자 짜르르~ 술기운이 전해져 ?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게 무슨 횡잰가?
夜深한 밤에 술과 女子라. 회가 동하지만 身分이 뚜렷하지 않은 女人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선비의 道理이거늘 境界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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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에 있는 주막터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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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슨 사연이라도 있느냐?
"선비님과 하룻밤 佳緣 맺기를 간절히 청하옵니다."
佳緣. 요샛말로 表現하면 같이 자자는 것이고
더 노골적으로 '까발겨서' 解釋하면 섹스를 하자는 것이다.
더 적나라하게 表現하면 섹스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 時節 아녀자가 그것도 夜深한 밤에 남정네의 房에 들어와 그러한 말을 하니
듣는 사람, 선비가 놀라 자빠질 일이었으나
촉촉이 젖은 그 女人의 검은 눈망울은 그 무엇을 懇切히 갈구하고 있었다.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달빛은 교교한 이 야심한 밤에
女人이 스스로 찾아들어와 겨드랑이가 깊이 파인
도련의 연분홍 항라 저고리를 벗으며
모란 무늬가 은은한 갑사 치마끈을 풀며 품속으로 파고들어오니
아무리 선비의 체통이 군자의 뜻을 쫓는다 해도 갈등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지게문 사이로 새 들어오는 달빛에 여인의 牛乳빛 속살이 눈부시다.
귀밑머리에서 흘러내린 어깨선이 象牙를 깎아 내린 듯 유난히 아름답다.
아직은 다 벗어 내리지 않았지만 치마의
말기 속에 반쯤 드러난 젖무덤이 터질 듯이 솟아 있다.
호리병을 두 손에 받쳐들고 술을 따를 때에는
봉긋한 젖무덤이 선비의 팔 굽을 스친다.
바람이 분다.
香卓에선 戀香이 타오르고 문틈 사이로 흘러들어온 바람에
지촉등불이 살랑거린다.
흔들리는 불빛에 드러난 女人의 얼굴은 불그스레 물들어 있고
숨소리는 거칠어진다.
거친 숨소리가 점점 더 가빠온다.
촉촉이 젖어 있는 女人의 두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만 별빛처럼 반짝거린다.
분꽃씨 같은 여인의 검은 눈동자가 눈물에 떠있는 한 조각 片舟처럼
흰자위에 두둥실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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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방앗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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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멍! 멍!
구름에 달 가듯이 달에 구름 가듯이 밤하늘에 흐르는 달그림자를 보고
놀랐는가?
동구 밖 물방앗간에 몰래 숨어 들어가는 아랫마을 돌쇠와
작년에 서방을 여읜 寡婦宅을 보고 컹컹대는가?
이때 아랫마을 개 짖는 소리가 적막을 깨고 들려온다.
아궁이에 군불 지피다 남은 솔가지가 타닥거린다.
女人이 나비 등잔불을 끈다. 밤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또 다시 寂莫이 흐른다.
女子를 품에 안아본 것이 언제였던가?
7년 전 한양으로 공부하러 떠나올 때 어른들과 아랫것들 시선 때문에
문 밖까지 배웅도 못하고 사랑채 문간을 부여잡고 흐르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던 아내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아서라, 선비의 道理가 아니느니라."
"선비님 너무 하시옵니다.
흑~흑~흑~."
봉긋한 젖망울까지 풀어헤쳤던 女人이 저고리 옷고름을 여미며 흐느껴
울기 始作했다.
지게문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달빛이 女人의 어깨 위에 푸르게 부서지며
흘러내린다.
댓잎 스치던 밤바람이 일렁이며 툭 하고 밤송이 구르는 소리가 들리건만
어깨 위에 일렁이던 波濤는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도 난감할 수밖에….
"酒案床을 물리고 紙筆墨을 들여라."
다 마시지 못한 酒案床을 치우고 붓과 벼루와
청자빛이 영롱한 연적을 받쳐들고 들어온 여인은 화선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의아한 눈길로 선비가 바라보자 갑사 치마끈을 풀어 선비 앞에 펼쳐놓는다.
벼루에 먹을 갈던 女人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더니만 벼루에 떨어진다.
흐느낌을 감추려는 듯 여인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선비가 붓을 들어 먹물을 찍자 속곳차림에
선비의 房을 나서는 女人의 뒷모습이 悽然하기까지 했다.
鏡花水月 거울에 비친 꽃이요 수면위에 떠있는 달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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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에 심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배롱나무. 강릉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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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一筆揮之로 써내려간 휘호를 치마에 남겨두고
동창이 밝을 무렵 주막집을 나선 선비는 장평, 진부를 지나
아흔 아홉 구비 대관령을 넘어 해질 무렵에 처갓집에 到着하였다.
얼마만에 찾은 처갓집인가?
7년 전 떠나올 때 마당에 심은 배롱나무가 몰라보게 자랐지만
아내의 모습은 새색시 그대로 고운 모습이었다.
1삭(한달)을 처갓집에 머무르며 쌓였던 회포도 풀고
아내와의 雲雨의 情을 푼 선비는 과거시험 때문에 다시 처갓집을 떠나
漢陽 길을 나섰다. 대관령 굽이굽이 휘돌아 고갯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면서
酒莫집 그 女人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었다.
다른 주막에서 묵을 수도 있지만 對話 그 酒莫에서 다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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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 고갯길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옛길.
대나무 숲길이 선비의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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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通해서 신사임당도 영마루를 넘었으며
栗谷 李耳도 大關嶺을 넘었을 것이고
강릉에서 태어나 열네 살 고운 나이에 경기도 광주로 시집간 허난설헌도
이 길을 通過했을 것이며.
松都三絶로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황진이도
人生의 虛無를 느껴 관서팔경과 지달산(금강산)을 流覽하고
關東八景을 섭렵한 다음에 단양팔경을 구경하기 위하여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다.
"지나가는 길손에게 당돌하게도 그러한 請을 들인 게 무슨 연유이더냐?"
酒案床을 마주 놓고 그 女人에게 선비가 물었다.
"비록 배운 것은 없어 酒幕을 열어 먹고사는 무지렁이이오나
사람을 많이 보아온 탓에 지나는 과객의 氣色을 살필 줄 아옵니다."
"氣色이라…? 그래, 내 기色이 어떴드냐?"
"그날 선비님의 顔色에 瑞氣가 서린 것을 보고
貴한 子息 하나 얻어 볼까 하는 마음에 아녀자로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리하였습니다."
"오호, 그랬었구나.
그렇다면 오늘밤에 이루지 못한 雲雨의 情을 풀어보자꾸나."
이래서 男子는 도둑놈이라 하는가? 늑대라 하는가?
妻家 집에서 실컷 아내와 배꼽 맞추기를 하고 나선 사람이 줄 때는 안 먹고
이제 먹자하니 이런 고얀 일이 있는고.
"지금은 아니돼옵니다. 그때는 선비님의 顔色에 그러한 瑞氣가 넘쳐났으나
지금은 그 瑞氣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오라
이미 婦人의 몸에 貴한 아드님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微賤한 계집이 몸만 더럽힐까 하옵니다."
女人의 말은 당차고 서릿발처럼 싸늘했다.
헤벌래 하고 기다리던 선비도 精神이 바짝 들며
싸하게 퍼지던 술기운도 싹 깨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사내아이로서 寅時에 태어날 것이며
일곱 살 되던 해에 虎患이 두렵사옵니다."
다소곳이 치마폭에 무릎을 접은 女人의 입에서 예사롭지 않은 말이
튀어나온다.
이게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誣欺인가?
하늘의 뜻을 傳하는 天氣漏泄인가?
이제야 精神을 바짝 차린 선비는 지금까지의 無禮를 사과하고
虎患을 막을 방도를 물었다.
虎患이 무엇이더냐?
호랑이에 물려가는 것으로서 애, 어른을 막론하고 虎患을 당하는 것은
공포감을 느끼는 무서운 일로서 선비 집안에서는 치욕으로 생각했다. .
祖上 모시는 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을 호랑이가 물어간다는
俗說이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호랭이 물어갈 놈'이라는 辱說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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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 옛길 표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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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으면 그 禍를 免할 것이외다.
또한 아이가 일곱 살 되던 해 낯모르는 스님이 찾아와
아이를 보자 하거든 절대 보여주지 말고 밤나무를 보여 주소서."
漢陽에 到착한 선비는 밤나무를 심으라는 그 女人의 말이 머리를 맴돌아
과거공부가 되지 않았다.
밤나무가 무엇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밤나무는 죽어서 神主가 되어
家門의 榮光을 이끌어주며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神聖한 나무이기에 밤나무를 심는 것은
德을 쌓는 것이다.
과거 공부하던 선비는 故鄕 파주에 되돌아가 친정(강릉)에서
사내아이를 낳아 3살까지 기른 後 媤宅에 와 있던 아내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고 故鄕집에 천 그루의 밤나무를 精誠들여 심었다.
아이가 일곱 살 되던 해.
대화 酒幕집 女人의 말대로 어느 날 涅槃山(金剛山) 유점사에서 왔다는
老스님이 갈포 장삼에 굴갓을 쓰고 찾아와
'이 고을에 나라의 材木이 될 아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노라'며
아이를 보자 하기에 '내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며 호통치고
밤나무를 가리키니 밤나무 숫자를 세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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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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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이렇게 세어가던 밤나무 숫자가 999에서 멈췄다.
소를 매놨던 밤나무 한 그루가 그만 말라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天命을 拒逆하려느냐?"
진노한 老스님이 하얗게 흘러내린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통을 치자,
"나도 밤나무…."
소리치며 나서는 나무가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노스님이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虎患을 免한 아이가 조선시대 대학자 栗谷 李耳이며
선비는 栗谷의 아버지 감찰공 李元秀이고 姙娠한 여인은
우리의 永遠한 현모양처의 표상 申師任堂이시다.
栗谷이 자란 坡州에는 '나도 밤나무'가 있었다는데
栗谷을 살려냈다 하여 活人樹라 하고 .
그 나무가 있던 고개를 栗木峙 또는 밤나무 재라 부르며
동네이름도 栗木里라 불렀다는 傳說이 전하여 내려오고 있으나
確認할 길은 없었고 坡州市廳 문화관광과 문화재 담당관은 坡平面
栗谷里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推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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