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Emily E. Dickinson)은 생전에 2,000편이 넘는 시를 썼지만, 인쇄된 시집에 수록된 시는 꼴랑 4편 밖에 되지 않는다는데...그녀가 쓴 시들은 종래의 시작(詩作) 형식을 크게 탈피하여 씀으로써 현대 시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더만. 그녀는 종래의 음률(rhyme)을 개무시한 데다 시의 행간에 대시 부호 (-)를 많이 사용하여 단절의 느낌을 주면서 도리어 이해를 어렵게 하기도 하고, 시의 단어들 가운데 보통명사임에도 일부러 첫 글자를 대문자로 써서 우리들의 머리에 더욱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기가 쓴 시에 제목을 붙이지 않아 훗날 사람들은 대개 시의 첫 구절을 갖고 제목처럼 사용한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존슨 번호(Johnson Number)'라고 해서 토마스 존슨(Thomas H. Johnson)이 편집·출판한 디킨슨 시집에 실린 시들에 연도별로 차례로 번호를 붙인 숫자로 시의 제목을 가름한다고 하는 모냥이던데...긍까 여기에 올린 시에서도 첫 구절을 따서 마치 시의 제목인 것맹키로「내가 죽음을 멈출 수 없기에」라고 하는데, 다른 한편으론 존슨이 붙인 숫자 '712'가 이 시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겠지?
이 시는 진작부터 영미권 시문학 분야에서 중요한 교재로 다루어져 왔다고 하며, 별로 이름난 문학단체는 아닌 듯 하지만『Discover Poetry』가 선정한 영미권 명시 100선에 12위에 랭크되어 있는 걸 보면 꽤나 유명한 듯하긴 하다고 보겠다. 영시(英詩)에 대해선 까막눈이라고 해도 좋을 나의 경우 이 시를 접한 건 실로 우연하게도 윌리엄 스타이런(William Yron)의 소설『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한정아 역, 민음사, 2012)을 읽는 가운데 나왔기 때문이었으니...하지만 이전에 에밀리 디킨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조용한 열정(Quiet passion)』(2016)을 본 적은 있지만, 내 기억에 남은 건 어둡고 칙칙하고 궁상맞은 여인의 모습만 남아 있으니 난 어쩔 수 없는 문학에 문외한(門外漢)이랄 수밖에 없으리니...
물론 시의 내용과 소설 속의 이야기와는 서로 조금도 관계가 없는 게, 디킨슨의 시가 죽음(death)과 영생(eternity)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데 비해, 소설 속에서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 영스타인이 읊어준 시가 소피에게 너무나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 그 시가 들어있는 시집을 빌리려고 도서관을 찾았는데...
저런! 폴란드에서 갓 이민온 데다 영어 발음을 제대로 알아 듣질 못한 까닭에 영스타인이 시의 지은이를 '에밀리 디킨슨'이라 했는데 소피는『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영국작가 찰스 디킨스 정도로 이해하여, 사서에게 올리버 디킨스의 시집을 찾아달라고 했으니...당연히 사서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의 시집을 찾아달라는 말을 들었으니 퉁명스럽고 불쾌한 표정으로 반응하자 소피는 그 자리에서 픽 쓰러지며 기절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 소피는 문학, 음악을 공통 관심사로 가지고 있으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동반자인 네이선을 만나고 종국에는 죽음까지 함께하게 되었으니, 뭐 디킨슨의 이 시가 그들의 암울하고도 처연한 미래를 예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것구만. 너무 심한 비약이고 억지 묶음인감?
블로그 차일피일(https://blog.naver.com/yoonphy)의 번역을 빌어 에밀리 디킨슨의 시「내가 죽음을 멈출 수 없기에(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를 감상해 본다. 이 시는 죽음(death)과 영생(eternity)을 다루고 있으며, 시인은 죽은 후의 영생의 시점에서 죽음을 관조하고 있다. 시의 전반적 기조가 죽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절제되어 있으며 차분하다.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Emily Dickinson)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
He kindly stopped for me –
The Carriage held but just Ourselves –
And Immortality.
We slowly drove – He knew no haste
And I had put away
My labor and my leisure too,
For His Civility –
We passed the School, where Children strove
At Recess – in the Ring –
We passed the Fields of Gazing Grain –
We passed the Setting Sun –
Or rather – He passed Us –
The Dews drew quivering and chill –
For only Gossamer, my Gown –
My Tippet – only Tulle –
We paused before a House that seemed
A Swelling of the Ground –
The Roof was scarcely visible –
The Cornice – in the Ground –
Since then – 'tis Centuries – and yet
Feels shorter than the Day
I first surmised the Horses' Heads
Were toward Eternity –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출 수 없기에(에밀리 디킨슨)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출 수 없기에
그가 친절히 나에게 다가왔다.
마차에는 우리 둘만 탔었다 -
아 그리고 불멸도.
우리는 천천히 나아갔다 - 그는 바쁠 것이 없었다.
나도 일과 여가를 제쳐 두었다.
그가 매우 정중하고 친절하였기에.
우리는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함께 노는
학교를 지나고,
곡물이 익어가는 들을 지나고,
저무는 해를 지나갔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석양이 우리를 지나갔다.
이슬이 내려 춥고 떨렸다.
난 망사 가운과 얇은 외투만
걸쳤기에.
우리는 이윽고 한 집 앞에 도달했는데,
마치 땅이 부풀어 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지붕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천장 장식은 아예 땅 밑에 있었다.
그 때로부터 수백 년, 하지만
그날 하루보다 더 짧게 느껴져,
이제야 마차의 말들이 영원을 향하였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