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드린의 네 번째 결혼
강병철(소설가)
백과사전을 펼치면 첫 단어가 ‘ㄱ’이고 두 번째는 ‘가’이며 세 번째 단어가 ‘가가린’이다. 그 ‘가가’로 시작되는 자음·모음의 첫 번째 글자로 조합된 이름이 바로 세계 최초의 우주선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한 주인공이다. 그랬다. 그가 우주를 돌파하면서 지구의 강대국들에게 새로운 시스템 경쟁의 시동이 걸린 것이다. 1961년, 나로서는 여섯 살 때이니 가물가물한 세월이다.
당시 소련의 우주비행사 선발 조건 중의 하나가 키 170센티와 체중 72킬로 이하였다. 그러니까 승마나 체조처럼 체격이 작은 사람에게 유리한 선발 조건이 또 하나 있었던 것도 새로웠다. 그때까지는 소련의 우주선 개발이 미국보다 앞섰었다. 이방 세력의 기습 선방에 놀란 미국의 케네디 정부가 우주선 개발을 서두른 것이다. 그건 그렇고.
서해안의 초딩 시절, 우주개발이 급속도로 추진되면서 아폴로 8호가 달나라를 한 바퀴 돌았다는 뉴스를 처음 들었다. 토끼가 방아 찧는 공간에 인류가 직접 발을 딛는다는 상상 하나만으로도 소년의 머리가 둥실둥실 혼란스러웠다. 마침내 1969년, 아폴로 11호에 세 명의 비행사가 달나라에 착륙을 시도하는 장면이 전세계에 생중계되었으니 내 나이 열네 살 서울 유학생 중1 때이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골목길로 나와 전봇대 꼭대기로 비치는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함께 바라보던 복덕방 영감님과 탁구장 식모 누나는 금세 방으로 사라졌고 원효로 자취생이었던 나 홀로 까치발 서서 밤하늘만 망망 바라보았다. 그렇게 우주선에 몸을 싣고 가없이 아늑한 삼라만상을 달리는 풍경을 떠올리며 가슴을 여몄던 것 같다. 기실 지금은 아득한 기억이다.
그해 늦가을이니 서울 某중학교 1년생 시절이었던가,
원효로에서 무교동까지 한 시간 거리를 걸어 다니며 차비를 아끼던 야간 중학생 시절이다. 그러다가 덕수궁 옆 국립공보관에서 달나라 착륙 전시회를 한다는 입간판을 만난 것이다. 우주비행 스크린이 연달아 상영되면서 분화를 헤쳐 파온 분화구 흙덩이도 밤톨만큼 전시했으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황홀한 가슴으로 두근두근 출구를 나오는 순간 몇 개의 마이크가 얼굴을 가로막더니.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키 작은 소년 하나가 쪼그려앉아 집중하는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시청앞 분수를 배경으로 둘러선 군중들이 중딩 소년에게 플래시를 터지는 중이었다. 얼굴이 달아오른 채 어쩌구저쩌구 나불거렸으나 방송이 불발되었으니 조금은 아쉬운 기억이다. 그 54년 전 기억을 당연히 잊으면서 신산고초의 세월을 보냈던 것 같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암스트롱 밟은 달아
패로디 문장처럼 우주비행사 중에는 닐암스트롱이 가장 유명하다. 애드원앨드린, 마이클콜린즈까지 세 사람이었지만 암스트롱이 10분 먼저 달에 발자국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앨드린도 곧바로 달을 밟았으나 세인의 기억에서 먼저 잊혀졌고 콜린즈는 전체의 사령탑이었으나 그냥 우주선에 남아 공중 선회만 빙빙 돌았으므로 가장 빨리 잊혀졌다. 그랬다. 후대의 사람들은 암스트롱 하나만 또렷이 기억한다.
그런데 몇 달 전인가, 93세의 애드원앨드린이 30살 어린 여자와 네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는 기사를 접하며 사라진 기억들이 갑자기 소환되는 것이다. 동반자 두 비행사는 모두 죽었단다. 톱스타 암스트롱은 82세에 심장마비로 떠났고 사령탑 콜린즈는 대학에 몸을 담다가 90세에 마감했으니 그리 서운한 이력도 아니다. 그 와중에 딱 한 사람 애드윈 앨드린만 남아 새로운 신혼을 꿈꾸고 있다니 이 노익장 정력가의 컴백이 참으로 신기하다. 그 후 50여 년 세월이 빛의 속도로 흘렀고 나는 그들보다 훨씬 많은 연륜으로 노후를 달리는 중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