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코앞이다. 명절을 앞두고 걱정거리 없는 주부가 있을까. 아니, 주부 여자 뿐 만아니라 성인이라면 나름대로 걱정이 다 있을 것 같다. 포도농사 하다 보니 차례상 음식을 반찬가게에 맡기게 된다. 처음엔 많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예삿일이 되었다. 올해는 다른 일로 잠시 마음이 불편했다. 며칠 전 아들이 전화를 해 한참 뜸을 들이더니 명절에 저만 내려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아버지는 많이 서운해 하실 뿐만 아니라 허락 하실지 모르겠어요.”하며 걱정을 했다. 나는 법도니 예의니 하는 것보다 합리적인 생활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나와 좀 다르다.
전화도 애들이 먼저 하기를 바라고 며칠 전화가 없으면 버릇이 없다는 둥 자식들 키워놔야 저희들 밖에 모른다는 둥 서운함을 표한다. 나는 꼭 애들이 먼저 전화하라는 법이라도 있냐. 부모가 먼저 전화해서 직장생활에 어려움은 없냐?, 힘들지 않냐?, 아빠가 올라가서 맛있는 것 좀 사주래? 이렇게 하면 안 되겠냐고 묻곤 한다. 애들에 비해서 우리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베푸는 쪽이 되어야 하는데 남편은 애들이 우리를 섬겨주길 바란다. 가끔은 내가 너무 봐 주니까 애들이 부모에게 긴장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며느리가 결혼한 지 3년 3개월 만에 임신을 했다.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입덧이 심하다고 한다. 시어머니 조항에서 며느리가 나온다고 하더니 나만큼이나 입덧이 심한 것 같다. 2주 전 벌초하러 아들만 내려왔다. 사돈댁에서 추석에 선물한다고 포도를 사러 올 때도 아들과 사돈들만 내려왔다. 장시간 차를 타는 것은 무리가 되니 사돈들도 딸은 데리고 오지 않고 사위만 데리고 왔을 것이다. 아들이 추석 때 미현이는 못 내려올 것 같다고 전화하면서 당신이 허락해 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더라고 하니 남편 얼굴이 금시 변했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마를 기다려온 임신이고 얼마나 어렵게 성공한 임신인가. 사부인은 가끔씩 당신 딸이 아직도 임신을 하지 못해 죄송스럽다고 전화를 하곤 했었다. 나는 그게 어디 인력으로 되는 일이냐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려 주자고 했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할 테이니 걱정하지 말자고도 했다. 남자들은 종족 번식에 대한 본능이 강하다. 남편도 예외는 아니다. 며느리가 우리집에 내려와 같이 여행을 할 때면 차안에서 졸 때가 많았다. 나는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그러는 줄만 알았는데 실은 시험관아기 준비하러 산부인과에 다닌 탓이었던가 보다. 애들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 무관심한 척 한 것이 너무 무심한 꼴이 되었다.
시험관아기, 몸도 많이 힘들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 어려움을 이겨냈으니 그리고 정상적으로 한 임신이 아니니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7월 중순 아들이 임신이라고 했을 때도 비밀이 발설되면 혹여 어찌될지 몰라 남편도 나도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다. 온 식구가 조심스럽게 지켜줘야 할 것 같았다. 심지어 사돈댁에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 댁에서도 얼마나 기다려 온 일인가. 사부인이 먼저 전화를 했다. “축하해요. 우리 경사 났어요. 사부인 말씀이 맞았어요. 임신하지, 못하겠냐고 하신 말씀요.” “감사합니다. 우리 미현이가 정말 큰 일 했어요.” 남편은 애들이 임신을 해서 이제는 조상님께 면이 선다고 했다.
사부인은 처음에는 딸이 아기를 낳으면 안 봐 주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임신 못 하는 것 같아 마음 졸이다가 애기만 낳으면 다 봐주고 전화만 하면 언제든지 도와줄 터이니 어서 애기만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근데 이제 와서 오리발을 내밀수도 없고 어떻게 한 대요.”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 얼굴에 행복함이 가득하다. 며느리는 쌍둥이를 임신했다.
이틀이 지났는데도 남편은 아들만 내려와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딸에게 협조를 구해야 할까보다. 딸은 이미 쌍둥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입덧과 직장생활의 어려움이 어떤 것인가를 나보다 더 설득력 있게 말 할 뿐 아니라 며느리가 바로 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남편은 남들 다 하는 일에 유난을 떤다며 처음부터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이론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추석이라 서울에서 익산까지 몇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내려오는 것이 무리인 것은 맞다. 내 의견이 틀린 것도 아닌데 괜히 남편 눈치를 보게 되고, 내 아들 며느리만 되는 것처럼 나만 애가 탔다. 추석을 앞두고 포도 출하로 집은 겨우 잠만 자는 곳이 되었다. 몸이 지쳐서 그런지 남편의 말 수가 줄었다. 나는 명절이란 불편하게 어쩔 수 없이 식구들이 만나고 지쳐가면서 음식을 장만해 즐겁지도 않게 지내는 것 보다는, 가족이 한 마음이 되어 축하할 일은 축하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 아픔을 나누는 것이, 장만을 못해 음식이 좀 부족하더라도 더 괜찮은 명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도 아들도 불편한 심기다. 며느리는 불안하고 나도 즐겁지 않다.
며칠 만에 야간작업이 없다고 남편이 포도밭에서 조금 일찍 돌아왔다. 한 달여 전부터 난에 꽃대 하나가 더디게 더디게 올라왔다. 언제 피웠는지 꽃 두 송이가 피어 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꽃봉오리를 보듬으며 “어머, 우리 쌍둥이들 안 여?” 했다.
남편이 휴대폰으로 난 꽃을 찍더니 “미현아 추석에 내려오지 못해도 괜찮다. 네 건강이 곧 아기의 건강이니 몸 잘 챙기고 명절동안 태교에 힘쓰고 애기들과 좋은 대화 나눠라.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난이 꽃 두 송이를 피웠다.” 난 사진과 같이 이렇게 문자 보내면 되겠냐고 묻는다. 이만하면 며느리도 아들도 남편도 나도 마음 편하게 추석을 보낼 수 있다. 객지에서 며느리가 혼자 추석을 보낸다면 안 됐지만 며느리의 친정이 바로 옆이니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온 가족이 다 모이지는 못하지만 떨어져 있어도 그 어느 때 보다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는 추석이 될 것 같다.
(윤복순 님의 수필중에서...,) |